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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국강병, 민생안정
역사의 리더십을 돌아본다

글/황원갑(소설가, 역사연구가)

돌아가는 나라 형편이 매우 어지럽다. 많은 사람이 현실은 물론 장래까지 불안하다고 하니 바야흐로 난국을 넘어 국난의 위기라 하겠다. 모름지기 정치지도자는 이처럼 비상한 시기에 비상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마땅한데 현실은 그런가? 국가의 궁극적인 존재 의의는 부국강병과 국리민복이다. 지금 정치지도자들에게 그런 리더십을 기대할 수 있는가, 없다.

좌파정권 10년뒤 또 탄핵정국 난국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 하는 지도자, 걸핏하면 막말을 쏟아내는 자질과 자격이 한참 모자라는 그런 정치지도자들에게 무슨 부국강병과 국리민복의 출중하고 탁월한 리더십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는 김대중과 노무현 좌파정권 10년간 쌓인 실정(失政)에 얼마나 크나큰 고통을 당했던가. 민생은 피폐해지고, 국력은 쇠약해진 반면, 북한의 위협은 길수록 커져온 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난데없는 대통령 탄핵문제로 온 나라가 중병에 걸려버렸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국가와 민족의 진운이 갈린 참으로 중요한 시기에 하늘도 이 나라를 돌보지 않는 것인가?
역사는 교훈을 준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는 민족에게 발전은 없다. 우리가 또다시 난국을 맞은 것도 귀중한 역사의 교훈을 망각한 데에서 비롯된 자업자득이다.
리더십이 없는 지도자,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고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지도자,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며 자신의 치부를 감추고 국민을 기만하는 지도자를 가진 국가와 민족의 장래는 어둡다.

▲ 채용신(1850-1941)이 그린 단군상. <사진저작권=퍼블릭 도메인>

단군왕검(檀君王儉)이나 세종대왕(世宗大王)이 다시 살아 돌아와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맡아도 이 난국을 극복하지 못하리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나라는 반만년 오랜 역사를 이어온 만큼 슬기롭고 리더십이 뛰어났던 위대한 제왕과 영웅호걸이 많았다. 그들의 탁월했던 리더십을 거울삼아 이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교훈을 찾아보자.
뿐만 아니라 개혁에 실패하여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지 못한 군주들의 역사도 살펴보고, 그들을 통해 반면교사의 교훈도 얻어 보기로 하자.

한국사 최초 리더는 단군왕검

우리 역사에서 최초의 리더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단군왕검이다.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를 부인하는 사람은 자기 조상의 뿌리와 우리 민족사를 부정하는 사람이다. 인류사가 시작된 이래 부모 없는 자식이 없었고, 조상 없는 후손이 있을 수 없었다. 5천년 역사를 이어온 우리 한민족은 오랜 옛날부터 단군왕검을 개국시조로 받들어왔으며, 단군왕검이 세운 고조선을 우리 겨레가 세운 최초의 나라로 내세우는데 민족적 공감대를 형성해왔다. 따라서 단군왕검이야 말로 우리 역사상 최초의 영도자요, 고조선의 건국 또한 단군왕검의 위대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단군왕검은 특정한 개인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라기보다는, 종교지도자의 명칭인 단군과 정치지도자의 명칭인 왕검을 아울러 일컫는 칭호였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단군왕검은 보통 사람들보다는 훨씬 뛰어난 통솔력으로 무리를 이끌고 고조선을 건국한 최초의 제왕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고조선이 망한 뒤 그 유민은 만주와 한반도 곳곳에 흩어져 이른바 열국시대를 이루기 시작했다. 고조선의 뒤를 이어 일어난 가장 강력한 나라가 고구려였다.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東明聖王)- 추모왕(鄒牟王)은 탁월한 통솔력, 출중한 무술로 대제국 고구려를 건국한 일세의 영걸이었다. 그는 북부여에서 졸본부여로 망명해 고구려를 건국하고, 고조선의 유민을 다시 모으고, 선조들의 옛 땅을 되찾고자 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비범했는데, 특히 활을 잘 쏘았다. 2천년 전 고대에는 무술이 뛰어나고 총명해야만 무리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으니 동명성왕은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추었고, 비상하게 탁월한 리더십이 있었으므로 고구려를 건국할 수 있었다.

