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가 없어진 이유는?
도시의 다양성과 3T 이론

이탈리아 스타벅스 1호점 밀라노점. (사진=연합뉴스)
이탈리아 스타벅스 1호점 밀라노점. (사진=연합뉴스)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작년 초에 우연히 눈에 띈 것이 울산의 교통 요지라고 할 수 있는 공업탑 버스 정류장 인근의 스타벅스의 철수였다. 스타벅스의 철수는 예삿일이 아니다. 그것도 8차선 대로변, 울산 시내를 왕래하는 거의 모든 시내버스와 인근 지역으로 가는 광역버스도 정차하는 버스 정류장 인근의 스타벅스가 철수하는 것은 광고나 마케팅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가벼이 넘길 일은 아니다.

스타벅스가 없어진 이유는?


스타벅스는 모든 매장이 직영이다. 그러니 테헤란로에 매장이 몰려 있는 것도, 울산 공업탑처럼 하나 있던 매장이 철수 하는 것도 다 본사의 판단이어서 그 내막을 알 수 없어 궁금한 사람은 개장과 철수의 이유를 추측해 볼뿐이다. 일단 한국 스타벅스 매출의 6,70퍼센트는 2030여성 직장인이다. 특히 서비스업과 사무직 여성, 여대생이 주요 고객이다. 그래서 대학 밀집 지역과 대중교통의 접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들은 이런 곳에 매장을 집중시키는 전략을 쓴다.

울산과 공업탑 주변엔 이런 매력적인 조건이 없어진 걸까? 스타벅스 마케터의 속내를 가늠할만한 울산의 통계들이 있다. 울산은 7개의 광역시 중에서 여성 1인 가구 수보다 남성 1인 가구의 수가 유일하게 더 많은 도시다. 또 대학 수도 가장 적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발간한 2019년 문예연감을 보면 울산 예술인의 문화예술활동은 2018년, 811건으로 17개 광역시도 중 16위를 차지했다. 당연히 소극장 수도 적고 요즘 뜨고 있는 독립서점 수도 최근 기록에 의하면 한 개에 불과하다.

도시의 다양성과 3T 이론


이런 울산의 통계들을 보고 있으면 플로리다 교수의 창조도시의 3T 이론과 다양성 화두가 떠오른다. 이론의 핵심은 간단하다. 도시가 발전하려면 기술수준(Technology, 1T)이 높아야하고, 이를 위해서는 재능(Talent, 2T)있는 인재가 모여들어야 하며, 도시는 이런 인재들을 받아들이는 포용성(Tolerance, 3T)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포용성을 어떻게 평가 하냐는 건데 플로리다 교수는 게이지수(Gay Index)를 제시했다. 쉽게 말해 한 도시에 게이가 얼마나 많이 있느냐를 보면 그 도시의 포용성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제일 마지막까지 차별받는 성소수자도 이 차별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도시라면 어떤 괴짜와 별종이라도 살만한 포용성 있는 도시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이론은 학계 안팎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국가와 도시의 역사와 사회적 배경에 따라 일반화 시켜 적용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인과 관계 또한 모호하다는 비판도 있다. 심지어 그저 Hot Place가 많으면 젊은 애들이 많이 모이고, 그 중에 재능 있는 애들도 모이는 현상을 너무 그럴 듯하게 말하는 거 아니냐는 비판까지 있다. 그러나 이런 비판과 상관없이 십 여 년 전부터 청년 인구 유출 문제와 도시 재생 문제까지 엮어져 창조 경제 담론과 함께 도시 다양성 화두는 거의 모든 지방자치단체 행정에 주요 이슈가 되어 왔다.

