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를 넘기기 전엔 아무도 모른다

“인생은 소설과 같다”
페이지를 넘기기 전엔 아무도 모른다

[최수권 칼럼(전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수필가) @이코노미톡뉴스] 가족모임이 있어 식사를 끝내고 커피를 먹기 위해 카페를 찾았다. 서울 외곽 지역인데도 실내는 사람들로 붐볐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자 종업원이 메뉴판을 펼치며 주문을 받았다. 차 한잔하는데 무슨 그렇게 종류가 다양한지 짜증이 났다. 청년은 아주 차분하게 메뉴를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그 청년을 향해 이렇게 충고했다.

“일행 모두가 노년층의 고객이니, 알아서 추천해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것이 고객 서비스지?” 하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청년은 죄송하다며 두 종류의 메뉴를 추천하고, 주문을 받았다. 그리고 일행을 향해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그가 대처하는 서비스의 언행들이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이어서 청년의 행동거지가 의아했다. 눈치 빠른 처형이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동남아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왔어요?”

“일본 사람입니다.” 그의 대답을 듣고 약간 의아했다. 우리보다 잘사는 일본인이 그것도 비정규직으로 한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언뜻 이해되질 않았다. 맑은 인상에 이목구비가 정결한 미남형이었다. 지적인 미소를 가진 그가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일본청년의 한국 알바이야기

나의 50년 전의 젊은 날 고달팠던 시절을 떠올렸다. 당시 시대의 환경은 척박했다. 지방의 읍내 도심에서도 일자리를 구한다거나, 알바자리도 얻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아예 없었다. 그때 나는 일본 밀항을 결심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무전여행으로 제주항과 목포항을 무작정 찾아 나섰다. 남녘 고향은 일본과 가까운 뱃길이 있어 일본에서 자리를 잡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그들의 성공 스토리는 청소년들 마음을 설레게 했다. 나는 그렇게 무모한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행에 옮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비용 문제였다. 말단 공무원의 3년치 연봉에 가까운 비용을 브로커들은 요구했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그렇게라도 돌파구를 찾고 싶었는데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그때, 제주항 근처에서 학교 동창인 김석중(중견소설가)을 만났다. 근래에야 알았지만, 그이도 일본 밀항을 하기 위해서 제주도에 왔었다고 했다. 그렇게 그 시대의 젊은이들은 희망 없는 시대에 몸부림 쳤다.

세월로 묻혀있던 50년 전의 무모청년이 떠올랐다. 그리고 오늘 만났던 일본청년을 비교하자 묘한 감흥이 솟구쳤다.

나는 일본인 청년이 궁금해졌다. 그를 밖으로 불러냈다. 고향이 일본 어디냐고 물었다. 도쿄가 고향이라고 했다. 대학을 나왔고 젊은 날 많은 경험을 쌓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여러 설명을 해주었다.

그래도 임금 등의 문제가 있을 텐데 괜찮으냐고 물었더니, 일본 지방도시의 임금수준과 큰 차이가 없다고 대답했다.

한국에 온지 일 년이 됐고, 또 다른 알바를 하고 있다며, 금년에 대학원을 진학할 계획이라며,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열심히 해보라며 악수로 격려해 주었다.

젊음은 꿈이 넘치는 시절이어야 한다. 세상과 부딪치며 많은 경험을 쌓는 게 귀한 자산이다. 그리고 폭넓은 인생경험은 자신을 더 단련시키고, 숙성시킨다. 그래 인생은 소설과 같다.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다. 기껏 공무원으로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 젊은이가 많다는 세태에, 나는 괜한 걱정을 해본다.

40년 전, 전자회사 영업과장 시절

40년 전 대기업의 전자영업과장으로 재직 시 있었던 일이다.

어느 지역대리점을 방문했다. 대리점에 근무하던 영업사원겸 A/S기사(20대초반)가 나에게 간절하게 부탁해 왔다.

“공고 전자과를 나왔습니다. 자신의 꿈은 대기업에 취업해서 직장생활을 해보는 게 소원이다.” 며 본사 취업을 부탁해왔다.

나는 거절의 표시를 이렇게 했었다.

“당신이 근무한 대리점의 매출을 2배로 상승시키면 고려하겠다.”고 도저히 가망도 없는 제안을 한 것이다.

일 년 뒤 그가 회사를 찾아왔다. 「과장님이 약속을 지킬 차례라며」

나는 그와의 약속을 잊고 있었는데 확인해 보니, 그 대리점의 매출이 2배 이상 상승되어 있었다. 나는 난감했지만 회사에 보고하고 규정에 없는 특채를 시켰다. 나는 그때 감격과 환희에 넘치는 그를 보면서 내가 베푼 작은 일이 누군가에 큰 힘이 된다는 것에 스스로 감동을 받았다. 성실하고 패기 넘친 그를 A/S기사, 판매사원, 영업사원을 거쳐 퇴사시키면서 회사의 용역업체 대표로 사업체를 독립시켜 주었다. 현재는 연 200억 정도의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열심히 살아가는 그를 지켜보면서, 그의 의지와 노력에 늘 격려를 보내고 있다.

며칠 전, 그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실을 찾았다. 누워있는 그를 보면서 알 수 없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이도 내손을 잡고 울고 있었다. 너무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건강을 챙기지 못한 것이다.

▲ 최수권(전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수필가)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기도했다.

“지독한 슬픔 앞에선 차라리 실컷 울어버리라고, 그 눈물이 스스로에 위로가 되고, 치유될 수 있다.”고 그리고 삶에 또 다른 기적을 청해 보자고...,

맞잡는 손으로 많은 얘기가 나에게로 전해져 왔다.

어수선한 듯 보이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많은 젊은이들이 예쁜 모습으로 살아간다. 삶은 진지하고 고뇌하며 때론 서성이며 숙고하며 살아가야한다.

이런 시가 떠올랐다.

문밖에서 서성이어보지 않은 이는
기필코 모르지
견디어 낼 수 없는 혹한 속에 잠들었다가
깨어나 울어보지 않은 이는
그냥 지나쳐 버리지
누군가를 타오르는 목소리로
불러보지 않은 이는
영영토록 알 수 없지

“문밖에서 서성이어...중에서/최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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