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권 칼럼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이톡뉴스)] 한해의 끝자락, 거리는 캐롤송이 흐르고 크리스마스 노래의 포근한 멜로디가 지친 사람들을 위로해 주기도 한다. 감성이 메마른 이들도, 자신이 지내온 날들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망각하고 살아온 시간과 사람들을 추억해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살펴보기도 한다.

나는 삼십대 초반에 전자회사 홍보부에서 홍보 광고업무를 맡게 됐다. 그리고 황규택 부장을 상사로 모시게 됐다. 이전엔 사내 직원 교육과 공장 새마을운동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과장 승진과 함께 보직이 바뀐 것이다. 직원들 사이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홍보부로 옮긴 나를 두고 나온 염려인 것이다.

“황 부장 밑에서 일한 과장이 벌써 3명째 퇴사를 했는데, 신임과장은 몇 개월을 버틸 수 있을까?”

사실 봉급쟁이는 웃상사들과 합이 중요하다. 불협화음이 나오는 순간, 지옥이다.

바짝 긴장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출근시간을 한 시간 당겨 출근을 했다. 매일 각 일간지, 경제지의 기사와 정보를 모니터하여, 사장 회장실에 배부하면서 꼭 참고해야할 기사에 B표를 해서 넣어드렸다. 탑경영자들의 바쁜 시간을 줄여보자는 의도에서였다. 부장도 한 시간을 당겨 출근하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었다.

일주일이 지난 어느 퇴근길에, 맥주 한 잔하자며 회사 앞 가게로 나를 불렀다.

캔 맥주 한 잔을 비우면서 나에게 물었다.

“출근시간을 한 시간 당긴 다는 게 쉽지 않은데...”

입사하면서 부터 나는 나와 약속했고, 그것을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고 답했다.

그 만남 이후, 퇴근길엔 그곳 가게에서 맥주 한 캔을 비우면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등 업무회의를 했다. 아침 부서회의는 할 필요가 없었다. 부장은 장교출신이었고, 해박한 지식에 삶의 태도가 남다르고 반듯한 분이였다. 사내에서는 참 이상한 부서라고 소문이 돌았다. “짤려야 할 신임과장이, 부장과 궁합이 너무 잘 맡는다고...” 합이 잘 맞으면, 특별한 에너지가 생긴다.

-기획한 광고마다 빅히트를 했다.-

기업이나 어느 조직이나 목표를 달성해 가는 건 구성원의 파워다. 그 힘은 전문지식과 목표에 접근해가는 인적자원의 자질, 자세가 합해진 역량이다. 모자란 이들의 특징은 그 탓을 다른 이들에게 돌린다. 맑은(사심 없는) 눈으로 보면 현상의 문제가 환하게 드러난다.

기업이든 국가든 비생산적인 부문에 과도한 몰두를 하고, 정체되어 있으면 함몰한다. 사실 과거란 많은 이들이 이루어낸 결과이고, 그것을 허무는 게 아니라 그것을 근간으로 오늘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과거의 늪에 빠지면 미래는 숨어 버리게 된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하고, 그 흐름에 적응하고 변화하지 못하면 개인이나 기업이든 국가든, 차세대에는 자취도 없이 소멸되고 만다. 이 시대를 사는 현자들은 그 것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부장은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었다. 부장은 광고카피를 쓰는 것을 꼭 네게 맡겼다. 젊은 세대의 트렌드를 자신은 잘 읽지 못한다면서,

한참 후에 부장은 건설회사 중역으로 이직했다. 같이 일하자고 권유를 해왔지만, 나는 전자회사가 잘 맞는다고 사양했다. 그리고 부장과의 인연은 지금껏 40년을 이어오고 있다. 몇 개월 전엔 만나자고 전화를 주셨다. 종로2가 파고다 공원에서 뵈었다. 나의 모습을 스마트폰에 담고 계셨다.

팔순 중반의 부장은, “좋았던 사람들과의 인연을 동영상으로 간직하고 싶다”며...

우린 공원의 벤치에 앉아 지나온 일, 살아가는 얘기, 자식들 얘기를 나누면서 하루를 같이 보냈다. 몇 개월 뒤 중환자실에 입원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병문안을 갔다. 흐릿한 정신에도 나를 알아 보셨다.

“어떻게 왔어...” 그리고 내손을 잡았다.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눈물이 흘렀다.

두 달 뒤, 운명하셨다는 부음을 받고 문상을 갔다.

장녀, 지영이가 “평소에 늘 말씀하셔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더 자주 뵙지 못했다는 것에 가슴이 아려왔다.

돌아보니, 젊은 날이 엊그제 같은데, 부장님은 50년 전에 살았던 작은 단독주택에 그대로 살고 있었다. 재테크에는 무능했지만, 자녀들이 잘 성장해 일가를 이루고 있었다.

근간 들어 부음문자를 받는 횟수가 많아졌다.

지난 한해는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운 일들이 참 많았다. 나라도 그렇고.

“너희는 어둠이 지나고 새날이 밝았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고 어느 성자가 물었다.

제자들은 잘 알지 못했다.

▲ 최수권(전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수필가)

스승은, “너희가 눈을 뜨고 밖을 내다보았을 때, 오가는 모든 사람이 형제로 보이면 새날이 밝은 것이다.”라고 했다. -김수환 추기경 편지 중에-

그런 새해를 기도한다.

누구나, 오늘 여기를 떠난다.

나는 내 가까이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더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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