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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시국의 대안] 생명나눔의 박진탁 목사, '인성개조'공직 청문회 생명나눔정신 다뤘으면
  • 경제풍월 기자
  • 승인 2014.07.07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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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첫 헌혈운동으로부터 생명나눔운동에 일생을 바치고 있는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박진탁 목사

세월호 참사 이후 잇단 안전사고, 방화와 실화 사고 등을 보면서 ‘물질만능주의’, ‘안전 불감증’을 근본적으로 개조하자면 무슨 수를 내야하지 않겠느냐고들 말한다. 이럴 때 ‘생명나눔운동’이 새삼 강조된다. 생명을 최고로 중시하는 인성(人性)개조 차원에서 생명나눔운동을 더욱 활성화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월호 시국’ 의 대안
생명나눔 '인성개조'

박진탁 목사, 물질만능 대응 생명나눔
공직 청문회 생명나눔정신 다뤘으면

‘국가개조’ 차원의 ‘인성개조’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를 창립하여 이끌고 있는 박진탁 목사(77)는 국내 첫 헌혈운동으로부터 생명나눔운동에 일생을 바치고 있다. 박 목사가 세월호 참사에 따른 300여명의 인명손실을 보고 세태를 진단하는 안목은 남다른 점이 있다.

▲ 국내 제1호 신장기증인으로 한양대병원에서 수술 후 모습

누구나 세월호 참사는 물질만능주의와 안전불감증으로 진단하지만 처방에 있어서는 생명나눔의 정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세월호 참사 과정에 ‘나쁜 선장’, ‘무자격 사업주’, ‘무능 무책임 감독자’의 죄목이 드러났지만 이름 없이 본분을 다한 ‘의사자’(義死者)들의 숭고한 생명나눔 정신이 너무 빛났다.
박 목사는 ‘국민검사’로 추앙돼온 안대희 국무총리 내정자의 낙마현상을 보고 변호사 수임료의 사회환원도 중요하지만 ‘헌혈증서’나 ‘각막기증 증서’하나가 더욱 중요한 시기라고 주장한다. 또한 정부가 ‘국가개조’ 차원의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려 하니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인명중시를 강조하기 위해 생명나눔운동의 동참여부를 질문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생각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국회의원 등 헌법기관 최고의 공직자들이 생명나눔운동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줄 때 인명경시와 안전불감증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인성개조(人性改造)운동이 확산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인사청문회의 생명나눔 필수과목

박 목사는 경복고와 한국신학대를 나와 1968년 한국헌혈협회를 창립하여 만 65세에 이르기까지 무려 151회나 헌혈을 기록했다. 1991년에는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를 창립하여 한양대 병원에서 자신의 신장 하나를 생면부지의 환자에게 기증함으로써 정부로부터 국민포상을 받았다.

▲ 대한적십자사혈액원에서 헌혈운동을 펼칠 당시 동료직원들과…

박 목사는 신장 하나를 남에게 떼어준 후 자신의 건강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노라고 실증하고 다닌다. 주말에는 서울 근교 등산으로 건강운동하고 전국 교회와 학교 등으로 생명나눔운동을 열강해 왔었다.

박 목사의 생명나눔운동은 기독교를 발판으로 시작했지만 일찍부터 불교계와 소통하여 수덕사 주지 법장(法長) 스님과 함께 범종교계 생명포럼으로 발전시켜 왔다. 이 과정을 통해 생명나눔운동은 인명경시 풍조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치고 안전에 관한 책임감과 의무감을 높이는 성과가 있었다고 확인해 준다.
이런 측면에서 세월호 참사로 국가와 국민이 자신감을 잃고 절망감에 빠져 있을 때 국가 지도층이 헌혈운동에서부터 장기기증운동까지 모두 참여하는 분위기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바람직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박 목사는 안대희 전 대법관이 훌륭한 인품에도 불구하고 공직 퇴임 후 변호사 수임료 때문에 낙마한 것은 결국 국가적 손실이니 앞으로 인사 청문회에서는 생명나눔 정신을 필수과목으로 다루기를 제안한다고 말한다.

‘박근혜 학생’의 헌혈동참 회상

▲ 헌혈하는 육영수 여사 ▲1972년 2월 18일 경향신문

박 목사는 한국헌혈협회 설립 후 1971년 광화문 지하도에 첫 ‘헌혈의 집’을 개관할 무렵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대한적십자사에 헌혈차 1대를 기증함으로써 헌혈운동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노라는 옛 일을 회상한다. 당시 박 대통령의 헌혈차 기증이 전군(全軍)으로 헌혈운동을 확산시켰기 때문이다.
다음달에는 서강대학교로 헌혈 캠페인 나갔을 때 박근혜 학생이 찾아와 헌혈하고는 그냥 돌아가지 않고 티 서비스 등으로 끝까지 자리를 지킨 모습을 보여 주었다. 박근혜 학생이 기분 좋게 청와대로 귀가한 후 육영수(陸英修) 여사가 각부 장관과 국영기업체장 부인 등 양지회(陽地會) 회원들과 헌혈운동에 동참하여 국민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박 목사는 헌혈운동이 각종 부작용을 유발하는 ‘매혈’을 중지시키고 생명나눔운동의 바탕으로 정착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지금은 교회로부터 학생과 군인 등 연간 130만명의 헌혈자가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박 목사는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경우 재임 중 두 차례나 TV 연설을 통해 헌혈 캠페인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말한다. 아마도 대학생 시절 헌혈에 참여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안전처 신설 방침의 일환으로 생명나눔운동을 강조해 주길 기대하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 생명나눔친선대사 위촉식에서…

세월호 시국에 생명나눔 강조의 뜻

박 목사는 1973년 대한적십자사 헌혈과장을 거쳐 1984년에는 미국 LA로 이민 가서 헌혈봉사회를 조직하고 장기기증 운동을 익힌 후 1991년 귀국하여 사랑의 장기기증운동 본부를 창립하여 오늘에 이른다.
장기기증운동은 신부전증 환자들을 위한 신장이식 기증으로부터 골수은행, 장기은행, 뼈은행, 각막은행 등으로 범위를 확대해 왔으며 지난 2007년에는 장기기증 및 이식 환우들의 휴식 및 안식처로 제주도 서귀포에 ‘라파의 집’을 개관 운영하고 있다.
박 목사의 생명나눔운동이 결코 순탄한 과정으로 정착해 온 것은 아니었다. 헌혈운동이나 신장이식 중계역할에도 일시 오해와 불신이 따르고 뜻밖의 수난도 겪어야만 했다. 생명나눔에는 어떤 대가가 따를 수 없고 생명윤리를 거스르는 불법이 개입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생명을 주고받는 관계에 미묘한 갈등과 오해가 개입할 여지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박 목사도 이같은 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끈질긴 집념과 사명감이 70대 고령에 이르기까지 그를 생명나눔운동의 대부로 각인시켜 줄 수 있었다.
박 목사가 구원파 유병언씨 일가가 도피 중에 있고 안대희 국무총리 내정자가 낙마한 직후 경제풍월로 찾아와 생명경시, 안전불감증의 대안으로 새삼 생명나눔운동을 강조한 뜻에 감동하고 동의하는 심정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79호(2014년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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