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품 신화, 식품 브랜드 신화

(사진=SAMYANG FOODS)
(사진=SAMYANG FOODS)

[배병휴 회장 @이코노미톡뉴스] 한국 라면의 원조 삼양식품이 ‘신용과 정직’을 기업이념으로 한국식품 60년사(1961~2021)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식품사를 대변하는 삼양 60년사는 제1권 ‘한국식품 신화’, 제2권 ‘한국 브랜드 신화’로 도합 580페이지로 엮었다.

1963년 9월, 6․25 전후 보릿고개 세월, 대다수 국민이 꿀꿀이죽에 의존하는 배고픈 시절에 생소한 꼬불꼬불 라면이 출시됐다. 한 끼에 단돈 10원짜리지만 영양을 고루 갖춘 간편식이었다.

당시 담배 한 갑 25원, 커피 한 잔 35원일 때 10원짜리 한끼식이 얼마나 신기한가. 출시한 지 오래지 않아 값싼 국민 영양식으로 추앙받기에 이르렀다. 특히 야근, 특근이 잦은 중노동 시절 야식으로도 너무 안성맞춤이었다.

출시 3년차인 1965년에 월 판매고가 100만食을 돌파했다. 이듬해에는 벌써 경영흑자에 접어들었다.

이 무렵 관철동 삼양식품 사장실로 박정희 대통령 전화가 걸려와 전중윤 사장에게 라면 개발로 정부의 분식 장려책에 크게 공헌했다는 격려와 함께 “이왕이면 고춧가루를 넣어 얼큰하게 만들 수 없느냐”고 했다.

막걸리를 즐긴 박 대통령이 해장국 격으로 라면을 애용하며 좀 얼큰했으면 싶었던 것이다. 이에 삼양은 즉각 얼큰탕을 개발하는 한편 고추 계약재배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이어 육영수 여사가 이끈 양지회가 서울 용산역 급식소를 통해 휴가장병에게 매일 200명씩 무료급식하고 있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군납을 시작하여 일선 장병들의 불침번 야식으로도 인기였다.

삼양식품이 잘나가던 시절 1989년 11월, 검찰이 삼양 등 라면업계가 인체에 유해한 우지(牛脂)를 사용했다는 혐의로 모조리 잡아갔다. 경쟁관계에 있던 누군가가 악성 투서로 고발한 것이었다.

그러나 주무부인 보건복지부가 “공업용 우지를 식용으로 사용한 것이 합법”이라고 확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당시 김종인 장관이 TV에 출연, 라면을 시식하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끝내 검찰이 거액의 벌금과 중형을 구형하고 재판부가 2330억원의 벌금형을 선고했지만 피고인들은 모두 집행유예로 풀어줬다. 그러나 업계는 불복하여 항소심에서 전원 무죄판결을 받았다. 최종심인 대법원도 1997년 7월 무죄 확정으로 명예를 회복시켜 줬다.

그러나 뒤늦은 진실규명이었다. 이미 삼양식품 등은 후발사들에게 시장을 다 뺏기고 망한 지경이었다.

그로부터 삼양은 절치부심으로 새출발함으로써 새로운 신성장 시대를 개척, 오늘의 60년사를 기록할 수 있었다.

창업주 전중윤 회장은 2010년 3월 명예직으로 경영 은퇴하고 2세인 전인장 회장 체제로 제2의 신 성장기를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아직은 후발사에게 빼앗긴 시장을 만회하는 도중이지만 한국 최초의 삼양 브랜드가 K-푸드의 아이콘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해발 800m의 대관령 고원 아시아 최대의 인공초지 목장은 연중무휴 관광 휴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로써 신용과 정직의 삼양식품사는 앞으로 새로운 60년사를 창조해 나갈 것이다. 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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