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본소가 줄어든 이유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SNS도 결국 비슷한 사람들끼리 엮이다보니 페이스북으로 맺은 인연 중, 글 밥 먹고 사는 이가 절반 이상이다. 이 중 한 출판사 대표가 제본소 섭외가 어렵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 연말 신간을 내놨는데 반응이 좋아 1쇄가 예상보다 빨리 팔려 2쇄를 하려고 제본소를 구하려는데, 그게 쉽지 않아 적잖이 마음고생을 했던 모양이다.

제본소 구하는 게 어려워진 이유를, 그 글에 달린 업계 관계자들의 댓글을 통해 알았다. 출판계 불황의 파도에 떠밀려 제본소들이 하나 둘 문을 닫아온 것이다. 물론 제본소가 경영이 어려워져 문을 닫은 것이 출판 시장 탓만은 아니다. 공연 등 각종 이벤트가 줄어든 데도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지난 2년여 동안 각종 팸플릿이며 브로슈어들을 거의 만들 수 없었으니, 발주처 하나가 막혔다고 봐야한다. 또 대학에선 대면 수업이 없어졌으니 각종 참고 교재 등의 제본도 확 줄었을 것이다.

(사진=이톡뉴스)
(사진=이톡뉴스)

내 주변의 코로나 고난


어디 제본소뿐이겠나. 2년의 코로나 시국에 각 분야가 어려움을 호소한다. 지난 가을엔 공무원들과 마주 앉아 포스트코로나 시대 운운하며, 그 부푼 기대와 희망을 홍보 영상과 캠페인에 반영하자고 했는데, 불과 몇 달 사이 도로 코로나시대가 됐다. 이렇게 기대를 배반당하고 맞은 이 겨울, 낙담의 골은 더 깊어졌다. 기대가 꺾인 뒤 찾아온 고통은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기에 생업의 현장에서 터지는 비명 또한 더 커졌다. 그 고통을 위한 대책은 치료제가 아니라 진통제 같고, 그 진통제 같은 대책조차 제 몫이 아닌 사람이 많다.

필자는 이렇게 어려움에 처했으나 보상 받기 어려운 이들의 소식을 직간접적으로 들어 왔다. 대부분 업무와 연관성이 있는 여행업, 이벤트, 공연 업계 종사자들이다. 이들이 지난 2년간 원치 않는 휴업을 하다 보니 연관 업종인 음향, 조명, 무대 설치 업계 사람들도 반강제로 쉬었다. 당연히 메이크업, 의상 관련 종사자들도 일이 줄어들었고, 공연장 대관 사업도 문을 닫다 시피 했다. 이들은 정부 방역 대책의 행정조치 대상이 아니거나 그 범위에 들지 못해서 어디 가서 호소 한번 제대로 못한 채 2년을 보냈다. 이들의 SNS엔 이젠 분통을 터뜨리는 것도 지쳤는지, 자포자기 심정만이 토로된다.

이 시국의 피해가 생계에만 국한 된 건 아니다. 교육계도 학력격차로 맘고생이 심하다는 걸,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아이 덕분에 알게 됐다. 그 정도가 궁금해 자료를 좀 찾아 봤다. 부산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가 지난 해 12월 9일에 발표한 <코로나19 시대의 원격수업으로 인한 학력 격차 해소 방안 연구 보고서>는 이런 현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보도로 그 내용을 간추려 보니 중학교 1학년들은 영어를 제외한 국어, 수학에서 점수 분포가 이전 4년과 비교해 평균 점수로부터 더 넓어졌고, 초등학교 4학생의 경우도 지난해 국어, 수학은 우수학력과 기초학력 비율은 증가했지만 보통학력 비율은 감소했다. 한마디로 보통의, 평균 점수대의 아이들이 줄어든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난 가을 학기엔 안 그래도 바쁜 선생님들이 더 바빴다. 요즘은 아이들 학습 성취도가 전산화 되어 따라다니니 선생님들 입장에선 손 놓고 아이들을 위의 학년으로 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아이의 반은 물론이고 대다수 담임선생님들이 수학이나 과학과 같은, 한번 뒤처지면 따라잡기 힘든 과목에서 성적이 기준 이하인 애들을 붙잡아 놓고 짬을 내어 가르쳤다. 내 어린 시절 용어로 표현하면 그야말로 나머지 공부를 자청하여 개설한 것이다.

