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 김상하·일양약품 정형식·삼양식품 전중윤

경제 발전기에 가진 것 전부를 던져 헌신한 창업세대 원로 기업인들을 만난 이야기를 엮었다. 회장, 명예회장들은 시국을 걱정하면서 틈틈이 분노를 드러내 ‘늙은 피가 끓는다오’라는 제목을 달았다.

명예회장님들은 후진들을 향해 할 말이 많지만 ‘잔소리’로 들릴까, ‘노욕으로 비칠까’ 입을 아낀다고 말한다. 다만 살아온 나날들을 되돌아보면 일제 식민생활, 8.15와 6.25의 혼란과 격변, 4.19와 5.16의 정치적 변고 등 참으로 모진 세월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경제를 발전시켜 배고픈 국민이 허리를 펴게 되고 국력이 뻗어 국위를 선양하게 됐으니 ‘기업이 곧 국가다’라는 평판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인식이 너무나 곱지 못하니 고약한 세월 아니고 무엇인가.

월간지 경제풍월 제작과 관련, 때때로 면담했던 주요 기업인들과 일부 종교인, 국가안위를 걱정하는 군 출신 등 서른일곱 분을 모신 기록물로 엮었다. (기자주)

1999년 11월 20일, 김대중 대통령이 김상하 상양그룹 회장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 민간위원 위촉장 수여하고 있는 모습. (사진=국가기록원)
1999년 11월 20일, 김대중 대통령이 김상하 상양그룹 회장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 민간위원 위촉장 수여하고 있는 모습. (사진=국가기록원)

꿈도 삶도 늘 물 흐르듯…


[배병휴 회장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이톡뉴스)] 대한상의 김상하(金相廈) 회장은 4통8달의 화합형 재계의 신사로 경제기자들에게도 인기를 끌었다. 김 회장은 전통 양반가문의 귀골로 태어나 과분한 복을 누렸다고 고백하면서도 “특별태생이나 보통사람으로 살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바로 위 김상홍 명예회장과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관계로 우의를 보여주면서 통상 30~40개에 달하는 외부의 회장, 명예회장 감투도 ‘형님 덕’이라고 말한다. 김 명예회장이 오랫동안 회사를 경영하며 사장이름만 올려놓은 자신에게 넉넉한 월급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일양약품 창업자 정형식 명예회장.
일양약품 창업자 정형식 명예회장.

일양약품 정형식(鄭亨植) 명예회장은 제약인생으로 걸어온 고생길이 뒤돌아보면 보람이고 감사해야 할 복이라고 말한다. 일약약품의 창업과 육성 과정은 7전8기로 설명되지만 아무리 어려운 고비를 맞아도 신의와 성실을 밑천으로 삼아 왔노라고 회상한다. 정 명예는 일생의 교훈을 ‘큰 부는 하늘이 내리고 적은 부는 근면으로 이룬다’고 요약, 이를 자녀 5남매에게 물려준다고 강조한다.

삼양식품 창업주인 전중윤 명예회장(앞줄 왼쪽 첫번째)의 라면사업은 박정희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을 받았다. 1980년대 당시 박 대통령과 박근혜양이 전중윤 명예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삼양식품 창업주인 전중윤 명예회장(앞줄 왼쪽 첫번째)의 라면사업은 박정희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을 받았다. 1980년대 당시 박 대통령과 박근혜양이 전중윤 명예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라면 선구자 삼양식품 전중윤(全仲潤) 회장은 식품황제로까지 추앙됐지만 어느 날 악성투서 한 장으로 ‘악덕상인’으로 지목되어 추락했다가 다시 눈물로 재기한 기록을 세웠다. 세칭 ‘우지(牛脂)라면’ 파동으로 라면 1위에서 꼴지로 추락하기까지 온갖 모욕과 치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사필귀정으로 대법원까지 가는 긴 법정투쟁 끝에 최종 무죄 판결로 악덕이란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그 뒤 재기 과정은 온통 ‘절치부심’이었다. 최종판결 후 전 회장은 국가상대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권고를 받고도 사양했다. 강원도 철원 태생인 전 회장은 ‘암하노불’(岩下老佛)의 심정이란 말로 대신한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