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우습게 보는 것 우스운 일

다이제스트 문고의 나라
일본은 모방의 국력
일본을 우습게 보는 것 우스운 일

[장홍열(한국기업평가원 회장) 칼럼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이톡뉴스)]

800페이지 속의 중국 지식

고전이란 누구나 많이 알고 있지만 실제로 다 읽은 사람은 거의 없는 책이다. 그 많은 고전을 우리 같은 아마추어들이 다 읽는다는 것은 솔직히 말해 불가능한 일이다. 때마침 지난 연말에 우연히 책방에 들렀다가 일본의 중국문학관계 전문가들이 다이제스트한 800페이지 중국지식이라는 번역본을 하나 구입했다. 
이 책은 중국 4천년 역사를 요약해 놓은 서지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200권이 넘는 고전을 역사ㆍ정치, 사상ㆍ처세, 소설ㆍ희곡, 시ㆍ시인, 자연과학, 예술로 대분류를 한 다음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각 분야의 고전을 다이제스트하여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이해를 돕도록 해 놓았다. 
이 200권 속에는 우리가 어린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야기를 글로 듣고 보았던 낯익은 책들이 많다. 역사ㆍ정치 편에는 춘추좌씨전, 후한서, 삼국지, 자치통감, 정관정요, 춘추등 33권, 사상ㆍ처세 편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중국고전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사서인 논어, 대학, 중용, 맹자, 오경이라고 하는 서경, 역경, 효경, 산해경, 곽거경 등 58권, 소설ㆍ희곡편에는 전등신화,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등 50권, 시ㆍ시인 편에는 시경과 굴원, 이백, 두보, 소동파의 작품이 45권, 자연과학편에는 본초강목, 황제내경 등 11권, 마지막으로 예술 편에는 다경, 역대명화기 등 4편, 총 201권이 축소되어 있다. 

부질없는 역사의 가정들

일본 사람들이 모방과 축소의 귀재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이웃 일본을 또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일본은 오랜 역사의 굴곡이 있어 그런지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이라는 정서가 많이 남아 있다. 그렇다고 멀리하기엔 아쉬움이 너무나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불행한 일이다. 남ㆍ북한을 에워싼 북핵 관계 6자 회담과정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1894~95년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벌였던 전쟁에서 청나라가 승전국이 되었거나 1904~05년 만주와 한국의 배타적인 지배권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제국주의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전국이 되었다면 한국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부질없는 망상이지만 역사의 가정을 한번 생각해 보았다. 일본을 지배한 군국주의자들의 영토 확장 망령에 의해 일본은 돌이킬 수 없는 세계역사의 죄를 짓고 한 시대를 얼룩으로 만들어 그 후손들에게 끊임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70년대 중반 월남이 패망한 후 아세아 개발은행 한ㆍ중(대만)ㆍ월남 그룹이 와해되어 그룹재건교섭의 임무를 띠고 남태평양 섬나라 몇 곳을 방문한 일이 있다. 파푸아뉴기니아와 서사모아에 들렀을 때 자연공원 곳곳에 방치되어 있는 야포를 본 일이 있다. 일본 오사카 병기창에서 제조한 것인데 그 당시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저렇게 무겁고 큰 무기를 수송해서 이곳에서 미국과 전쟁을 치렀다고 하니 그 저력에 놀랍다는 말 이외는 할 말이 없던 기억이 난다. 곳곳에 일본군의 잔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일본은 세계2차대전(1941~45년)을 자체적으로 생산한 군함, 잠수함, 어뢰, 비행기, 전차, 대포, 야포, 자동차로 연합국과 싸웠던 그런 나라이다. 우리가 베틀로 옷감을 짤 때 그들은 방직공장에서 옷감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일본을 우습게 보는 유일한 나라

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보는 유일한 나라가 우리 한국이라고 한다. 우습게 볼 나라가 절대 아니다. 그 저력은 어디서 오는가? 나는 전통의 보전이라고 생각한다. 가는 곳마다 그들이 쌓아 놓은 전통이 바로 일본의 국력으로 환생한다. 일본 국민들의 독서열은 세계에서 제일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그 복잡한 전철 안에서도 책들을 열심히 읽는다.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전문가들의 몫이고 일본국민들은 읽기 좋게 만든 다이제스트 문고판이나 만화책을 많이 본다. 바쁜 시간에 쫓기면서도 새로운 지식이나 정보를 얻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인들이 열심히 책을 읽는 것도 하나의 전통이다. 출판사들이 국민들의 기호에 맞게 저렴하게 보급판으로 책을 만들어 내놓기 때문에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도록 한다. 필자는 이번에 구입한 200권이 넘는 중국의 명저 다이제스트를 틈나는 대로 읽고 많은 지혜나 지식을 얻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중국고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인식이 달라졌고 신문이나 책을 읽을 때 만나는 고사성어나 상용어의 어원을 찾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특히 책 속의 명문장은 더 없는 지식의 폭과 깊이를 헤아려 주고 있다. 

새 1만원권 속의 혼천의

지난 1월 22일 새로 발행된 1만원권 지폐에 천문시계인 혼천의(渾天儀, 국보230호)가 그려졌다. 혼천의 유래를 이번에 중국고전 진서천문지(晋書天文志)다이제스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책은 630~640년대에 중국고대의 풍부한 천문학적 지식을 모아 다채로운 우주 구조론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 장홍열(한국기업평가원 회장)

당시 하늘을 논하는 사람들 가운데 개천(蓋天), 선야(宣夜), 혼천(渾天)이라는 세 학파가 있었다. 이 세 학파 중 하늘의 상태를 가장 잘 파악하는 것이 혼천이다. 진서천문지 저자인 이순풍(李淳風)이 혼천설을 신봉하는 사람들의 실험적인 논증이나 사고논리가 가장 뛰어나다고 믿고 후한의 장평자(張平子)가 구리로 만든 혼천의(渾天儀, 혼천설에 기초해 만든 천체모형)를 밀실에 두고 그 옆에 사람을 지키게 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혼천의가 나타내는 천문현상(별의 출몰 등)을 천문대에서 관할하는 사람에게 시시각각 전달했더니 모든 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 떨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혼천의 도리는 증명되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중국 사람들이 새로 나온 우리나라 1만원권 지폐에 혼천의가 그려진 사실에 관심을 갖는 것도 이런 맥락과 연관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90호(2007년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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