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군인을 대하는 자세

알라모 유적지에서의 크리스마스 트리. (사진 갈무리=알라모 공식 홈페이지)
알라모 유적지에서의 크리스마스 트리. (사진 갈무리=알라모 공식 홈페이지)

[최영훈 칼럼@이코노미톡뉴스] 몇 년 전, 텍사스 어머니 집을 갔을 때 샌안토니오를 간 적이 있다. 리버 워크라는 유명한 관광지와 알라모 유적이 있는 곳이다. 리버 워크는 인공 운하를 따라 조성 된 상가인데 술집과 식당, 기념품점, 대형 쇼핑몰이 밀집되어 있다.

이곳을 천천히 둘러보는데 공군 정복을 입은 군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마침 이날 샌안토니오 인근 훈련소에서 신병 기초 군사 훈련 수료식이 열렸기 때문이다.

주변을 다시 둘러 봤다. 멕시코 풍으로 꾸며진 멋진 식당과 카페, 술집 앞 입간판마다 어김없이 “오늘 하루, 공군과 그 가족은 맥주 공짜.”, “공군은 스테이크 반값.” 과 같은 할인 행사 알림이 쓰여 있었다. 더 걷다 보니 곳곳에 공군 신병과 그 가족이 눈에 띄었다. 단체티를 입은 가족도 있었다.

가슴팍에는 “전 공군의 엄마입니다.(Air Force Mom)”, “난 자랑스러운 공군의 여동생입니다(Proud Air Force Sister).”와 같은 문구가 있었다. 미국 국민이 군인에 갖는 존경심이 얼마나 큰지 스포츠 팬이라면 다 알 것이다. NBA 작전 타임에 현역 군인이나 예비역 군인, 군인 집안의 팬을 특별히 호명해서 스탠딩 오베이션, 즉 기립 박수를 쳐주는 건 흔한 일이다.

MLB에선 우리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엔 현역 및 퇴역 군인이나 그 가족에게 시구를 맡기기도 한다. 더 나아가 NFL이나 NHL을 포함한 미국의 4대 프로스포츠 구단에서 군인 가족을 위해 특별석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이런 미국 국민의 군인에 대한 존경심은 전사자로 귀향할 때도 드러난다. 이 영화엔 그 존경과 예우의 여정이 담겨 있다.

영현봉송의 여정


2004년 이라크 전쟁, 차량 호송작전 중 해병대 챈스 펠프스 이병이 전사한다. 모든 전사자는 고향에 돌려보내야 한다는 철칙 아래, 군은 고향까지 영현봉송을 책임진다. 그 임무는 영현수습전담부대의 유해 수습 후 델라웨어 주 도버 공군기지에 위치한 합동 도버 영현안치소(Dover Port Mortuary)에 합동 안치 된 뒤, 지정 된 병사에 의해 비행기나 기타 운송 수단을 이용해 고향까지 봉송 되고, 장례식까지 끝나야 완수 된다.

이 영현봉송 임무에 해병대 중령 마이클 스트로블이 자원한다. 그는 병으로 입대해서 걸프전에 참전했고, 이후 포대장, 사격지휘장교 등 야전부대에서 경력을 쌓는다. 이후 일종의 교육부대라 할 수 있는 해병대 교육 훈련단의 중책을 맡아 군 생활을 이어간다. 편한 군 생활을 하는 내내 그의 마음 한편에는 야전근무에 대한 미련과 이라크 전쟁에서 고생하는 선후배 전우에 대한 미안함이 공존한다. 그런 마음 때문인지 그는 매일 전사자 명단을 보며 과거 인연이 있는 병사가 없기를 기도한다. 그러다 우연히 전사자 명단에서 고향이 같은 콜로라도 주 클리프턴 출신의 챈스 이병을 보게 되자, 영현봉송 임무를 자원한 것이다.

영화
영화 "챈스 일병의 귀환(Taking Chance, 2009)" 스틸컷.

