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세상 좋은 나라

전두환 대통령과 진급 계급장 수여식 후의 장세동 경호실장이 악수중인 모습. (사진=국가기록원)
전두환 대통령과 진급 계급장 수여식 후의 장세동 경호실장이 악수중인 모습. (사진=국가기록원)

[배병휴 회장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이톡뉴스)] 월간 경제풍월 창간 후 ‘대한민국 대논객’으로 불린 김동길 박사의 원고를 권두언으로 장기 게재했다. 초기 몇 년간은 소액이지만 고료를 드렸지만 몇 년 뒤부터는 한 푼도 드리지 못했다. 그런데도 김 박사는 매월 제 날짜에 만년필로 쓴 한글 원고를 꼭 보내주셨다. 특히 해외여행 중에는 어느 호텔에서, 어느 비행기 속에서 집필했노라고 명기해주셨다.

‘저이가 고료 한 푼 없이’ 맨날 원고 청탁


김 박사는 정주영 회장이 창당한 국민당 국회의원도 잠깐 했지만 TV와 라디오 출연으로 일반 대중들과 더욱 가까워졌다. 이 무렵에 경제풍월을 창간하면서 원고를 청탁했지만 처음에는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독한 글을 써준들 겁이 나서 그냥 실을 수 있겠느냐”고 우려했던 것이다.

몇 갈래 곡절 끝에 겨우 원고를 받아 200자 원고지 육필 사진과 함께 권두언에 게재하니 예상대로 독자들이 반응했다. 몇 회가 연속되자 김 박사 편에서 신통하다는 소감이 전해왔다. 당국의 엄중한 눈치를 알고 내용을 고치고 싶었을 텐데 “어찌 한 자도 안 고치고 그냥 실었느냐”는 뜻이었다.

그 뒤 김 박사는 경제풍월 행사에 참석하여 축사나 격려사를 통해 필자를 가리키며 “저이가 살 한 점 없이 삐쩍 말랐지만 겁도 없이, 고집스럽게 원고내용 한 자도 수정 없이 그대로 실어줬다”고 소개했다. 또 다른 때는 “저이가 고료 한 푼도 못 주면서 맨날 원고 청탁하더라”면서 좌중을 웃게 만들었다.

김 박사 원고는 여러 권의 단행본으로 엮어 독자들에게 배포했다. 첫 번째가 ‘김동길의 세상보기’ ‘밝은 세상, 좋은 나라’이다. (2000.6 좋은이웃집 발행, 279페이지)

월간지 경제풍월에 실린 김동길 교수의 세상만평 시리즈 기사면. ( 사진=이톡뉴스DB)
월간지 경제풍월에 실린 김동길 교수의 세상만평 시리즈 기사면. ( 사진=이톡뉴스DB)

장세동과 악수 다음날 ‘5공과 손잡나’


김동길의 세상보기 제1장이 ‘언론만 살아 있다면’이다.

1991년 초인가, 어느 공공장소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 경호실장으로 ‘의리의 사나이’로 불린 장세동 씨를 만나 악수를 했더니 다음날 신문에 ‘김동길 교수, 5공과 손잡나’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는 이야기다. 김 박사는 신문이 말 같지도 않는 것을 기사라고 쓰니 어처구니없어 그냥 속으로 웃고 말았지만 ‘언론이 살아 있다면’이란 소망을 적고 싶었던 것이다.

신촌 김 박사 댁은 연세대 동산 뒤편, 김옥길 전 이대 총장 기념관 부속으로 손으로 빚은 ‘비키니 냉면’이 유명했다. 냉면에 아무런 부속물이 없어 비키니로 불렸지만 초대 받은 명사들이 맛 좋다고 소문을 냈다. 언제인가, 김영삼 전 대통령을 초청했더니 전․현직 국회의원 여럿이 수행하여 좁은 뒷마당까지 꽉 들어찼다. 여기에 TV 카메라가 동원되어 야단법석하니 교통경찰마저 출동했다.

다음날 아침 신문에 “김동길 박사, YS와 손잡고 정치 재개냐”고 크게 보도됐다. 이에 김 박사가 다시 “신문이 고약하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다.

