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톡뉴스
  • UPDATE : 2018.12.11 화 17:43
  • 처음으로
  • 로그인
  • 회원가입
  • 전체기사
상단여백
HOME 인터뷰 인물 탐방
[e톡-이사람②][세종대왕 즉위 600주년] 인간 이도(李祹)는 인간으로서의 노력을 다 썼다'하늘이 내려주신 준비된 왕' by 이톡뉴스
  • 최정아 이코노미톡뉴스 기자
  • 승인 2018.11.26 16:06
  • 댓글 0

2018년 무술년 올해는 우리나라 조선 시대 세종대왕이 즉위한 지 600년이 되는 해이다.

▲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사진@이코노미톡뉴스>

[최정아 기자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이톡뉴스)] 대한민국의 자랑인 세종(世宗, 1397년 5월 7일~1450년 3월 30일)은 조선의 4대 왕으로, 그는 태종(太宗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이름은 이도(李祹) 재위 기간은 1418년부터 1450년까지 총 32년이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만 나라가 평안하게 된다."
by 民惟邦本, 本固邦寧 (세종실록)

성군 세종대왕의 묘는 영릉으로 칭하며 현재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왕대리에 아내(왕비)인 소헌왕후(昭憲王后, 1395년 9월 28일~1446년 3월 24일)와 함께 위치하고 있다. 소헌왕후는 문종과 세조(수양대군), 안평대군의 어머니였다.

세종 이도의 직업은 다양하기 그지없다. 조선의 왕, 언어학자, 발명가, 수학자, 과학자, 음악가 등, 이 모든 직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백성을 위한 성군'이라 칭할 수 있겠다.

세종대왕은 충녕대군 시절, 아버지인 태종의 비호하에 다양한 활동을 보장받아 충녕대군은 기본적인 수양학문을 비롯해 음악과 미술 등의 분야에서도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게 되었다. 

세종 曰, "대의엔 타협이 없다. 광평을 잃어도"
by "뿌리깊은 나무(사극드라마)"

태종이 선위로 물러나고 충녕대군이 드디어 조선의 4번째 왕이 되었다. 그러나 태종은 상왕으로서 4년간 실권을 가지고 있었다. 태종이 사망한 후 세종은 드디어 국가의 기틀을 본격적으로 다져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세워준 왕의 기틀 속에서 세종은 왕으로서 탄생했지만 성군으로서 다져가기 위한 초석의 시작은 상왕 태종의 죽음이 필요했다. 권력은 피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

세종이 자신만의 조선 치하 시대를 열어간 때는 세종 9년부터 보는 이들이 많다. 그 전 까지는 영의정 유정현, 좌의정 이원, 우의정 정탁, 병조판서 조말생을 비롯한 많은 신하들이 대부분 상왕인 태종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의 자세한 업적은 서술하기도 참 버겁다. 훈민정음 창제, 4군 6진 개척, 집현전 설치, 악기 개발, 과학 증진(세계 최초의 강우량 측정기 '측우기'·해시계 앙부일구·물시계 자격루 발명), 화학무기 개량·개발, 유교사상 발전 등 모든 분야를 통틀어서 발전시켰다고 총평할 수 있겠다.

▲ 2011년에 방영된 세종대왕을 다룬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사진@SBS>

과학기술 분야에 대해 일본 도쿄대의 이토 준타로 연구팀이 편찬한 '과학기술사 사전'에 따르면, 1400년~1450년 사이의 세계 과학 기술의 주요 업적에 중국(4건), 일본(0건), 기타 동아시아(19건)에 조선은 21건이라고 기술될 정도의 세종 치하의 조선은 세계 과학 강국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모든 업적이 백성들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애민정신 기반의 정책이었다는 점이 우리가 성군 세종대왕을 부르는 이유일 것이다.

책벌레 세종의 집요한(?) 학구열은 이미 정평이 나와 있는 상태. 신하들과 함께 토론하는 열정은 오늘날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시스템을 살아가는 시대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입법시스템인 국회가 모두 경청해야 할 부분이다. '설득'이라는 절차가 왜 중요한지, 설득으로 인해 파생되는 힘은 대단히 큰 파워를 가지기에 이를 정책 드라이브에 걸 수 있을 것이다.

