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1999년9월호]

‘속3김’정치드라마 안된다

글 / 李東和 이동화 편집위원(전 서울신문 주필)

복원되는 ‘3金’ 구도

내각제 유보와 여권의 확대 창당 움직임, 그리고 직전 대통령의 정치재개 선언 등 올해 하반기에 들어와 소용돌이치기 시작한 일련의 정치 흐름을 보면 그 중심에는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김종필 국무총리와 김영삼 전대통령 등 ‘3金씨’가 자리하고 있음을 누구나 쉽게 간파할 수 있다.

DJ, JP, YS라는 영자 애칭으로도 불리는 이들 3김씨는 70대의 나이와 수십년 간의 정치 지도자 생활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물론 2000년대 새 밀레니엄을 맞아서도 상당 기간 권력의 유지 또는 쟁취에 나서 정치판을 흔들겠다는 뜻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30~40년간에 걸쳐 핵심적 정치지도자로서 최고의 권력까지 누려온 이들이 현재는 물론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우리 정치와 권력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게 되어 있는 상황은 가슴 답답해지는 일이다.

우리 정치는 3김 망에 포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그 망에서 벗어날 길이 아직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그만치 3김 벽이 높다는 얘기다. 그러면 이처럼 막강한 3김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우선 이들의 오랜 정치 경륜을 들 수 있다.

JP는 61년 5.16군사혁명의 핵심적 주도세력으로 민주공화당을 창설, 두 차례나 ‘힘있는 총리’로서 나름대로의 정치 역량을 자랑하고 있다.

YS와 DJ는 70년대 초 ‘40대 기수론’을 제창하며 야당 지도자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이래 ‘민주화 투쟁’을 거쳐 전 현직 대통령으로 최고의 권력을 번갈아 거머 쥐었다.

이런 정치 역정 속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생긴 ‘지역 감정’이 이들의 막강한 힘이 되어버린 것이다. DJ는 호남, YS는 부산 경남, JP는 충청지역에서 각종 선거 때마다 본인은 물론 소속 정당까지 몰표를 얻어 일단 해당지역의 맹주가 될 수 있었다.

이런 지역주의를 바탕으로 인물과 자금을 모아 1인 중심의 정당을 만들고 이끌어 온 것이 바로 3김정치라 하겠다.

지역할거정치, 패거리정치라는 후진적 행태를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한 지역감정과 지역색은 권력을 잡은 세력의 근시안적인 지역 차별정책과 행위 때문에 치유는 커녕 고착 내지는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역설적으로 3김은 그들이 내세우는 민주주의 개념을 손상시키는 지역주의로 정치권력을 유지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힘을 과신하고 국민과의 약속을 손쉽게 일방적으로 파기하거나 거짓말로 주요 사안을 호도하거나 민생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흐름은 또다시 3김 구도로 가고 있다. 이 흐름을 쉽게 읽을 수 있는 포인트는 뭐니뭐니 해도 역시 내각제의 향방이다.

지난 97년 11월 3일 국민회의와 자민련간의 ‘99년 말까지 내각제 개헌 완료’라는 합의 내용을 놓고 DJP가 1년 8개월여 만에 수정 합의한 것은 ‘연내 개헌 불가’일뿐 내각제 자체가 거부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내각제는 살아있고 DJ 임기 말에 추진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현 대통령 임기 말 내각제 개헌’이란 카드는 DJ로서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다.

대통령제에서는 권력이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되어 있다. 화려한 권력은 대통령 한 사람만이 갖고 휘두를 뿐이다. 과거에 대통령을 지냈던 사람도 그 직을 떠나는 즉시 권력의 파편조각조차 지닐 수 없는 ‘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이 대통령제의 특성 중 특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대 여러 대통령이 임기 후 다소의 권력이라도 공유하기 위해 임기 말이면 내각제 개헌을 시도해왔다.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들의 경우가 그 예다. 대통령 임기는 임기대로 누리고 내각제가 된다면 DJ로서는 확실한 지역적 기반을 바탕으로 적지 않은 권력을 계속 공유할 수 있게 되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구도다.

