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페 광고가 말하는 이 시국의 가치

현대자동차의 SUV 차량 모델 싼타페(SANTA FE). (사진갈무리=HYUNDAI MOTOR COMPANY)
현대자동차의 SUV 차량 모델 싼타페(SANTA FE). (사진갈무리=HYUNDAI MOTOR COMPANY)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자동차와 그 광고는 오랫동안 부와 지위를 표현해 왔다. 일본의 버블 경제 시대에는 대리가 타는 차, 과장이 타는 차, 부장이 타는 차, 사장이 타는 차로 구분해서 노골적으로 카피를 썼을 정도였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세단은 배기량이 올라 갈수록 부와 지위를 광고에 담아냈고 배기량과 차체가 작거나 해치백 일 때는 경쾌함과 젊음을 담아내 왔다.

자동차 광고의 불문율


다양한 자동차 광고에는 학계와 업계 공히 공유하는 나름의 불문율이랄까 규칙 같은 것이 있어 왔다. 일단 자동차가 나오면 움직여야 한다. TV 광고에서 자동차가 가만히 서 있다면 그건 시간 낭비라고 여겼다. 또 배기량이 클수록, 가격이 비쌀수록 운전은 남자가 한다. 미국에서 사커맘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던 6인승 이상의 승합차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세단과 SUV 광고에서의 운전자는 남자다. 반면 경차나 배기량이 낮은 경우에는 젊은 여성이 운전하기도 한다. 또 룸미러를 보는 장면은 있어도 백미러를 보는 장면은 흔치 않다. 왜냐하면 광고 속 자동차가 차선을 바꾸거나 후진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불문율을 잘 지켜온 자동차 광고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른 얘기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 중 싼타페 광고를 교과서 보듯이 보고 있다. 1분짜리 풀 버전이 궁금해서 유튜브에서 찾아 보다 방심한 채 울컥하기도 했다.

싼타페 광고가 말하는 이 시국의 가치


젊은 가족을 다룬 세 편의 광고는 각기 <엄마의 탄생>, <끄떡없이 버틸 게>,<아무 일 없이 크면 좋겠어.>다. 엄마의 탄생에서는 한 여성이 엄마가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애를 낳고, 밤에 깨서 우유를 먹인다. 육아에 지친 나머지 자신한텐 모성애가 없는 건 아닌지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이 옷만 고르고, 아이 사진만 SNS에 올리는 자신을 보며 엄마가 되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 스토리가 흐르는 동안 자동차는 행인 1처럼 잠시 단역 출연이다. 카시트를 단단히 동여 메는 장면에 잠시 나오고 마지막 장면에는 멀뚱히 나무 밑에 주차 되어 있다.

두 번째 편에서는 아빠가 나온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더 커야하고 대학 졸업할 때까지는 벌어야 하니 성실히 회사를 다닌다. 건강 생각해서 하지 않던 운동도 하고 풀때끼라면 줘도 안 먹던 사람이 샐러드도 먹는다. 아이들이 잠든 뒤에나 퇴근하지만 딴딴한 장딴지 자랑하며 자고 있는 애들을 보면 그냥 웃음이 나온다. 광고 내내 자동차는 도심을 가로질러 퇴근하는 아빠의 옆얼굴을 차창으로 간신히 보여주는 데나 쓰이고, 이후 집 담벼락에 멀뚱히 세워 진다.

이 자동차를 홀대하는-60초짜리 풀 버전을 봐야 그나마 자동차의 풀 샷을 두 번 볼 수 있는-광고 시리즈의 세 번째 편에선 자동차로 교외로 나들이를 간다. 작은 아이는 유아용 카시트에 잠들었고, 큰 딸은 어느덧 커서 어린이용 보조 카시트에 앉아 창밖을 구경한다. 그 고요한 순간 엄마는 큰 애가 아팠던 때를 떠올린다. 그렇게 아이가 아픈 걸 겪고 나니 아이가 뭐가 되길 바라는 욕심보다 그저 “다 필요 없고 아무 일 없이 크면 좋겠어.”라는 마음이 절로 생겼음을 고백한다.

