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실현이 불가능해질수록 커지는 상징의 힘
소비자의 욕망과 사람의 의미

(캘리그라피=이코노미톡뉴스 디자인팀)
(캘리그라피=이코노미톡뉴스)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올 여름 프로모션은 유독-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캠핑스럽고 여행스럽다. 나라 안팎으로 바이러스 때문에 난리고 어지간하면 집에 있으시라는 정부의 당부에 웬만큼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고서는 나들이하기 쉽지 않은데 광고와 프로모션은 밖에 나가라고 부추기는 듯하다.

지인인 J 는 대기업의 유능한 중역이다. 한 직장에서 20년 이상 근무하는 동안 성실함과 업무 능력을 두루 인정받고 있다. 관련 분야 석사 학위가 있고, 협회에서는 중역을 맡고 있으며 지자체의 회의에는 고문으로 불려갈 만큼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런 그녀가 6월 초에 갑자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열심히 마시기 시작했다. 혼자 마시는 것도 모자라 나를 포함해 가까운 지인까지 사 줬다. 조그만 가방 때문이다. 스타벅스에서만 살 수 있다는 그 가방 말이다. 샀냐고? 샀다. 명색이 광고계에서 20년 가까이 버틴 나는 그 가방을 사은품으로 주는 줄 알고 있었으나 알고 보니 열일곱 잔을 마셔야 겨우 그 가방을 살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 그리고 그 여성의 남친과 남편들이 복날 삼계탕 집에 줄 서듯이 새벽부터 줄을 섰다. 그녀는 캠핑 의자도 샀다. 할리스 커피의 폴딩 카트도 샀다. 그걸 모아 놓은 사진을 보니 요즘 친구들 표현을 빌리면 영락없이 캠핑 “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텐트에서 자본 건 초등학교 시절이 마지막일 테고 캠핑에 전혀 관심이 없다.

소비자 지갑을 여는 프로모션


소비자의 구매 동기를 알기 위한 학계와 업계의 수고는 눈물겹다. 설문조사는 고전이고, 차 음료의 시장조사팀은 여대 앞에 죽치고 앉아 여대생들이 어떤 사이즈의 차 음료를 사고 얼마나 오래 들고 다니는지 지켜보기도 했다. 유명 대학들의 소비자 심리학과에서는 소비자가 원하는 걸 살 때 뇌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기 위해 MRI까지 동원해 뇌를 촬영하고, 뇌파를 측정하고, 아이 트래킹까지 하고 있다. 이런 분야는 뉴로 마케팅으로 통칭 되며 제법 각광 받고 있다.

토머스 하인은 <쇼핑의 유혹>이라는 책에서 쇼핑의 동기를 아홉 개나 제시했고 파멜라 댄지거는 <사람들은 왜 소비하는가>에서 소비자에게 제시할 수 있는 구매 사유를 열네 가지나 제시했다. 그러나 그 많은 소비의 이유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의 구매 동기는 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실용과 쾌락. 그러나 최근에는 이 두 경계조차 모호해진 느낌이다. 특히 스타벅스는 학계의 이런 고전적 이분법을 유유히 해체해 왔다. 스타벅스는 1999년에 한국에 처음 등장한 이래 속칭 된장녀의 아이콘이 되기도 했고, 2010년대에 들어서면 카공족이라는 단어를 탄생시켰다. 이 과시와 실용의 양극단을 오가는 동안 2003년 겨울부터는 몇 만 원짜리 다이어리 프로모션으로 사은 행사와 판촉 행사의 경계를 허물었고, 2013년 여름, 음료 쿠폰으로 시작한 서머 e프리퀀시 행사는 2018년엔 돗자리를 내놓더니 작년의 비치타월을 거쳐 올 해엔 작은 가방과 의자로 대박을 쳤던 것이다. 비단 스타벅스 뿐만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대형 마트의 주류 코너를 가면 맥주의 종류에 맞게 최상의 술맛을 보장하는 전용 글라스를 주는 프로모션은 보기 힘들다. 여섯 개, 열두 개, 스물 몇 개씩 맥주 캔을 담은 아이스박스, 보냉 가방, 캐리어 쿨러까지 등장했다. 이쯤 되면 맥주 브랜드와 커피 전문점의 프로모션 제품만 모아도 캠핑이 가능할 정도다.

