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민심 구애경쟁

‘야당의 길’ 필수와 금기
호남민심 구애경쟁
DJ와 노무현 정신 상속다툼 격
국립현충원 참배엔 금역있는 듯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1일 광주 5· 18 국립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총선을 앞두고 ‘야당의 길’, ‘여당의 길’이 따로 있다는 식의 행보가 눈에 거슬린다. 당내에 주류와 비주류가 있고 공천에 사활을 걸게 되는 현실이 있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대의행보마저 필수코스와 금역이 있고 특정지역 민심에 매달려야 하는 성역이 있다는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

호남민심 잡기만을 ‘야당의 길’ 인양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분열한 후 국민의당과 호남민심 잡기에 매달려 경쟁하는 것이 야당의 길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새다. 지금껏 걷지 않은 새로운 길을 금역처럼 거부하여 어찌 정권교체를 꿈꿀 수 있는가.
정통야당의 본산이 호남민심 텃밭이라고 알고 있지만 김대중·노무현 정신 하나를 둘로 쪼개 구애작전 경쟁을 벌이면서 일희일비하는 것은 비호남권에서 보면 ‘호남당’을 추구하는 꼴이다. 집권 10년의 경험을 쌓은 정통야당이 언제까지나 호남민심에 사활을 걸어서는 전국당 이미지 조성에도 장애가 될 수 있다.
새누리당이 걷고 있는 ‘여당의 길’이라고 온전하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TK지역에서의 진박(眞朴)·비박(非朴)간 결투만으로도 전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새누리당이 야당에 비해 특별히 금지구역을 설정하거나 필수코스를 지정해 두지 않으니 모양새 면에서 비교되는 것이다.
분열된 야당 대표들의 첫 행보는 DJ 묘역과 봉하마을, 5.18 묘역 참배와 동교동의 이희호 여사댁 예방이 최우선 필수코스이니 마치 DJ와 노무현 정신의 상속권 다툼으로 비친다. 더구나 호국영령이 모셔진 대한민국 정통성의 상징인 국립현충원 참배길에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참배는 금역처럼 인식되어 행여 참배하더라도 당내 논란을 가져온다.
정권교체를 약속하고 국민의 통합을 강조하는 야당이 왜 이런 내부 금역에서 과감히 벗어나지 못할까. 행여 호남민심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재집권을 포기하더라도 ‘야당의 길’ 외통수를 추종하겠다는 각오일까.

국부(國父)를 국부라 부르지 못하는 정치

야당대표가 이승만, 박정희 묘역을 참배하면 뉴스로 취급되는 것이 비정상이다. 현충탑에 헌화, 묵념하고 DJ와 YS 묘역에 참배하고 돌아오는 것이 정상인가. 바로 인접한 이승만, 박정희 묘역을 동시 참배하는 것이 비정상이란 말인가.
문재인 대표가 최고위원들의 반대로 홀로 이승만, 박정희 묘역을 참배했다가 당내 강경 진보파로부터 비판을 받고 그 뒤에는 참배하지 않았다. 반면에 안철수 대표는 탈당 후 고루 참배함으로써 ‘낡은 진보’ ‘운동권식’과 차별화하겠다는 이미지를 쌓았다.
정통야당을 계승한 더불어민주당이 아직껏 야당의 길 필수코스를 신봉하여 국립현충원 참배마저 금역과 금기를 두고 있는 것은 “나라의 정통성보다 야당의 정통성이 우선한다”고 착각한 것이 아닐까. 이승만 묘역 참배는 건국과 독재가 걸리고 박정희 묘역은 친일논쟁과 쿠데타가 걸린다는 주장이라는 말인가.
역대 민주화 대통령들의 ‘역사병’을 존중하는 심정일는지도 알 수 없다. YS의 ‘역사바로잡기’, DJ의 ‘제2의 건국’, 노무현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역사병을 굳게 믿고 이를 야당의 정체성이라고 확신한다면 차기집권의 희망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일부 진보계 역사학자들이 독재와 친일 등을 거론하며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 역사를 훼손하려 기도하지만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살아 있는 역사다. 대다수 국민들이 역대 대통령들의 ‘역사병’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여러 차례 선거를 통해 확인되지 않았는가.
국민의당 한상진 창준위원장이 4.19 묘역 참배 후 이승만 국부론(國父論)을 말했다가 진보계의 공박을 받았지만 결코 실언한 발언이 아니다. 진보계 학자의 눈으로도 대한민국 건국사를 사실 그대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또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위원장이 박정희 경제를 평가한 것도 경제학자로서 지켜보고 참여해 본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다만 신군부의 국보위에 참여한 사실에 대해 5.18 묘역 참배에 앞서 광주시민들에게 사과한 것은 야당대표로서 정치적 사과의 의미로 말했다고 본다. 김 위원장은 5.18 묘역에서 특별히 윤상현, 박기순 씨 합장묘에 무릎 꿇고 참배했지만 이 역시 정치적 행보의 의미이다. 윤상현 씨는 수류탄 자폭으로 사망했고 박기순 씨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후 영혼결혼 했지만 5.18 유공자가 맞느냐는 논란이 제기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조화와 축하 난마저 정치적 논쟁