“다움”이 만든 경쟁력


이렇게 도시마다 앞 다투며 경쟁하듯 추구하는 다양성과 창조 경제에 의심이 뚜렷해진 건 최근 한 조선기자재 업체를 방문했을 때였다. 야드(yard)라고 불리는 대형 야외 공장엔 어지간한 4,5층 상가건물만한 대형 선박의 황산화물 저감장치인 스크러버가 줄지어 있었고, 대형LNG선의 엔진 프레임이 철벽처럼 서 있었다. 잠시 후 야드에선 그것을 두 사람의 조정만으로 수 백 톤급 크레인에 연결 된 두 개의 쇠줄로 뒷면 가공을 위해 간단히 180도 돌려버렸다. 나 같은 이가 창조 경제에 적게나마 공헌하는 동안 이런 야드에서는 내가 사는 빌라보다 더 큰 쇳덩이를 애들 블록 장난감 돌리듯이 돌려가며 세계의 선주와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선박 기자재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 의심의 싹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을지 모른다. 일 때문에 방문한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거제도의 대우조선해양 등에서 세우면 63빌딩보다 더 높고 넓이는 축구 경기장 서너 개는 넉넉히 들어갈 만한 거대한 선박과 마주했을 때,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앞에서 퇴근하는 노동자들의 스쿠터 군단과 마주했을 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울산에 2030 여성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건 남성 근로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자동차와 조선, 에너지 산업이 반세기 넘게 발전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이 산업에서 기름 때 묻히며 일하는 근로자들은 대부분 남자들이기 때문이다. 4년제 종합 대학이 하나 밖에 없는 건 공고와 전문대에서 기름 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용접과 선반, 도장 등을 실습하며 배운 청춘들이 졸업장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곧바로 현장에 투입되어 일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모습의 청춘들이 올 여름에도 안전을 위해 두꺼운 용접복을 입고 선박 블록의 어느 귀퉁이에서 꼼꼼히 용접을 하거나 그라인더로 표면처리를 하며 날아오는 불꽃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고 말이다.

이들은 에어컨 빵빵한 카페에 앉아 아이스커피의 홀짝임으로 더위를 피하지 않았다. 회사 구내식당과 노조와 가족이 정성껏 준비한 수박화채와 삼계탕, 삼삼한 오이미역냉국에 밥을 말아 먹으며 더위와 싸워 이겨 내왔고, 박카스 한 병과 믹스 커피 한잔으로 피곤을 털어 내 왔다. 올해처럼 가을까지 휴가 일정을 흩어놓은 때라도 손발을 오랫동안 맞춰온 동료와 같은 날 복귀하기 위해 휴가 일정을 맞출 것이고, 행여나 시외로 멀리 가서 감염병에 걸려 공정에 지장을 줄까 염려 되어 울산 권역에서, 잘 해야 부산 경남 인근에서 휴가를 보낼 것이다.

그들이 살아낸 역사, 그들이 만든 도시


전형적인 반농반어촌이었던 울산이 지금 같은 형태의 삶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정부에 의해 선택받은 창원, 대구, 구미 등 대부분의 산업 도시들의 그들처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삶의 형태를 바꿔 반세기를 살아내야 했다. 그들이 그렇게 묵묵히 낯선 삶을 살아냈기에 대한민국도 반세기만에 선진국이라는 풍경을 얻어냈고, 그 어떤 괴짜와 별종도 자신의 창의력을 억누르지 않고 살 수 있는 풍성하고 풍요로운 다양한 문화 자본이 형성 되어 있는 대한민국이 됐을 것이다.

울산이나 창원의 동료나 지인에게 “쇼핑할 데가 없다.”, “문화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불평을 종종 듣곤 한다. 그러나 모든 도시가 사시사철 축제를 하고, 골목 담벼락마다 벽화를 그리고 백화점 가득 명품 매장이 들어설 필요가 있을까? 부산이 영화도시, 창조 도시를 꿈꾸며 영화제를 유치하고, 대형 컨벤션 센터와 아시아에서 제일 큰 백화점을 유치해서 MICE 산업과 서비스업을 발달시키고, 그로인해 여성 소비 시장 규모가 커지는 동안에도, 울산은 묵묵히 배와 자동차를 만들어 왔다. 지금은 대양의 바람과 파도를 이용해 전기를 만들고 수소 에너지를 생산하며 어느 에너지 기업 현장 벽에 써진 슬로건처럼 “에너지의 미래”를 만들고 있다.

울산에 이웃한 기장의 바다에선 돌미역을 채취하고 멸치를 털며, 그 옆의 송정 바다에선 청춘들이 서핑을 한다. 같은 바다를 곁에 끼고 살면서도 목수나 농부로 평생을 살아내는 사람이 있듯이 각 도시마다 짊어온 역사의 무게를 긍정하고 묵묵히 그 역할을 더 키우고 긍정해줬으면 한다. 다양성은 도시 저마다의 풍경과 다른 형태의 삶을 긍정함으로 얻어지는 것이지 낡은 것을 찾아내 바꿔 모두가 비슷한 풍경으로 닮아 가는 것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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