상실 된 고리의 반복


코로나 시국의 상흔은 미시적이고 광범위하다. 하지만 진짜 피해는 미래에 도래할지 모른다. 대학에서도, 취업 시장에서도 속칭 코로나 학번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떠돌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코로나 학번, 코로나 세대라는 말은 십 몇 년 후 코로나를 겪은 상실 된 세대의 고리를 지칭하는데 쓰일 것이라는 말이다.

최근 이 상실된 고리의 현상을 간접적으로 겪고 있다. 부울경 지역의 조선업 인력 구인난이 그것이다. 지난 십 년의 조선업 불황기 동안 관련 인력이 건설업 등 다른 직종으로 이직했거나, 젊은 세대가 이 업종을 기피하는 현상이 고착됐다. 또 불황기이다 보니 관련 기업마다 인재를 양성할 여력도 없었다. 이런 여러 요인들이 합쳐져 지금 일손의 품귀 현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로 지난 해, 관련 업계 고객과의 미팅 자리에서는 사람 구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빠지지 않았다. 이 심각함이 조선업의 현장과 지역의 문제를 넘어 국가적 이슈로도 인식됐는지 중앙 언론에서도 조선업 인력난 해소를 위한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보도가 이어졌고, 급기야 대통령도 지난 가을 거제도의 한 조선소에서 인력 양성을 약속하는데 이르렀다.

우리는 이미 이와 비슷한 상황을 수차례 겪었다. 앞서의 저 제본소 사태와 조선업 인력난, 그리고 학력 격차 같은 일련의 현상들이 결코 낯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이미 겪었으나 그때그때 미봉책으로 수습해 와서 근본적인 원인 분석을 바탕으로 한 확실한 개선책을 마련하지 못했을 뿐이다.

아우성을 들어 달라.


코로나 시국에도 수출과 경제가 성장했다는 거시적 성과에 도취되어 민생이라는, 소위 민초(民草)들의 미시적 삶의 흔들림이 안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양분을 공급하는 잔뿌리가 소멸 되면 굵은 뿌리 또한 버티기 쉽지 않을 것이고 그리되면 그 어떤 아름드리 고목도 버티고 서 있기 어렵듯이, 소시민이 마주하는 제 각각의 삶의 뿌리가 흔들리면 코로나가 종료된다 한들 이 사회의 건강한 미래의 확보는 쉽지 않을지 모르고, 심지어 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게 될지 모른다.

전망이 어두울 때 인재를 키울 수는 없다. 이 부작용은 조선업의 사례처럼 특정 업계 인력의 세대 고리 전체를 상실케 해서 미래의 호황에도 대처하지 못하는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또 각 학교의 교육 공백과 그로인해 심화 된 교육 격차 또한, 인재들의 수준저하와 인재 수급의 양극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미래에 도래할지 모르는 진짜 위기의 일부일지 모른다. 지금, 살펴보지 못한 민생의 상처와 완치되지 못한 코로나 시대의 상흔은 지금의 조선업 인력난 사태보다 더 큰 후유증과 도려낼 수 없는 상처를 남길지 모른다.

코로나가 끝난 후, 아무런 피해도, 손해도 입지 않았던 사람들은 금세 이 시기의 어려움을 잊을지도 모른다. 1년 후쯤엔 코로나가 종식됐다는 선언 속에 그 시기의 모든 상흔과 피해도 뉴스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미래의 언젠가, 이와 유사한 사태의 다른 판본을 만날지 모른다. 그리고 그때 또 우린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고 탄식할지 모른다. 호황기 조선업이 당면한 지금의 인력난처럼 미래의 어느 순간에 그 대가를 치르면서 말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같은 표현처럼, 오늘의 미시적 상처들은 훗날 코로나 세대, 포스트 코로나 현상이라 불리며 우리 사회의 책임으로 남을지 모른다. 지금 사회 전반에서 소리 없이 터져 나오는 비명과 아우성을 귀 기울여 들어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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