광개토대왕은 부국강병 제왕

고구려의 제19대 임금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은 민족사상 최대의 강역을 개척하고 부국강병을 이끈 탁월한 제왕이다. 그는 375년에 고국양왕(故國壤王)의 맏아들로 태어나 391년에 18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413년에 39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재위 22년 동안 탁월한 경륜과 출중한 리더십으로 부국강병의 대업을 펼쳤다. 광개토태왕은 오로지 뛰어난 전략과 전술로 백제·왜·동부여·비려·후연·거란·숙신 등을 정벌하여 고구려 사상최대의 판도를 개척한 정복군주로 알기 쉽지만, 그는 쉴 새 없이 전쟁을 통해서 영토만 넓힌 호전적인 제왕은 아니었다. 그는 밖으로는 수많은 외적을 굴복시켜 국위를 천하에 떨쳤고, 안으로는 백성들이 편안히 생업에 종사하고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통해 정신적 평화를 찾을 수 있게 함으로써 부국강병을 이룩한 비상한 영주였다.
온조왕(溫祚王)은 부여족을 이끌고 고구려에서 남하하여 새 나라를 건국한 백제의 시조다. 그의 자질이 탁월하고 리더십이 출중했던 결과 모든 이설에도 불구하고 결국 백제 시조는 온조왕으로 공인된 것이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이사금(朴赫居世尼師今)도 출중하고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신라를 건국했으며, 서기 42년부터 661년까지 520년 동안이나 사직을 유지하여 고구려·신라·백제와 더불어 사국시대를 이루었던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도 남달리 탁월한 리더십을 지녔기에 가락국을 건국하고 6가야 연맹의 맹주가 될 수 있었다.
신라의 진흥대왕(眞興大王)은 탁월한 통치력으로 신라의 도약기를 이룩한 ‘준비된 군주’였다. 나라가 제대로 성장·발전하고 국운이 융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의 힘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지도자의 리더십이 가장 절실하다. 그 옛날 고구려·백제·신라가 한반도의 주도권을 두고 세력을 다툴 때 삼국에는 모두 걸출한 제왕이 등장해 자기 나라의 성세를 과시했다. 고구려는 광개토태왕이 우리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개척했고, 백제는 근초고대왕(近肖古大王)이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또한 신라는 진흥대왕이 일어나 고구려·백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후발주자라는 불리한 여건을 딛고 신라의 중흥을 이끌었으며, 마침내 그의 위대한 치적을 바탕으로 뒷날 삼한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2인자에서 등극은 고려태조 왕건

한편,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2인자로 있다가 제왕이 된 사람도 있으니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왕건이 역성혁명에 성공하여 당대의 영웅인 태봉국의 궁예왕(弓裔王)을 내쫓고 고려를 개국하고, 나아가 후삼국통일의 위업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리더십이 출중했기 때문이다. 왕건이 고려를 창업한 것은 단순히 군부의 몇몇 실력자를 포섭하여 일으킨 ‘성공한 쿠데타’ 덕분만은 결코 아니었다. 또 그가 신라의 항복을 받고, 역시 당대의 영걸이던 견훤왕(甄萱王)의 후백제를 멸망시켜 삼한재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인품과 자질이 천부적으로 뛰어나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탁월한 리더십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고려조에 이어 조선왕조가 서고 태조(太祖)에서 태종(太宗)까지 건국의 토대가 굳건히 다져진 뒤에 우여곡절 끝에 세종대왕이 왕위에 올랐다. 세종대왕은 인품과 자질이 빼어나게 훌륭하기도 했지만 그 어떤 제왕에 못지않게 공평무사한 참모들을 거느리고 탁월한 리더십으로 국정을 수행했다. 세종대왕은 역사상 그 어떤 왕조의 어느 제왕보다도 비상한 리더십으로 성공적인 개혁을 이룩했다. 그는 ‘개혁’이니 ‘인적 청산’이니 ‘정계 개편’이니 하는 따위의 소리는 입 밖에도 내지 않았다. 그 대신 사서와 경전을 읽고 또 읽어 그 속에서 이상적인 제도를 연구한 뒤, 이를 현실의 문제와 결부시켜 관련 규정을 보완하거나 제도를 개정하여 바로잡아 나갔다. 그리고 웬만한 사항은 대신들의 반대가 있더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실천해 나갔다. 이런 것이 바로 세종대왕만이 보여줄 수 있었던 탁월한 리더십이었다.
세종대왕의 업적은 한 사람의 제왕이 이룩한 업적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런데 그 가운데 상당수는 대왕이 몸소 관여한 것이니 더욱 놀랍다.
21세기라는 새로운 격변의 시대, 격동의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 역사를 앞장서 이끌어온 제왕들의 인간상과 위업을 다시 한 번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현대를 가리켜 무한경쟁시대라고 한다. 이는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와 사회와 문화 등 다른 여러 분야도 마찬가지요, 국내만이 아니라 국제관계 또한 그렇다. 오늘날 나라 안팎의 정세, 특히 또다시 빠진 경제적 위기에 비추어볼 때 비상한 리더십을 갖춘 탁월한 최고경영자였던 제왕들의 존재가 더한층 절실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무엇인가.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것이다. 동서고금의 어떤 민족, 어떤 국가의 역사를 막론하고 역사는 통렬한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역사의 교훈이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다시는 그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
무력전이든 경제전이든 전쟁은 승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승리 하지 못하면 패배요, 패배는 곧 죽음을 뜻한다. 그런 뜻에서 보면 오늘날의 기업경영도 규모의 대소를 막론하고 전쟁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경영의 성공이 곧 승전이요 실패가 곧 패전인 것이다. 무력전쟁이든 경제전쟁이든 경쟁력이 없는 나라는 낙오되고 도태당할 수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이다. 이것은 기업도 마찬가지요 개인도 마찬가지다. 국가지도자든 한 기업의 경영자든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리더십에 관해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9호 (2017년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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