‘야당의 길’, ‘여당의 길’에서 생각나는 일이 축하화환이나 난초마저 정치적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정치권 행사에는 늘 화환이 넘치고 사무실마다 난초가 쌓인다. 화훼업자들을 생각하지 않으면 정치권의 화환과 난초도 규제했으면 싶은 생각이다.
국민의당 창당대회에 더불어민주당의 축화 화환은 달랑 1개이고 새누리당 화환은 4개라는 사실이 보도되어 눈길을 끌었다. 더불어민주당 화환은 김종인 위원장,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 김무성 당대표, 원유철 원내대표, 황진하 사무총장 등이 화환을 보냈으니 카메라에 잡힐만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안철수 의원 탈당과 창당으로 표밭을 둘로 갈랐으니 섭섭하고 새누리당은 야당분열로 어부지리를 얻게 됐다는 감사의 표시일까.
이보다도 김종인 위원장이 박 대통령 64회 생신 축하 난초를 보내려다 문전박대 받은 사실이 더욱 정치적 구설수를 불러왔다. 어찌하여 야당대표가 모처럼 보낸 축하 난을 용감하게 정무수석 비서관이 ‘정중한 사절’이라며 거부할 수 있었을까. 김 위원장이 대선캠프에서 국민행복위원장을 맡았다가 야당으로 변신한 것이 불쾌하다는 의사표시 일까.
뒤늦게 대통령이 잘못된 사실을 알고 접수토록 처리했다지만 이미 온 국민이 청와대의 옹졸한 불통처사를 다 알고 난 후의 일이다. 또 더불어민주당이 이 같은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여 논란을 확대시킨 점도 결례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대통령 명의의 화환이 시중에 남발되는 것도 좋게 보여지지 않았다. 지난 대선캠프 유공자라고 자칭하며 대통령 사진을 담은 명함을 돌린 사람이 많았고 그들의 애경사에 대통령 화환이 전시된 사례도 많이 봤다. 반면에 ‘배신의 정치’로 지목된 유승민 의원의 부친상 때 대통령의 조화가 빠진 것은 구설수에 오를 수 있었던 일이다.
미워도 대통령이 조문의 뜻을 표해야 할 상가에 조화를 보내지 않고 아무리 해명을 해봐야 문상 다녀온 수많은 여야의원들에게 대통령이 유 의원을 미워한다는 이미지를 확인시켜 준 셈이니 소탐대실이었다. 아직은 예비후보 단계이지만 유 의원이 진박 후보에 비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 바로 TK 민심이 청와대를 나무라는 뜻 아니겠는가.

‘야당의 길’ 내규 탓에 당대표 단명

총선, 대선을 앞두고 분열과 통합, 탈당과 창당은 정당사의 습관성이자 상습적이다. 여야의 공통사항이지만 야당의 분당사가 여당에 비해 너무나 잦았다.
DJ와 YS가 야당 권력을 장기 집권할 때는 두 지도자의 깃발 따라 분당, 합당을 거듭했지만 노무현 이후에는 유망 대권주자가 없었기에 당대표 자리가 임시직처럼 돌고 돌았다. 지난 2000년 이후만도 야당대표가 34명으로 평균 집권기간이 5개월 남짓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DJ의 새정치민주당은 서영훈에서 조순형까지 7명, 노무현 열린우리당은 정동영에서 정세균까지 9명, 그 뒤 민주당 민주통합당,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더불어민주당까지 임시대표, 공동대표, 비대위 위원장 등으로 바뀌어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 가운데 정세균 대표 2.1년, 손학규 대표 1.2년이 그나마 장수로 기록된다.
야당대표 가운데 한광옥, 한화갑 대표 등은 아예 진영에서 물러났고 조순형, 이부영, 손학규 대표 등은 정계은퇴, 정동영, 안철수, 김한길 대표 등은 탈당으로 갈라섰다. 야당 대표출신들이 갈라지고 물러선 것이 ‘야당의 길’의 독특한 내부 규율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물론 새누리당 대표 출신들도 이회창, 최병렬, 강재섭, 박관용, 박희태 전 대표 등이 퇴출당했지만 정치적 울타리만은 벗어나지 않고 집안에 은퇴한 점이 다르다.
그러니까 야당대표의 단명 수난사가 바로 ‘야당의 길’과도 관련이 있다고 보기에 결코 올바른 길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9호 (2016년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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