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없이 우리말을 쓰는 사람들

광고판이 부착된 부산지하철 전동차 내부 모습(2003년). (사진=연합뉴스)
광고판이 부착된 부산지하철 전동차 내부 모습(2003년). (사진=연합뉴스)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나이 탓인지 올 한해 눈에 거슬리는 카피가 많았다. 광고의 좋고 나쁨은 광고의 목적이나 광고의 기타 요소와 어울리는지 등을 염두에 두고 판단하는 것이라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카피에 우리말을 바르게 쓰는 건 이 업을 가진 이의 기본이라 생각하기에, 이 기본을 안 지키는 광고를 보면 마음이 불편해져 그 이들이 볼 일 없을 내 SNS에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게 된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광고를 유심히 보는데, 그 중 가장 신경 쓰였던 광고가 <사랑의 OO-부산본부>광고였다. 헤드 카피가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나눔에 동참해 주세요."이다. 이 카피가 이상한 이유는 “~만” 때문이다. 우리의 언어적 생활감으로도 이상하게 느껴지나, 혹시 몰라 사전으로 그 이상함을 확인해 봤다. “~만”은 주로 많은 대상 중 A를 선택하는 경우, 즉 “A만 믿겠다.”식으로 쓰이거나, 특정 행동을 강조하기 위해 “그녀는 웃기만 했다.”와 같은 형태로 쓰인다. 그 외에 두 사람을 비교하거나, 버릇, 최소한의 행동이나 양을 묘사할 때도 쓰인다. 그러니 “마음만 있다면”이라는 표현을 쓰고자 한다면 뒤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할 수 있다.”식의 표현이 뒤따라야 한다.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나눔에 동참할 수 있어요."식으로 말이다. 게다가 문장의 주어가 “누구나”인데 이 “누구나”는 “아무나”의 뜻이 내포된 미지칭, 부정칭 조사다. 쉽게 말해 아무도 지칭하지 않거나, 지칭할 대상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을 때 쓰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왜 “누구나”를 쓸까?


이 “누구나”라는 표현을 요즘 공공 홍보물에서 자주 본다. 최근 부산시의 정책 비전 중 하나가 <15분 부산>이다. 모든 시민이 해당 주거지에서 15분 안에 문화 공간, 병원, 공원 등에 접근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하철 광고는 나란히 두 개가 붙어, 앞에 것은 <15분 부산> 비전을, 뒤에 것은 그 세부 정책을 알리는데, 내가 본 것은 <15분 공원>편이었다. 거기에 또 누구나가 쓰였다. “시민이 누구나 지금 사는 곳에서 만나는 더 행복한 부산”이다. 주어는 “시민이”고 서술절은 “더 행복한 부산”인데, 주어와 서술절 사이가 멀어서 문장의 힘이 떨어진다. 게다가 "시민이" 다음에 "누구나"가 나오는데 이건 동어반복이다. 즉 시민이 누구나이고, 누구나가 시민이라는 말이다. 심지어 그나마도 “누구나”를 써서 시민을 불특정 다수로 취급했다.

울산광역시의 한 홍보 포스터에서도 “누구나”라는 표현을 발견해, 이게 요즘 유행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포스터엔 “울산은 누구라도 행복한 도시가 됩니다.”라는 카피가 써져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누구나”는 결코 긍정적인 표현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누구나”, “누구든지” 등은 특정인을 지칭할 수 없거나 규정할 수 없을 때 쓰인다. 고로 이 말을 쓰는 광고는 아무한테나 말하겠다는 광고이니 결국 타깃 없는 광고인 것이다.

아마 각종 정책의 혜택을 시민 모두가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 “누구나”를 무심히 사용했으리라. 그러나 이걸 강조하고 싶어서 “~라도”까지 붙이면 의미는 더 왜곡 된다. “~라도”는 그것이 썩 맘에 들지 않거나, 원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차선책일 경우에 쓴다. 예를 들어 여름 한낮에 자취방에 놀러 온 친구가 맥주 있냐고 물어 봤을 때, 콜라만 있다고 하면 그 친구가 할 수 있는 말이 바로 "그거라도 줘 봐라."인 것이다. 그러니 “누구라도 행복한 도시가 됩니다.”는 누구와 행복의 가치, 둘 다 떨어트리는 표현이다.

