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평생 운동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서 열린 '2009년도 미스터&미즈코리아 선발대회' 본선 여성일반부 경기에서 체급별 우승자들이 챔피언 자리를 놓고 격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서 열린 '2009년도 미스터&미즈코리아 선발대회' 본선 여성일반부 경기에서 체급별 우승자들이 챔피언 자리를 놓고 격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대학 때부터 일주일에 서너 번, 혼자 운동을 해 왔다. 좁은 대학 기숙사 방에서 죄수의 운동법 비슷한, 맨몸 운동하던 습관이 몸에 배어서다.

요즘엔 탄력 밴드를 비롯해 집에서 간단히 운동하기 좋은 도구들이 많아진 덕에 운동이 덜 지겹다. 그래도 지겨우면 길로 나선다. 늘 뛰는 코스를 몇 바퀴 뛰면 훌쩍 삼십 여분이 간다. 그런데 운동이 버릇인 내 주변엔 운동을 꼭 해야 하는데 안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드라마 <미생>의 대사처럼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부터 기르는 것이 이치인데 다들 이룰 만큼 이뤘는지 운동은 뒷전이다. 통풍에 걸린 감독도, 마흔 넘어 장가도 못 갔는데 벌써 혈압이 높아 의사한테 경고를 받은 처남도, 반평생 운전으로 먹고 사시느라 하체가 점점 부실해지는 장인도, 살 쪘다는 넋두리를 이틀에 한번 꼴로 하는 아내도 도통 운동을 안 한다.

삶의 도구인 신체를 위한 운동


누가 운동의 동기를 물으면 두 가지로 답한다. 일단, 우리의 신체는 삶을 살아내는 대체 불가한 유일한 도구라는 점을 든다. 한마디로 밥벌이의 밑천이라는 것이다. 김훈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면 글을 밀고 나가는 것도,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 국토의 한 귀퉁이를 밀고 나가는 것도 다 신체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김훈 선생님은 몇 년 전 제주에서 열렸던 강연에서는 아예 “인간은 육체의 힘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단언했다. 결국 그 힘의 발전소이자, 저장고, 그리고 그 힘을 쓰는 생의 도구인 신체를 갈고 닦지 않는 건 그 신체가 쉬는 집을 청소 안하는 것보다 더 게으른 것이다. 신체가 자본이고 삶의 도구라는 논의는 낯선 것이 아니다.

최근, 도리스 메르틴은 저서 <아비투스>에서는 일곱 가지 자본 중 하나로 신체 자본을 제시했다. 유영만 교수의 <부자의 1원칙, 몸에 투자하라>라는 책도 같은 맥락의 주장이라 볼 수 있다. 이런 논의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부르디외가 1960년대에 쓴 <구별 짓기>를 만날 수 있다. 그의 서술은 적나라하다. “다양한 계급들이 외모에 부여하는 이해관심이나 배려, 외모가 가져다주는 이익에 대한 의식, 실제로 외모에 투자하는 시간, 노력, 희생, 정성은 각 계급이 그로부터 당연히 기대할 수 있는 물질적 또는 상징적 이윤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와 비례한다.”고 명료하게 말한다. 이어서 뒤이어 그는 지금의 페미니스트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만한 주장을 이어가는데, “따라서 자신의 용모가 평균 이하라고 생각하거나 실제 나이 이상으로 늙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의 비율은 사회적 위계가 높을수록 확연히 감소한다.”고 말한다. 이후 그는 신체와 운동에 대한 계급적 인식 차이와 상태의 차이를 오십 페이지 넘게 논의한다.

시선 앞에 놓인 신체를 위한 운동


또 다른 이유로는 우리는 시선 앞에 놓인 존재라는 것이다. 해부대 위에 놓인 시체처럼, 정물화를 위해 화실 한 가운데 놓인 화병처럼 아주 적나라하게 말이다. 이건 정신 분석이나 심리학, 어빙 고프만의 <자아 연출의 사회학> 같은 책을 거론하지 않아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남에 시선 따윈 눈곱만큼도 신경 안 쓴다는 사람조차 그 무심함을 타인이 알아채기 위해선 타인의 시선이 있어야 한다. 이 시선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사사키 아타루의 말을 빌려보자. 그는 "살아 있는 신체는 이미지의 지배와 분리할 수 없다. 이 이미지가 사회적인 것이라면 사회에 따라, 문화에 따라 신체 이미지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고, 또 이어서 “<거울>의 효과로, 표상으로 생산되는 우리는 이미지임과 동시에 텍스트.”라고도 했다. 신체는 텍스트고 이미지다. 자의든 타의든 우리는 전시되고 읽혀지고 해석 된다. 누구든 이 이미지와 텍스트의 대상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세상에 진짜 자연인은 없다.

