회심의 진통 불가피
최저임금 급속인상, 일자리창출 허구

새해 예산안 429조
회심의 진통 불가피
보건· 복지· 노동분야 34%, 146조원
최저임금 급속인상, 일자리창출 허구

회가 2018년도 예산안 심의에 들어갔다. 7.1% 늘어난 429조 원의 나라 살림에 대한 여야 입장이 크게 달라 심의가 상당히 진통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무엇보다 내년 예산이 한국 경제의 성장 활력을 높이는 데 얼마나 효과적으로 쓰일지를 집중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최택만 칼럼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이톡뉴스)] 정부는 내년 예산을 올해 본예산보다 7.1% 늘어나도록 편성했는데 이 중 보건·복지·노동 분야 지출이 올해보다 12.9% 증가한 146조 원으로 총지출의 34%를 차지하게 된다. 그에 비해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 지출(15조 원)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올해보다 20%나 감소한 17조 원에 그친다. 정부는 일자리 중심으로 예산을 짰다고 하지만 정작 일자리를 창출할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사업과 취업유발 효과가 큰 인프라스트럭처 건설은 위축되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의 허구

국회가 특히 관심을 갖고 들여다봐야 할 대목은 정부의 일자리 창출 대책이다. 정부는 내년 3만명을 시작으로 5년간 공무원 17만 4000명을 증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국회예산처 분석에 따르면 이들 증원 공무원에 투입될 인건비와 연금은 무려 374조 원이다. 5년간 17만4,000명을 증원할 경우 퇴직 때까지 30년간 순수 인건비로 280조 원이 나가고 은퇴 후에는 25년간 연금으로 94조 원이 지급된다는 것이다. 이는 올해 본예산 400조 원과 맞먹는 금액이다. 이것도 가장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다. 공무원 평균 보수 상승률이 아닌 명목임금 상승률을 적용하거나 9급이 아닌 7급으로 채용하면 비용은 수십조 원이 더 늘어나게 된다. 
일단 공무원을 늘려 급하게나마 공공 부문에서 청년취업의 물꼬를 튼 후 민간기업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것이나 이는 실현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의 일자리 부족은 일시적 요인이 아니라 구조적 원인에서 비롯되고 있다. 대기업 노조가 철밥통을 고수하면서 이로 인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각종 규제로 기업 투자마저 가로막혀 있는 현실 앞에서 공무원 증원만으로 고용창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허구다. 

일자리 창출은 고사하고 수만 명의 청년들을 공무원만을 바라는 ‘공시족’으로 내모는 부작용만 키울 공산이 불 보듯 하다. 심각한 일자리 문제를 두고 공무원 증원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민간기업으로 가야 할 인재를 공공 부문이 빼앗아오겠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문제다. 역대 정부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공무원 증원에 신중을 기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더더욱 이 같은 공무원 증원이 민간 부문의 고용 창출과 직접 연계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칫 세금 퍼붓기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다양성과 창의성으로 무장해야 할 4차 산업혁명시대에 청년세대로 하여금 앞 다퉈 공무원시험에 매달리게 함으로써 사회적 활력을 떨어뜨릴 가능성도 짚어 봐야 한다. 공공부문과 복지가 비대해지면서 삭감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도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는 “SOC 예산 감축은 건설투자 부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지표와 서민체감경기에 민감한 건설 쪽에 악영향이 있다면 혁신성장에서라도 조기에 가시적 성과가 나와야 한다. 4차 산업 부문과 벤처 창업을 염두에 둔 ‘혁신성장 예산 1조5000억 원’이 민간투자 활성화의 마중물이 될지는 규제개혁의 칼자루를 쥔 정부의 쪽지예산 남발, 밀실흥정 같은 구태에서 벗어나 제대로 심의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

