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내 출국 게이트의 모습. (사진=이코노미톡뉴스DB)
공항 내 출국 게이트의 모습. (사진=이코노미톡뉴스DB)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물동량 확보, 휴직과 인원 감축 등 다양한 방법으로 버티던 국내외 항공사들이 최근 연이어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띈 건 대만의 한 저가 항공사의 비행 체험 상품이다.

이 상품은 공항을 이륙해서 중간 경유지나 종착지 없이 영공을 배회하다 다시 이륙한 공항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여행도, 출장도, 심지어 파병도 아닌 그저 비행 체험을 하는 게 전부인 것이다. 이 상품을 부산의 저가항공사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우선은 항공 관련 학과 학생들의 체험 학습 상품으로 시범 운영하고 시장 반응과 추세를 보면서 확대 여부도 검토할 거라고 한다. 덕분에 당분간 공항은 놀이기구 앞에 줄서는 곳처럼, 그야말로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구실만 하게 될 것 같아 새삼 공항의 참 모습이 그리워졌다.

공항은 그저 관공서였다.


필자는 서른 중반에야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나갔다. 애초에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해외는 여유 있는 사람이나 나가는 거라고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89년에 느닷없는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대학 졸업 여행지가 동남아의 휴양지로 정해졌을 때도, 생고생 같은 배낭여행이 유행할 때도, 소련 해체 이후 숨겨 왔던 고풍스러움을 뽐내던 동유럽 국가로의 여행이 유행할 때도 관심 없었다. 중국과 동남아, 일본 여행 상품이 제주도 여행 상품보다 저렴해진 이후에도, 심지어 삿포로만 배경으로 쓰는 추리소설작가 사사키 조를 좋아할 때도 해외여행은 늘 관심 밖이었고 공항은 평생 갈일 없는 관공서였다.

그러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행 좋아하고 운전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 국내외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고 첫 해외여행이자 신혼여행을 책에서만 보던 그리스로 갔다. 그 후 아내를 따라 일본, 홍콩, 마카오 등지를 여행했지만 공항의 참 모습을 느낀 것 한참 후의 일이었다. 어느 나라 공항이나 구조와 시스템은 비슷하고, 콘크리트 건물과 플라스틱 의자가 공간의 안팎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공항은 한동안 비행기가 오르고 내리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공항에서만 만날 수 있는 감정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진 건 비슷한 몇 번의 순간들을 겪고 나서였다.

공항의 눈물


십 몇 년 전 장모님이 미국에 사는 처제의 산후조리를 해주시고 귀국 하시 던 날 온 가족이 김해 공항으로 마중을 갔다. 입국장에 들어서는 장모님을 보자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그 뒤로도 공항에서 몇 번의 눈물과 만났다. 그 만남은 일 이 년에 한번 정도 부산에 오는 처제가 미국에 돌아갈 때마다 어김없이 언니와 눈시울을 붉히며 손을 흔들 때였다. 어머니를 뵈러 헤어진 지 십 여 년 만에 처음으로 텍사스를 방문해 이 삼주 머물다 귀국하는 공항에서 말도 잘 안 통하는 시아버지의 어깨에 기대어 눈시울을 붉히는 부산 며느리를 볼 때였다. 삼년마다 만나는 할머니의 품에 안겨 떨어질 줄 모르는 손녀를, 여과 없이 쏟아지는 텍사스의 햇볕 탓에 더 깊이 파인 주름진 얼굴에 애써 미소를 붙잡은 채, 안아주는 어머니를 볼 때였다. 텍사스 킬린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손을 흔들며 돌아설 때까지 터미널 천장에 걸린 B-25 미첼의 모형에게만 시선을 고정 시킨 채 간신히 타일렀던 마음이,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잠시 내린 마지막 타국의 공항인 나리타공항의 터미널 의자에서 기어코 흔들려, 툭하고 둑이 터지듯 주체 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을 때였다. 그때, 그 순간들 이후 공항에서만 터지는 눈물샘이 따로 있다는 걸 알았다.

공항과 항구, 낯선 길을 향한 막연함


공항과 항구의 항(港)자는 같다. 영어로도 공항은 Airport다. 배가 가는 길이나 비행기가 가는 길 모두 항로이고 그 두 길은 모두 승객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길이기에 두 곳 모두 오랫동안 그 미지의 길로 향하는 모험의 출발점이었다. 불과 반 세기전만 해도 우리에게도 공항과 항구는 가야 할 곳에 대해 다 알지 못하기에 엄습하는 막연함, 그 낯선 타국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막연함, 보내는 이는 떠난 이가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막연함, 떠난 이는 언제 고향에 돌아갈지 모른다는 막연함이 교차하던 곳이었다.

그래서였을까? 7, 80년대만 하더라도 김포공항에서 길을 떠나는 이와 배웅하는 가족들은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었다. 파독 간호사와 광부인 딸과 아들을, 중동의 사막으로 떠나는 남편과 아빠를, 그리고 피부색 다른 미군과 결혼해서 떠나는-가난 탓에 못 가르쳐서 영어로 이름도, 미국 주소도 제대로 못 쓰는-딸을 떠나보내는 모든 공항의 배웅은 말 그대로 눈물바다였다. 그 눈물에 담긴 막연함은 종종 현실이 되어서 미국으로 떠난 딸과 수십 년간 연락이 안 되는 가족들은 늙으신 부모의 눈물과 한숨으로 명절의 끝을 마무리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막연한 눈물은 새로운 세기에도 여전해서 친부모를 찾아 수십 년 만에 고국을 찾는, 부모를 찾고자 전국 곳곳의 보육원을 샅샅이 뒤지리라 다짐하며 들어오는 해외 입양아의 눈에도 장마처럼 내리고 있다.

사람과 사연이 만드는 공항


공항만의 눈물이 있다. <대전 블루스>, <목포의 눈물>, <이별의 부산 정거장>에 담긴 우리만의 눈물처럼 공항에서만 만날 수 있는 눈물이 있다. 공항은 그리웠던 이가 닫혔던 문 너머에서 불쑥 마술처럼 등장하는 곳이고, 그렇게 세월과 공간을 건너뛰어 마주한 이들의 사연이 말 보다 눈물로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첫 번째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명과 기술로 지난 세기의 막연함이 사라지고 다음 만남을 당연시하며 기약할 수 있는 이 시대에도 공항의 눈물은 쏟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공항은 단순히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곳이 아니다. 활주로가 몇 개이고 터미널이 몇 개인지, 면세점은 얼마나 크고 편의시설이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는지, 24시간 물류가 뜨고 내릴 수 있는지 등은 공항의 물리적 기술적 조건일 뿐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눈물과 이야기로 차고 넘치는 공항의 참 모습을 보는 날이 다시 올 것이다. 그 날이 오면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3년마다 보던 손녀의 모습을 올해는 보지 못한 미국의 할머니도 화상통화로는 만질 수 없던 손녀의 도톰한 볼 살을 다시 만져 볼 수 있을 것이다. 부산에 오면 돼지국밥을 가장 먼저 먹는 처제의 조카 선물로 가득한 이민가방 같은 캐리어를, 자매가 눈물로 포옹하는 장면을 모른척하며 말없이 형부가 덥석 받아들 수 있을 것이다. 반백이 된 아들은 애써 꾹꾹 눌러 참는, B-25 미첼 아래에서 흘리는 부산 며느리의 눈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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