토머스 하인 (Thomas Hine)의
토머스 하인 (Thomas Hine)의 "쇼핑의 유혹"

욕망 실현이 불가능해질수록 커지는 상징의 힘


여행 가기 힘든 시기에 이런 프로모션들이 대박을 치고 있는 이유는 뭘까? 관중 없는 야구인데 치어리더는 있고, 서포터 없는 프로축구지만 현수막과 녹음 된 함성소리는 틀어 놓는 것과 같은 걸까? 욕망은 이룰 수도 가질 수도 없으니 그 상징과 파편이라도 최선을 다해 획득하려고 애쓰는 걸까?

이렇게 상징으로 욕망을 대체해서 소비되는 흐름은 오래 됐다. 저출산 시대가 이미 절정일 때 <아빠, 어디가>와 같은 육아 프로그램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슈퍼맨이 돌아 왔다>는 랜선 이모, 삼촌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면서 사랑 받고 있다.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혼술, 혼밥은 당연한 일이자 고독한 일이지만 그 쓸쓸함은 잘 감춘 <나 혼자 산다.>나 <밥블레스유> 같은 프로그램도 사랑을 받고 있다. 이 프로그램들은 일본의 <와카코와 술>이나 <고독한 미식가>처럼 진짜로 혼자 먹고, 혼자 마시는 1인 가구의 고독은 교묘히 외면하면서 1인 가구와 독신남녀의 환상을 그럴 듯하게 진열하고 있다.

전염병으로 거의 모든 개인이 격리 되다시피 직장과 집에 고립 되면서 그 밖을 향한 우리의 욕망과 환상은 더 커져 가고 있는지 모른다. 1989년 여행 자율화 시행 이후 한 번도 멈춰 본 적 없던 공항이 멈춰 섰고, 1981년 시작 된 프로야구가 처음으로 관중의 응원 없이 치러지는 이때, 우리의 여행과 응원의 욕망은 더 커졌는지 모르고, 더불어 그 욕망의 편린, 상징을 향한 갈망이 더 커진 것인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소비자의 욕망과 사람의 의미


소비자 심리학자와 광고하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소비자의 모든 욕망은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 다는 것을. 그래서 무간지옥처럼, 표류 중의 갈증을 바닷물을 마시는 걸로 해소할 수밖에 없는 난파선의 선원처럼, 소비자의 욕망은 전염병이 없던 시기에도 온전히 해소 될 수 없었기에 많은 프로모션이 때 마다, 철마다, 해 마다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프로모션은 말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마케팅의 맥락에서는 물건을 소비자에게 더 팔기 위해 소비자를 향해 한 걸음 더, 다른 경쟁 업체보다 한 발작 더 뛰는 것이다. 승진의 맥락에서는 커리어의 진보를 의미하고, 그 진보를 위해 더 뛰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어떤 맥락에서든지 간에 그 획득과 상관없이 인간 본연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무엇을 사든 안 사든, 어떤 위치에 오르든 못 오르든 간에 인간 그 본연의 의미는 인간 그 안에 있다는 것이다. 만약 소비자가 획득한 사물과 지위로 인해 주체의 의미가 변한다고 “착각”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지그문트 바우만과 한병철이 말한 “주체의 사물화”다. 사물화 된 인간은 의미를 스스로 상실한 인간이고, 그런 삶이 계속 된다면 결국은 바우만의 책 제목처럼 <쓰레기가 되는 삶>으로까지 전락 할지 모른다.

지금 획득하지 못한 사물로 인해, 실현할 수 없는 욕망으로 인해초조해하지 말자. 아무리 멀리, 오래 떠났다 와도 사라지지 않았던 여행 부심처럼 그 초조함은 금지 전에도 존재했었고 금지가 해제 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을 초조함이다. 정부가 그 일정을 가을까지 흩트려놓은 이 시국의 여름휴가는 어쩌면 우리의 그 초조함을 밖으로 꺼내 찬찬히 들여다 볼 소중한 기회가 될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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