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10월 10일, 日 천황 살인미수로 교수형

▲ 1932년 1월 8일 체포된 이봉창 의사. <사진 source=Japanese book "Showa History Vol.6: Manchurian Incident" published by Mainichi Newspapers Company>

[안경하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87년 전 오늘인 1932년 10월 10일, 독립운동가 이봉창(李奉昌) 의사가 일본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일본 쇼와 천황(히로히토)의 살인미수로 32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1932년 1월 8일, 日 천황에 수류탄 투척

이봉창 의사는 도쿄 외곽에서 열병식 참관 후 돌아가는 일본 히로히토 천황을 향해 도쿄 경시청 부근에서 마미(麻尾) 수류탄 1개를 투척했다. 이봉창은 천황의 마차 행렬에서 두 번째 마차에 폭탄을 던졌으나 천황은 첫 번째 마차에 탑승하고 있었다.

두 번째 마차를 끌던 근위병과 말이 큰 부상을 입었고, 일본 경찰들은 현장에서 자수한 이봉창을 체포했다. 이 의사는 수중에 2개의 수류탄 중 남은 1개를 경찰에 넘겼다.

조선인 차별, '왜황 도살' 참여에 맘 굳어

1900년 8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난 이봉창은 가정 형편상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일본인이 운영하는 여러 상점에서 일을 했다. 이후 용산역에서 역무원과 기차 운전 수습생 등으로 일하다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 그만두고 일본의 오사카로 건너갔다.

이윽고 어느 일본인의 양자가 돼 기노시타 쇼조(木下昌藏)라는 일본식 이름을 얻었다.

1928년, 교토에서 진행된 히로히토 천황의 즉위식을 순수한 마음으로 구경하러 왔다가 한글 편지를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돼 11일간 투옥되었다. 이때부터 이봉창은 독립운동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임시정부 김구를 만나다

1931년 1월, 생계를 위해 중국 상하이에 온 이봉창은 수소문 끝에 이름도 몰랐던 안중근의 동생 안공근을 만나게 된다.

곧이어 상하이 소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거류 민단 사무실 직원들과의 술자리에서 그는 일본 천황을 암살하고 싶다고 비범함을 표했다. 일본인 스타일의 이봉창을 밀정이라 의심했던 주변인들과 달리 김구는 그의 진심을 파악하고 한인애국단에 소속시킨 후 밀명을 내린다.

"(이봉창 曰)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지난 31년 동안 육신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꿈꾸며 우리 독립 사업에 헌신할 목적으로 상하이로 왔습니다.
참으로 (김구)선생님이 하시는 일은 영웅의 도량이라고 생각합니다." by 백범일지
▲ 1931년 12월 13일, 안공근의 집에서 태극기 앞에서 선서 후, 수류탄을 양손에 든 채 기념 촬영을 했다. <사진=국가보훈처>

1931년 12월 13일, 안공근의 집에서 "나는 적성(赤誠)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괴수(傀首)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선서 후  수류탄을 양손에 든 채 기념 촬영을 했다.

김구의 신임을 받은 이봉창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거사를 수행했지만 미수에 그쳤다. 하지만 그는 괘념치 않았다고 전해진다. 곧바로 형법 제73조 위반 혐의로 도쿄 경찰서에 구금되었다가, 도요타마 형무소로 이감돼 수감되었다.

1932년 '뜨거웠던' 그 해
9월 16일 사형 선고, 10월 10일 순국

1월 8일 경시청 재판과 6월 도쿄 지방재판소 재판 후 1932년 9월 16일, 대법원에서 사형이라는 최종 선고를 받았다. 1932년 10월 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향년 32세 이봉창 의사는 미혼이었다.

이봉창의 의거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에 감동을 받은 매헌 윤봉길(1908년 6월 21일생) 의사는 그가 순국하기 전인 그해 4월 29일, 중국 상하이에서 홍커우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일본 천장절 및 전승 기념식' 행사 단상에 수통폭탄을 던졌다. 

1932년 일본에서, 이봉창(당시 32세) 의사는 10월 10일 교수형으로 순국했고, 윤봉길(당시 25세) 의사는 12월 19일 소총에 의한 처형으로 순국했다. 1932년 그해, 대한민국의 가슴은 뜨거웠다.

광복 후 귀국한 김구는 이봉창 의사의 유해를 돌려받아 1946년 효창공원에 윤봉길, 백정기와 함께 안장했다. 이들의 묘역을 가리켜 삼의사묘(三義士墓)라고 부른다.

빙그레(1967년 창립, 설립자 홍순지)의 김호연 회장은 이봉창 의사 기념사업회 회장직을 맡아 이봉창 의사의 의거를 널리 알리고,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 3년 간 '이봉창 의사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또한 1993년에 사재를 털어 비영리의 김구재단을 설립했다.

한편, 10월 10일은 '임산부의 날', '정신건강의 날'이자 '세계 사형폐지의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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