사람중심 경제를 강조하느라 시장과 기업은 뒷전으로 밀렸다. 물론 국가의 역할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하는 한 국가는 시장실패를 보완하는 역할에 그치는 게 옳다. 정부가 깊숙이 끼어들면 되레 부작용을 부른다. 최저임금을 보자. 내년 시급을 억지로 높이는 데 들어가는 예산이 내년에만 3조 원이다. 내후년부터는 지원 여부가 불투명하다. 정부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올린 시급을 놓고 곳곳에서 마찰음이 들린다. 오히려 일자리를 없앤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사람을 많이 쓰는 업종에선 무인 자동화 작업이 한창이다. 사람중심 경제의 한 축을 이루는 혁신성장도 립서비스에 그친 느낌이다. 혁신은 기업만이 할 수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혁신을 가로막는 갖가지 규제를 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나 규제프리존법을 국회가 빨리 처리해달라는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이래선 정부의 혁신성장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해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를 보자. 상위권은 미국과 유럽국들이 휩쓴다. 아시아에선 싱가포르, 홍콩이 발군이다. 큰 정부를 추종하는 사람중심 경제만 갖고는 이들 나라와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재정 건전성 결여

내년부터 총지출 중 의무지출 비율이 50%를 넘어 재정의 경기 대응력이 약화되는 것도 문제다. 재정이 단기적인 수요 확대에 기여하는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성장 잠재력을 높일 공급 부문 구조개혁과 혁신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예산 국회에서는 또한 나라살림이 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인지를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최근 국회 예산정책처는 현 정부의 공무원 증원, 아동수당 도입, 기초연금 인상, 최저임금 인상분 지원으로 국가채무가 늘어나면서 2060년 나랏빚이 국내총생산(GDP)의 2배 가까운 1경5499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대해 정부와 여당이 최근 상황 변화를 반영하지 않아 과도하게 부풀려진 수치라며 반박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재정당국은 현 정부 임기 이후까지 내다보는 보다 정교한 재정 전망 자료를 내놓고 국회는 이를 제대로 따져봐야 할 것이다. 한국 경제의 신인도와 위기 대응력을 가름할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건 국회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 정부·여당의 그동안 기조와 야당의 반대론을 종합해보면 주요 쟁점은 공무원 증원(중앙직 1만5000명, 4000억 원),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7만7000명, 1226억 원), 최저임금 인상 지원(3조원) 같은 것이다. 최근 수년간 급팽창해온 복지예산처럼 내년 한 해로 끝날 항목들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공약대로 5년간 공무원이 17만4000명 증원돼 30년 근무할 경우 국회예산정책처는 327조 원, 납세자연맹은 522조 원이 필요하다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공공일자리 81만 개 창출에 따른 연도별 소요 예산과 재원조달 방안, 그에 따른 장기 재정추계까지 관련 예산 심의 때 제시돼야 한다.

▲ 최택만(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이번 예산 국회에서는 또한 나라살림이 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인지를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퍼주기 예산 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예산의 생산성, 부가가치를 한층 높이는 쪽으로 예산 심의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한 하나는 공공부문을 넘어 민간 시장의 일자리 창출 능력을 확충하는 일이다. 지난 1년간 23만 5100명의 일자리를 늘린 미국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에 미국인들의 세금이 투입됐다는 얘기는 없다. 공무원을 늘리고, 늘어난 공무원 수만큼 규제도 늘어나는 구조에선 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다. 새 정부는 대선에서 굵직굵직한 공약들을 쏟아 내놓고 이를 뒷받침하는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래서 올해 예산 심의는 큰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여당은 여당대로 최대한 원안에 가깝게 통과되도록 총력을 기울길 것이고 야당은 야당대로 그동안 반대해온 정책 예산을 삭감하려고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의 시각이 엇갈리는 공무원 증원, SOC 예산 축소, 최저임금 인상 지원 등에서 심한 격돌이 예상된다. 여야는 문제가 있는 부문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논의하되 국가와 국민을 위한 예산 심의가 되도록 노력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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