김 박사와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별 인연이 없었다. 어느 공공장소에서 김 박사를 만난 전 전 대통령이 “여보, 김 박사님 댁 냉면이 그리도 좋다는데 한번 맛 좀 보여 주이소”라고 청하여 쉽게 ‘그러세요’라고 응답했다. 예정 날이 되자 ‘전두환 사람들’ 30여명이 몰려오니 뒷마당도 모자라 후면도로까지 좌석을 펼쳐야만 했다.

젊은 일꾼 몇 명이 수동식으로 냉면 만들기에 진땀을 쏟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왁자지껄한 냉면 파티가 끝날 무렵 전 전 대통령이 포도넝쿨 아래 설치된 스탠딩 마이크 앞으로 걸어 나와 냉면 잘 먹었노라고 감사 인사하는 시각이 됐다. “소문대로 김 박사 댁 빈대떡과 비키니 냉면이 참으로 좋아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부탁이 한 가지 있습니다. 오늘 몇 사람이 사정이 있어 참석을 못했으니 수고스럽지만 냉면 몇 사발 더 만들어 보내줄 수 없겠습니까”라고 하니 순간 폭소가 터져 나왔다.

아니 냉면 점심 초청에 “30명분도 모자라니 더 보내달라는 넉살이나 배짱이 전두환 아니고 또 있겠느냐”는 말이었다. 이날 이후 김 박사는 전통에게 친숙감을 느꼈다는 소감이다. 그의 솔직한 인간상이 푸짐하게 느껴져 바로 ‘5공 두목’의 밑천 아니겠느냐고 했다.

YS의 내정간섭 요청, 난 반대요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 김정렴)가 광화문 시민회관에서 월 1회 조찬 강연회를 개최할 때 김 박사를 강사로 초청하고 싶어 했다. 이때 경제풍월이 중재하여 김 박사가 연설하던 날 좌석이 모자라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경청하며 환호하기도 했다.

김 박사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반대 운동하다가 끌려가 감옥살이 하던 이야기를 꺼냈다. 한참 뒤에 풀어주기에 귀가 했더니 미국 대사관에서 점심 초청이 와서 가니 김영삼, 김대중 씨 등이 먼저 와 있었다.

미국 대사가 야당 거인 두 분을 초청하면서 김 박사가 감옥에서 풀려났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동석토록 준비한 모임이었다. 야당 대표가 참석했으니 박 정권을 비판하는 발언이 안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민감한 내용도 나왔지만 특히 YS가 ‘독한 발언’을 했다고 한다.

YS가 “미국 정부가 박정희 정권의 엉덩이를 두들겨 패야 나쁜 독재짓을 중단하게 될 것”이라는 요지로 말했다.

김 박사가 말할 차례가 되자 방금 유신 반대하다가 감옥 다녀왔으니 박 정권을 호되게 비판하는 발언이 나올 것으로 모두가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김 박사의 발언은 정반대였다. “나는 반대요, 미국 정부한테 내정간섭을 요청하듯 박 정부를 두들겨 패달라는 주문에는 반대합니다”

이 같은 김 박사의 발언에 대해 YS와 DJ가 실망했을 것은 물론이지만 초청자인 주한 미국 대사도 다소 놀라는 표정이었다고 했다.

이날 오찬 회동 며칠 뒤 박영수 서울시장이 전화로 김 박사에게 점심식사를 초청하고 싶다고 했으니 뜻밖이었다. 김 박사가 “어찌 나를 초대하는 겁니까”라고 반문하니 “실은 청와대 차지철 경호실장의 부탁입니다”라고 실토했다. 차 실장이 자신이 김 박사를 초대하면 불응할 테니 몇 차례 인연이 있는 박 시장이 대신하여 식사를 대접해줬으면 좋겠다는 뜻이었다.

알고 보니 미국 대사관 오찬 이후 차 실장이 김 박사의 발언요지를 전해 듣고 박 대통령한테 보고하니 “김 박사가 참 애국자였네”라고 말씀하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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