여정은 델라웨어에서 시작해 와이오밍까지 이어진다. 그 사이 비행기와 자동차를 갈아타며 많은 이들을 만난다. 그들은 영현봉송 임무를 하는 마이클 중령과 고향으로 돌아가는 챈스 이병에게 존경과 감사의 뜻을 표한다. 공군 조종사 출신의 민항기 기장은 기내방송으로 "여러분이 내리시기 전에 전사한 해병의 시신을 운구하는 중령님께서 먼저 내리실 예정입니다. 전사자에게 명복을 빌어주시기 바랍니다."며 양해를 구하고, 승객들은 기꺼이 함께 애도의 뜻을 표한다. 기장과 지상 근무자들은 챈스 이병의 관 앞에서 예우를 갖춘다. 황량한 고속도로를 달릴 때, 운구 차량을 본 운전자들은 한낮임에도 자발적으로 자동차 라이트를 밝힌 채, 운구차량 앞뒤로 에스코트하며 전몰장병에게 예우를 갖춘다. 이렇게 예우를 갖추는 장면은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Fallen Soldiers Return Home으로 검색하면 도로를 가득 매운 할리 데이비슨 무리가 운구차를 에스코트하거나, 지역 경찰차들이 에스코트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군인'의 의미


분단국가이자 주적(主敵)이 분명한 우리나라지만, 군인과 군대를 밥벌이 수단쯤으로 여기는 지역도 있고, 전역 군인에게 가는 혜택을 못 마땅해 하는 국민도 있다. 군인을 모으는 제도, 현역 군인을 위한 제도, 제대 군인을 위한 제도 말고, 오히려 군인의 본질에 대해,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깊이 생각해 봐도 그럴 수 있을까?

이런, '군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이 종종 실언을 하기도 한다. 10여 년 전쯤에 EBS 인터넷 방송에서 한 여자 강사가 “군인은 살인을 교육 받는 사람인데 뭐 해달라고 자꾸 떼를 쓴다. 우리가 애를 낳으면 뭐하냐. 죽이는 거 배워오는데.”하고, 강의 중에 말을 해서 방송사는 물론이고 나라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이 여자 강사는 아직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를 하고 있다.

전방 군인들의 모습. (사진=이톡뉴스DB)
전방 군인들의 모습. (사진=이톡뉴스DB)

이 여교사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다. 물론 군인은 살상 교육을 받는다. 보수 논객 전원책씨도 100분 토론에서, 군대의 본질적 목적을 강조하기 위해 비슷한 말을 했었다. 그러나 군인이 그 교육 받는 이유는 나라와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다. 즉 그들은 타인을 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 그 교육을 받는 것이고, 그 지킴의 사명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무기화해야 하는 의무를 받아들인 것이다.

저 여자 국어 선생 같은 이들이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건 그것을 배운 자의 운명이다. 그것을 배운 다는 건, 그것을 배운 적과 대치했을 때, 자신의 목숨이 빼앗길지 모른다는 가능성 앞에 자신을 내놓는 운명을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국가로부터 군인으로 부름 받았다는 것, 그 존재의 구실을 제대로 하기 위해 그 방법을 배운다는 것, 그 방법을 배운 적 앞에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상의 봉사이자 희생일 수 있음을 저 국어 선생 같은 이들은 염두에 둬야 한다.

군인은 예우 받아야 한다


영국의 작가 G.K 체스터톤은 군인의 사명을 “The true soldier fights not because he hates what is in front of him, but because he loves what is behind him.”라는 문장으로 함축했다. 번역하면 “진정한 군인은 앞에 있는 것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뒤에 있는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싸웁니다.”로 번역할 수 있다. 뒤에 있는 것들이 무엇이겠나? 조국과 국민 아니겠나? 그러니 가산점과 같은 혜택을 무슨 적선하듯이 줬다 뺐었다 하면서 우리 군의 사명의 무게를 가벼이 대접하지 않았으면 한다. 적의 총칼이 우리에게 향했을 때 우리를 대신해 총칼을 들도록 배운 이들이자, 적의 총칼을 마주하여 몸을 던질 존재이기에, 그 특별한 존재에 걸 맞는 예우를, 그 예우의 격식을 제대로 갖춰줬으면 한다.

그리고 또 하나 갖춰야 할 것이 있다. 챈스 이병의 장례식 전날, 마이클 중령은 미 제1해병사단 소속으로 6.25 전쟁에 참전한 동네 할아버지 찰리 피츠를 만난다. 중령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익숙해서 내근직을 지원했고, 전투훈련을 받았지만 전쟁터에 있지 않기에, 챈스처럼 전쟁터에 있는 친구들이 진짜 해병대원이지 자신은 아니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러자 그 노병이 말한다. “그런 생각은 집어치우시게. 자넨 챈스를 고향에 데려왔고, 이젠 챈스의 증인이네. 증인이 없다면, 그들은 모들 잊히게 될 걸세.”라고. 이 장면을 통해 다시 묻는다. 우리가 우리 군인의 소중함을, 그 봉사의 가치를 기억하고 기리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기억하고 기리는 것, 이것이 우리가 예비역, 현역, 더 나아가 이 땅을 지키다 전사한 모든 호국영령과 대한민국 군인에 대해 갖고 있어야 할 또 하나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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