감각적 영상에 가려진 실수들


이상한 우리말 사용은 지자체가 발주한 여러 영상에도 흔히 보인다. 최근 각종 SNS를 통해 인근 지자체의 웹 드라마나 홍보 영상을 자주 접하는데 그 목적과 쓸모를 논하기에 앞서 그 영상의 수준, 특히 시나리오의 문장이 형편없어서 놀라곤 한다. 예를 들어 진주시의 <원더풀 진주> 영상의 첫 성우 대사는 “강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우리는 유유한 시간과 만납니다.”이다. 유유하다는 말이 무슨 뜻으로 쓰였는지 감을 잡기 힘들어 찾아봤다. 한자 그윽할 유(幽) 두 개를 겹쳐 쓰면 깊고 그윽하다는 뜻이다. 유유한한(悠悠閑閑)이나 유유자적(悠悠自適)이라는 말도 있는데 둘 다 한가롭다는 뜻이다. 우리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라는 표현을 쓸 때의 그 유유는 여기서 나온다. 그러니 유유한 시간이 “깊고 그윽한 시간”이라는 것인지 아니면 “한가롭게 흘러온 시간”이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어지는 대사는 더 어수선하다. "오랜 세월을 거쳐 장엄한 순간들을 만들며 천년의 시대를 지나온 도시의 숨결"이다. “천년의 시대”라는 말은 없다. 초등학생도 이런 표현은 쓰지 않는다. 시대는 역사와 세월의 흐름을 구분하기 위해 후대에서 인위적으로 설정한 시간 구분이다. 그러니 시대를 쓰고 싶다면 구체적인 명사가 나와야 한다. 조선시대, 삼국시대처럼 말이다. 구지 천년을 쓰고 싶다면 천년의 시간, 천년의 세월이라고 써야 한다. 게다가 앞에 "오랜 세월"이란 말을 써 놓고, 뒤에 천년을 말하니, 이 또한 말의 낭비다. 또 "장엄하다."는 말은 경건하고 엄숙하다는 의미로, 주로 종교적이고 비극적인 상황에서 쓰이는 표현이다.

10월에는 김해로 가던 경전철 모니터를 통해 김해시 웹드라마를 봤다. 마침 프롤로그가 나오고 있었는데 “김해라는 도시도, 슬로시티라는 타이틀도 낯설고 생소하지만...”으로 시작됐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슬로시티라는 명칭을 타이틀로 표현한 것도 불편했지만 그 뒤에 “낯설고 생소하지만”에선 실소가 나왔다. 낯선 게 생소한 것이고 생소한 게 낯선 것이니 동어 반복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 달 전에는 업계 후배가 ㅇㅇ문화재단이 발주한 웹드라마에 참여했다고 해서 찾아봤더니 시나리오며 영상까지 90년 대 에로 영화처럼 엉성해서 아직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민망하여 그 평을 미루고 있다.

평생 공부는 당연하다.


지역 업계에서 선배를 만난 지 꽤 됐으니 이런 카피와 시나리오는 업계의 후배들이 썼을 것이다. 만약 나보다 연차가 많은 이가 썼다면 찾아내어 은퇴를 권해야 할 것이다. 아직 은퇴가 먼, 자칭 타칭 MZ 세대인 젊은 후배들의 페이스북 들여다보면 “고객 중에 꼰대가 너무 많다.”, “열정페이로 부려먹는다.”, “지역 일은 단가가 낮아서 못해 먹겠다.”는 투정이 많다. 지역엔 큰 프로젝트가 드물다고, 큰 프로젝트는 서울 회사나 선배들이 다 한다는 불평도 있다. 그러나 그런 불평을 하기 전에 맡은 일을 제대로 했는지, 큰일을 욕심내기 전에 그 큰일을 감당할만한 능력이 있는지 돌아봤으면 한다.

모든 업이 그러하듯, 광고나 홍보 일도 그 업에 맞는 기본 준비가 되어 있어야하고, 연차를 쌓을수록 더 깊이 공부해야 한다. 또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면 과거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업계 안팎의 여러 의견을 새겨들어 고칠 것은 고치고, 바꿀 것은 바꿔야 한다. 그래야만 그 업의 수명을 늘릴 수 있다. 롤랑 바르트는 "주체는 언어활동에 의하여 파생된 하나의 효과(effect de langage)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말을 뒤집어 말하면 언어활동의 흔적은 곧 주체의 흔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쏟아낸 글과 말, 영상이 다 내가 세상에 살면서 만들어낸 흔적이니 앞으로는 바르고 고운 흔적을 남기려 애 써야 할 것이다. 모든 업이 그렇듯 학교에서 배운 것이 그 배움의 끝은 아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스승을 찾는 발걸음은 분주해야 하고, 조언을 듣는 귀는 열려 있어야 하며, 자기반성의 시간은 충분해야 하고 그 반성과 성찰은 깊어야 한다. 이것이 지역에서 이 업을 20년 가까이 한 꼰대 카피라이터의 젊은 후배들을 향한 연말연시 덕담이라면 덕담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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