야당 일부와 YS쪽에서 ‘장기집권 음모’라는 비난이 나올 만하다.

지금과 같은 지역분할 구도 아래에서의 내각제는 확고한 지역기반을 가진 정치지도자들의 권력 분점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지역 특성상으로 보아 단독집권이 어려운 JP로서는 지역연합을 통한 제한적 1인자나 2인자를 노릴 수밖에 없어 줄곳 내각제를 주창해왔고 앞으로도 다른 대안이 없는 한 내각제를 시도할 것이다. YS 역시 대통령을 다시 할 수는 없는 일이니 권력에의 참여 가능성은 내각제 쪽이 가장 크다.

이런 흐름의 걸림돌은 대통령제 고수를 외치는 강력한 인물이나 정치세력의 등장이다.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큰 사람이라면 왜 권력을 나눠갖겠는가.

아직 대통령제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여론을 등에 업고 내각제를 극력 반대할 것이다. 전두환 정권 때는 ‘대통령제 만이 민주주의’라며 극한 반대를 한 YS, DJ가, 노태우 정권 때는 3당통합 때 내각제 합의를 파기한 YS가 있었기에 내각제 기도가 무산된 바 있다.

이번에도 반대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이회창 씨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DJ에게 약 40만표 차이로 석패한 바 있으며 현재 원내 제1당이기도 한 야당의 총재이기 때문이다.

3金정치 연장, 국민이 막아야

따라서 이 총재의 태도에 따라서는 3김의 ‘이회창 죽이기’가 본격화될 수도 있다. 병역, 세풍, 총풍 등 기존 카드뿐만 아니라 ‘이회창 세력 약화’에 초점을 둔 공세가 예상된다.

한나라당 의원 빼가기와 아울러 반 DJ 정서가 강한 영남권에 새로운 정치공작이 시도될 수도 있다.

PK에 기반을 둔 YS의 정치재개 선언과 TK를 중심으로 한 5공 그룹의 향배도 이런 측면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또 국민회의를 중심으로 한 여당의 확대개편 역시 내년 총선에서 과반수를 훨씬 넘는 의석을 확보하고 상대적으로 야당을 왜소화시키려는 의지의 발로다. 이와 관련하여 자민련의 합류여부와 한나라당의 대응이 관심사다.

어쨌든 3김의 권력 유지 내지는 분점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국민 다수의 부정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그 실체를 드러냈다. 70대 3김이 벌이는 권력 게임은 지역 분할과 대립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 뚜렷한 명분이나 이념도 없이 지역주의를 조장하고 그 속에서 이득을 챙기는 것은 그들이 흔히 팔아온 ‘역사와 국민’을 외면하는 것이다.

3김 정치의 연장을 막으려면 국민이 나서야 한다.

그러려면 새 세기, 새 천년을 맞아서도 부정 부패와 비능률이 판을 치는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아무 것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국민적 자각이 무럭무럭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조직적으로 힘이 모아지는 데까지 가야 한다. 말은 쉽지만 사실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 하나는 대안세력이 나와야 한다. 그것이 이 총재의 한나라당일 수도 있고 신진 정치세력일 수도 있으나 현재로서는 전자가 눈에 띈다. 그러나 이 총재도 아직까지는 ‘대안’으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아직 국민들에게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초선 강경파에 끌려 다닌다거나 대여관계에서 주도적으로 정국을 이끌기보다는 여권의 실정이나 돌발사건에 따른 반사이익에 안주하는 등 정치력 발휘가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이런 비판들을 겸허히 받아들여 새로운 비전과 국리민복의 정책들을 내놓는 데에 온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사사로운 감정이나 복잡한 계파의 이익을 제쳐놓고 훌륭한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모으는 일 역시 중요하다. 또 앞에 지적한 ‘국민적 자각 모으기’에도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

국민적 자각도 부족하고 대안세력도 신통치 않다면 3김 시대는 상당기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생물학적인 시한이 있지 않느냐”는 자조적인 얘기를 하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지역주의가 더욱 고착되면 현재의 3김이 없더라도 ‘제2의 3김’이 지역마다 나와 현 ‘노(老) 3김’을 계승하는 새로운 ‘후 3김’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