'세종(Sejong)'이라는 거대 타이틀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세종대왕은 우리나라 초록색 지폐인 만원에 등장한다. 재미있는 번외 이야기로, 지폐 속 세종대왕은 점점 젊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나 SNS(누리소통망) 사이 속에서 젊은 세대들은 세종대왕의 성형설과 꽃중년설이 한때 화제가 되곤 했다. 1960년 '천환' 지폐 속 첫 세종대왕의 모습은 노인의 모습이었다. 이후 현재까지 3차례 수정돼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 <사진@이코노미톡뉴스DB>

세종대왕함(DDG-991)은 한국 최초의 이지스 구축함으로, 2004년 9월 건조해 2007년 5월 25일 진수했다. 360도 전방위를 감시하는 스파이-1D 이지스 레이더와 각종 미사일, 기관포로 3중 방공망을 구축하고 있다. 최대 1000㎞ 떨어져 있는 항공기나 미사일을 찾아낼 수 있고, 900개의 목표물을 동시에 추적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인천국제공항은 초기 계획에는 '세종국제공항으로 기획되었다. 그러나 인천시의 반대로 1996년 3월에 신공항 명칭이 '인천국제공항'으로 확정됐다.

'유네스코 세종대왕상'은 세계 각국의 문맹 퇴치에 공로가 있는 개인이나 단체에 주는 상이며, 폴란드에는 '세종대왕 고등학교'가 있고, 한국의 세종대왕 고등학교는 2014년에 재정 문제로 폐교되었다.

인간 이도(李祹)의 모습

인간으로서의 세종대왕 이도의 모습은 평생 공붓벌레로 유명해 운동 부족으로 인한 체형은 비만이었다고 전해진다. 고기를 무척이나 좋아해 부왕 태종도 이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고기를 좋아하고 책 읽기를 좋아한 만큼 운동량 부족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이로 인해 말년에는 당뇨병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기까지도 했다. 고기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고기반찬이 없으면 살짝 투정하기도 했다고 실록에 기록돼 있다.

세종은 18남을 본 만큼 조선 왕조사에서 아들을 많이 낳은 최대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세종은 소헌왕후와 금실도 좋아 후궁들을 늦게 들이기 시작했다. 

세종의 취미는 공부로, 이는 서울시 광화문광장 동상 밑에 있는 세종대왕 기념관에 개인 프로필로 적혀 있는 내용이다. 

세종대왕은 조선 제4대 왕으로 1450년 2월 17일 향년 54세를 일기로 서거할 때까지 끊임없이 농업과 과학기술을 발전시켰으며 나아가 우리 민족의 자부심이자 최대의 유산인 한글을 창제하는 위대함을 보여주었다. 한글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1997년 10월에 등록됐다.

이순신 장군과 함께 우리나라의 존경하는 역사 인물의 부동의 1위인 세종대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하늘이 내려주신 준비된 왕'이라고 이톡뉴스를 부르고 싶다. (자료제공 : 나무위키, 위키피디아 등)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채택된 제보는 사례하겠습니다.)

최정아 이코노미톡뉴스 기자  pr@economytalk.kr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
위 기사가 도움이 되었다면 추천버튼을 클릭해주세요!

최정아 이코노미톡뉴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유영민 장관, 경찰망·소방망·재난안전망 모두 망 달라…관리...유영민 장관, 경찰망·소방망·재난안전망 모두 망 달라…관리...
[안병일 칼럼] 조선의 협치와 [안병일 칼럼] 조선의 협치와 "광화문 거버넌스(Gover...
자영업자 카드수수료 개편, 연 매출 5억~500억 원 이하...자영업자 카드수수료 개편, 연 매출 5억~500억 원 이하...
장미인애, 모르는 男性이 무리하게 접근...에스엔에스에 새...장미인애, 모르는 男性이 무리하게 접근...에스엔에스에 새...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포토 뉴스
PREV NEXT
여백
여백
많이 본 뉴스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