이 세 광고는 가족 사랑을 슬로건처럼 말하지도 않고, 가족과 아이의 건강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설교하지도 않는다. 그저 한밤중, 급한 마음에 애를 들춰 업고 응급실로 뛰어드는 엄마의 질끈 묶은 포니테일을 보여줌으로써, 슬리퍼를 짝짝이로 신고 응급실로 달려 온 아빠의 발을 한번 비춰줌으로써, 카시트를 단단히 고정하는 엄마의 가녀린 손목을 보여줌으로써, 뒤척이는 애들을 보는 아빠의 미소와 꾸역꾸역 넘기는 샐러드를 보여줌으로써, 그 소중함을, 그저 보여줄 뿐이다.

우리는 응원 받을 만 하다.


그렇다. 이 시국에 자이언티의 <양화대교> 가사처럼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일상을 살아내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이 있겠는가. 세계가 문을 닫고, 한 시간을 넘게 섰던 공항의 탑승 수속 줄은 사라지고, 모든 공연과 이벤트가 취소 된 지금. 학교를 못 열어서 미처 수확 못한 계약 농가와 어촌의 급식용 농수산물을 온 국민이 십시일반으로 사주는 지금. 지금 이 순간 더 바랄게 뭐가 있겠나.

어렵게 시작 된 1학기, 종합 병원 직원인 아내를 대신 해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를 거의 매일 데리러 갔다. 그 때마다 학교 정문에서 목이 빠져라 담장 안을 기웃되며 아이가 나오길 기다리는, 꽁꽁 마스크를 쓴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봤다. 다들 다른 차를 몰고 왔을 테고, 나 같이 걸어 온 부모도 있겠지만 마음은 같을 것이었다. ‘오늘도 학교는 아무 일 없었구나.’

온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은 뒤 뉴스를 보면서 우리 지역은 오늘 확진자가 늘지 않았구나, 나라 전체의 병세가 좀 잡혀가는 구나 안도하며 아이를 재웠을 테고 아침이면 잔불 같은 불안한 마음을 다잡으며 아이를 등교 시켰을 것이다.

광고 관련 학과에서는 광고의 순기능에 대해 가르친다. 소비자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신제품의 기능을 가르쳐 줄뿐만 아니라 신생 기업을 소비자에게 소개시켜 진입장벽을 극복하게 도움을 준다는 것 등이 교과서에서 말하는 광고의 순기능이라면 순기능이다. 그러나 어떤 광고학 관련 책에서도 광고가 시대의 아픔을 위로하고 지친 일상을 다독일 수 있다고 가르치진 않는다. 그러나 이미 현대자동차는 인도 진출 20주년 광고로 인도 국민을 감동의 눈물바다로 몰아넣은 전과(?)가 있다. 유튜브에서 hyundai india commercial로 검색하면 <조회수 2억>을 달성했다는 황금색 숫자가 선명한 광고를 볼 수 있다.

작년엔 문자 그대로 “성공의 상징”으로 그랜저를 밀던 기업이 아빠의 짝짝이 슬리퍼를 보여주는 섬세함으로 성공과 행복의 정의를 다시 쓰면서 이 시국을 살아내고 있는 국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광고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대기업의 마음 씀씀이에 그 어떤 국제적인 광고상을 받은 것보다 더 큰 경의를 보낸다.

이 경의 끝에 조금 더 욕심을 더하자면 이 시국에 이미 실직했거나 그 위기에 직면해 있고, 애써 준비한 공연을 하지 못해서 거의 백수로 살고 있는 수많은 문화 예술인과 관련 스텝들, 그 외 이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는, 지방의 카피라이터로서는 다 알 수 없는 어려운 형편에 처한 모든 가정도 위로할 수 있는 광고도 만들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울러 그 광고가 직장도 없고, 차도 없고, 출산과 육아는커녕 결혼할 형편도 안 되고, 내 몸 하나 누일 집 한 칸 없이 작은 원룸과 고시원을 전전하며 전망이 여전히 어두운 가운데서도 취업을 위해 묵묵히 각종 공부와 준비를 하고 있는 청춘까지 위로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바람도 그 욕심에 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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