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영화, 그리고 브람스 교향곡 3번 음악회

[강규형(명지대 교수, 서울시립교향악단 이사장) 칼럼@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이톡뉴스)] 프랑수아즈 사강(Sagan)은 1954년 18살의 나이로 “슬픔이여 안녕”이란 소설을 써내며 세계문단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그 이후 나오는 소설마다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다.

Françoise Sagan(프랑수아즈 사강). (사진=위키피디아. 저작=Stiopik)
Françoise Sagan(프랑수아즈 사강). (사진=위키피디아. 저작=Stiopik)

지나칠 정도의 자유분방한 생활로도 유명했고, 자동차 스피드 광으로 살다가 황천길도 갔다 왔다. 약물에도 의존해서 "나는 나를 파괴시킬 권리가 있다."란 유명한 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그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Aimez-vous Brahms)"도 큰 인기를 끌었고, 소설이 영화화됐었다. 잉그리드 버그먼, 이브 몽탕, 앤서니 퍼킨스 등의 화려한 국제적인 캐스팅으로도 유명했다. 젊은 남성과 중년 여인의 사랑, 자유분방한 파리의 연애 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그래서 연하 남성과 연상 여성의 사람을 그린 근래의 한국드라마들에서도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은 계속 배경음악으로 등장했다.

지난달 말 서울시향의 정기공연의 메인 곡목은 바로 그 소설·영화의 메인 테마곡인 브람스의 교향곡 3번이었다. 그 영화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는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 재즈로도 변주된다. 브람스의 교향곡 1번도 영화에서 중요 음악회 장면에 등장한다. 그래서 연주회 전에 정말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봤다.

요즘은 안방의 TV에서 영화를 골라볼 수 있으니 참 편하다. 꽤 옛날 흑백 영화인데도 아직도 영화 쇼핑 리스트에 있었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굿바이 어게인(Goodbye Again)”. 한국제목은 약간 엉뚱하게 이수(離愁). 불어 제목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즉 제목이 세 개인 영화(아나톨 리트박 감독. 1961년 작).

파리에서 중년의 버그먼이 역시 중년인 몽탕과 애인 사이인데, 몽탕은 틈만 나면 젊은 여자들과 바람을 피운다. 여자도 그걸 잘 알고 있으면서 용인한다. 이 영화에서 이브 몽땅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 생활의 재연을 방불케 했다. 그는 부인 시몬느 시뇨레를 두고 마릴린 먼로 등과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겼다. 버그먼은 진짜 후덕한 중년의 모습으로 이 역할을 잘 표현해냈다. 버그먼과 사랑에 빠지는 부잣집 아들이자 미국인 변호사역의 퍼킨스는 영화 “싸이코”의 주인공으로 특히 잘 알려진 배우인데 치기 어린 이 젊은이를 완벽하게 연기했다. 그는 이 역으로 1961년 제14회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
영화 "이수(Goodbye Again, 1961)". 포스터

영화에서 자기가 젊은 여자들과 노는 건 정상이지만, 중년 여자인 당신이 젊은 남자와 애인하는 건 비정상이라는 야비한 멘트를 날린다. “왜 이런 남자와 살고 나중엔 결혼하지?”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 몽탕은 원래 이태리 인으로 마르세이유로 이주한 노동자 집안 출신으로 프랑스의 국민가수ㅡ배우가 된 것까지는 좋으나, 전형적인 겉멋 좌파였고 프랑스 공산당원이었다. 물론 “샴페인 좌파”가 늘 그렇듯 실제 생활은 호화판이었다.

독일 보훔 심포니의 젊은 음악 감독인 대만 출신 텅 취 촹(Tung Chieh Chuang) 지휘의 연주는 기대 이상이었고, 특히 메인 테마인 3악장이 아주 예쁜 빛깔의 음을 냈다. 4악장은 다소 밋밋했다. 대가들만이 브람스 교향곡 3번 4악장의 음영(陰影)을 표현해낼 수 있는데, 그는 아직 그 수준에는 오르지 못했다. 브람스의 “대학축전 서곡” 종반부에선 바이올린 파트에서의 엇박자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대단한 연주였다.

방역정책에 응하지 않아 많은 공연들을 펑크 낸 스웨덴의 트럼펫 주자 호칸 하르덴베리에르(Hardenberger) 대신에 급히 대타로 나선 연주자는 작년 부조니 콩쿠르 피아노 부분 우승자인 청년 박재홍이었다. 그는 늠름하게 난곡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콩쿨 우승곡이기도 하다)을 소화해 냈다. 오랜만에 영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다시 봐서 좋았고, 기대 이상의 연주를 들으니 기분이 더 좋았다.

바른사회시민회의 대표인 박인환 변호사(전 건국대 로스쿨 교수)님께서 옛 추억에 잠겨서 그 소설과 영화를 언급하시고, 연주회를 직접 와서 보시고 감동 받는 것을 보면서 “인간은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사는” 존재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이 새삼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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