운동 동기에 관한 여러 매체의 글을 읽다보면 동기부여의 시선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는 듯하다. 내가 날 보는 시선, 사회가 날 보는 시선, 그리고 성적인 시선이다. 그 중 하나의 시선이라도 운동하는 이에게 존재한다면 신체에 대한 생각도 변하고 운동의 동기와 그 지속 여부도 달라질 수 있다. 보여줄 사람, 자랑할 사람도 없는데 구지 명품을 살 사람이 없는 것처럼, 운동 이후 그 달라진 신체를 보여줄 사람도 없는 사람이 구지 그 힘든, 요즘 친구들 표현을 빌리면 “쇠질”을 꾸준히 할 수 있겠는가? 이 나라의 헬스장이 수많은 기부 천사들의 연간 기부로 운영 된다는 우스갯소리는 어쩌면 이 시선 없는 회원들이 만들어낸 현상일지도 모른다. 살을 뺀 뒤 연애도 하고 취업도 하려는 청춘 남녀들이 비싼 회원권 끊어 운동을 하다가 운동의 동력을 어디선가 잃어버리는 건, 살을 빼고 몸짱이 된들 그것을 보여줄 시선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건 순서가 바뀐 것이다. 일단은 시선부터 있어야한다. 없으면 예약해 놓아야 한다. 그래서 요즘 젊은 친구들이 일부러 바디 프로필 촬영을 몇 개월 뒤에 예약해 놓고 운동을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 나아진 나를 기대하며


신체를 시선의 대상으로 생각하든, 삶의 도구이자 자본으로 생각하든 운동은 그 대상이자 도구인 신체를 유지하고 좀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다. 하루키도 그의 달리기에 대한 생각에서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신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하루키의 이 말은 모델 한혜진의 운동 철학과도 맥을 같이 한다. 한혜진은 한 토크 프로그램에서 왜 운동을 열심히 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단 하나의 반문으로 그들을 조용히 시켰다. “다 벗고 거울 앞에 섰을 때 본인 몸에 만족하세요?”라고. 그러면서 정말 중요한 말을 했다. “세상에 어떤 것도 제 마음대로 안 돼요. 제 의지대로 바꿀 수 있는 게 몸 밖에 없더라고요.”라고.

그러니 운동을 하는데 있어서 “진정한 나를 찾는다.”는 투의 심각함을 덧입지는 말자. 묵직한 철학과 사명을 덧입고 운동하는 건 그것을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나 어울리고, 그런 이들을 모델로 내세우는 스포츠 브랜드 슬로건에나 어울린다. 오히려 운동 동기를 그럴듯한 철학으로 포장하는 것 자체가 운동을 향한 가벼운 시도의 발목을 잡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한번 사는 인생인데 폼 나게 살기 위해서.’와 같은 동기가 여러모로 상쾌하고 가볍다. 그래서 요즘에 유행하는 운동하는 여자나 여자의 운동을 소재로 하는 책들, 특히 운동에 관한 책도 아니고 페미니즘에 관한 책도 아닌 어정쩡한 책들이 오히려 우리 딸들의 움직임에 코르셋 같은 프레임, 운동하는 여자는 이러이러해야한 한다는 틀을 씌우지 않을지 의심을 하고 있다. 그런 책들이 오히려, 푸코의 표현을 빌리면, 또 하나의 규율 권력을 창조해내서 운동장으로 향하는 우리 소녀들의 발목을 잡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무슨 운동복을 입어야 할지 쓸데없는 고민 같은 걸 하게 하면서 말이다.

뛰고 싶다면 뛰면 그만이다. 구지 좀 심오한 운동의 이유를 찾고자 한다면 하루키의 “설령 짧게 밖에 살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짧은 인생을 어떻게든 완전히 집중해서 살기 위해 달리는 거.”라는, 이정도 각오로도 충분하다. 다시 말하지만 운동의 동기는 자명하다. 몸은 교환, 환불이 안 되고 교체도 안 된다. 운동은 한번 밖에 못 사는 자신과 그 삶을 꾸려가는 가장 원초적 무기이자 도구인 자기 몸뚱어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이 자각이 출발점이 되어야 그나마 평생 할 수 있다. 요즘 딸에게 이런 정신과 함께 농구와 맨몸 운동을 가르치고 있다. 날이 좀 좋아지면 장거리 달리기도 함께 하려 한다. 차도 없고 집도 없고 그렇다고 부자도 아닌, 가진 재주라곤 읽고 쓰기 밖에 모르는 아빠가 물려줄 게 있다면 그나마 평생 운동하는 습관, 그래서 평생 진짜 운동하는 여자로 살게 해주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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