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수권(전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수필가)

[최수권(전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수필가) @이코노미톡뉴스] 을이 깊어진다. 스산한 바람이 일어 가을의 정취가 단풍으로 내려앉는다. 이 계절, 나는 어지간히 세월의 난간에 기대섰다는 사념이 차오른다. 투명하게 선연히 떠오르는 세월의 저편들을 아슬하게 되돌아보게 되고, 그 시간 속에 하나하나의 장면들이 되살아난다. 한 순간도 소홀히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젊은 날서부터 나름의 각오로 살아 왔지만, 돌아보니 후회로 남기도 한다. 그래도 이 날껏 내일을 의식하면서 나대로의 화두는 긴장속의 안간힘이었다. 최선을 내어건 하루하루의 진력이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온 날들이었다. 나에겐

살아가면서 우리는 무수한 종류의 세상바람과 맞닥뜨린다. 그래 우리가 살아가는 일이란 늘 바람과 함께 하는 일인지 모른다. 어떤 이는 그 바람에 함몰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돌아오지 않는 생의 열차를 타고 간이역을 지나고 광야를 스치면서 어두운 터널도 지난다.

우리 바람과 함께하는 삶의 여정이란, 순풍이 있는가 하면 역풍이 있고, 훈풍이 있는가하면 혹한의 칼바람도 있다. 삶의 길목에서 무수한 바람과 맞서며 한 그루의 나무로 서서, 순응하면서 버티는 이들도 있다. 아니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일지 모른다.

나와 각별히 지내는 성현도(미래공간 회장) 라는 지인이 있다. “환경디자인” 사업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해방 후 국내로 들어와 남도의 땅끝 마을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취업을 했다. 서울 충무로 근처에 산재해 있던 간판 점포였다. 그는 천성적으로 그림에 소질이 있었고, 그의 성실함을 인정받아 사장의 배려로 중·고등학교를 마쳤다. 그는 당시 미술 전공한 이들도 어렵다는, 극장 선전간판을 그렸고, S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방학 중에 미8군영 내에서 초상화를 그려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나와의 인연은 70년대 중반 정부에서 주최했던 산업디자인전에서 부터다. 나는 당시 전자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가 출품한 전자제품 디자인이 대상을 받았고, 어느 대학교수가 그를 추천하여 회사의 제품디자인에 참여시켰다. 또한 전자제품 전시회 등의 부스디자인과 설계, 시공 등을 참여시켰고, 크고 작은 행사를 맡기기도 했다. 그는 참 성실했고, 정직했다. 너무 정직해 회사가 걱정할 정도였다. 그래도 1남2녀 모두를 대학에서 미술전공을 시켰다. 40여년 동안 그를 지켜보면서, 큰돈은 못 벌었지만 그의 무난한 삶에 늘 응원해 주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 호국미술대전, 한국현대미술대전 등의 심사위원으로 초빙되는 미술계의 중진이다.

일전에 그와의 점심 약속이 있어, 지하철을 타기 위해 교대역으로 향했다. 승강장 입구는 그렇게 붐비지 않았다. 행색이 그렇게 남루하지 않는 60대 중반의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선생님, 어제 저녁부터 굶었더니 너무 배가 고프네요.” 그의 차림으로 봐선 노숙자 같아 보이질 않았다. 그가 건네는 말에는 부끄러움과 간절함, 또 슬픔 같은 게 묻어 있었다. “따뜻한 국밥이라도 드세요.” 그렇게 두어 끼 식사비를 건넸다. 그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총총걸음으로 승강장을 빠져나갔다. 그의 옷차림에선 노숙자의 누추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업에 실패했던지, 아니면 가정에 피치 못한 사정이 있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역내 TV에는 “고등학교 무상교육”이란 자막이 떴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스쳤다.

내가 봉사활동을 나가고 있는 “무의탁여성요양소(경기도 소재)”가 있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운영비가 없어 늘 허덕인다. 정부지원은 전무하다.

누구나 나름으로 열심히 살아간다. 사업을 하던지, 자영업을 하면서 소득세 등 각종 세금을 낸다. 그리고 사업이 망했다면 정부에선, 그가 잘나갈 때 냈던 세금을 되돌려주는 제도는 없는가?

무지에서 오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논어에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은 생명이 있는 우주만물중 하나다. 언젠가는 죽어 소멸되어야 하는 유한적인 존재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이고 거역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다.

지금 살고 있는 시간적 공간, 그 자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미세하고 자잘한 생명의 숨소리를 섬세하게 감지해 내는 것, 그것을 보살피고 어루만지는 것이 정치 일 듯 싶다.

산다는 것은 무수한 세상의 바람과 마주하며 함께하는 일이다.

바람의 꼬리는, 언제나 고요를 동반한다.

가을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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