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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毛澤東)의 문화대혁명] 다시 읽는 《홍위병》홍위병 출신 션판 교수의 부끄러운 회고
‘잘못 태어난 마오쩌둥의 아이들’ 이야기
  • 배병휴 [이코노미톡뉴스 회장]
  • 승인 2017.09.0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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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위키피디아>

10년도 훨씬 지난 2004년, 홍위병 출신의 미국대학 교수 션판(沈汎)이 쓴 ‘홍위병’을 다시 꺼내 읽어본다. 부제가 ‘잘못 태어난 마오쩌둥(毛澤東)의 아이들’이다. 저자 션판은 청나라시대 이래 3대 혁명가의 혈통을 타고난 골수분자로 12세 때인 1966년 홍위병 조직인 ‘만리장성 투쟁조’를 조직, 지도했었다.

‘곳곳에 숨은 적들 찾아내 처단하라’

[배병휴 회장 @이코노미톡뉴스] 1966년 5월 17일, 인민일보가 ‘위대한 지도자’(마오쩌둥)의 ‘붉은 테러’ 명령을 보도했다. “5000년 중국문화를 박살내고 외세 몰아내고 새로운 공산사회를 건설하자”, “홍위병에 명 하노니 곳곳에 숨어있는 적들을 찾아내어 처단하라”

지도자의 이 한마디가 중국 대륙을 뒤흔들었다. 곳곳에서 집회가 열리고 대자보가 휘날리고 책을 불살라 버렸다.
션판은 이 시절 신명 날리며 저지른 ‘잔인한 파괴활동’ 등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들을 평생 마음속에 묻어두기로 했다가 털어놓기로 결심하며 책을 집필했다. 이때 평생 혁명가인 부모님께 큰 죄 짓고 위대한 지도자(1893~1976)를 배신한 것 같다고 고백했다.

션판의 조부는 14세 때인 1900년 의화단에 가입, 청나라 조정에 반대하는 혁명운동 벌였고 마오쩌둥 초상화 앞에서 결혼식을 올린 부모님은 12살 때부터 일본군과 국민당(장개석)에 반대하는 혁명가의 길을 걸어왔다. 혁명가 3대인 션판은 ‘수백만 근로자 중의 평범한 한명’이라는 뜻으로 작명했다. 3살 때 인민해방군 사령부가 있는 다위안의 공산당 자녀 기숙학교에 입학하여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자본주의를 증오하는 교육을 받았다. 이때 벌써 션판은 ‘선동글짓기’의 우등생이었다. 곧이어 12세 때 ‘만리장성 투쟁조’를 통해 홍위병 혁명지도자가 되어 만인(萬人)집회에 나가 용맹을 떨친 ‘마오쩌둥의 아이들’이 된 것이다.

인민해방군 사령관, 자본가 등 처단

▲ 홍위병 출신의 미국대학 교수 션판(沈汎)

학교 운동장에 설치된 만인집회 무대에 배신자로 낙인찍힌 인민해방군 사령관 루어(羅) 장군이 끌려 나왔다. 그는 자살코자 투신했다가 실패하여 두 다리에 깁스를 하고 무대 위에 세워졌다가 부축하던 홍위병이 손을 떼자 펄썩 쓰러졌다. 사방에서 ‘죽은 척 하지 마’라는 야유가 쏟아졌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 의자에 앉히자 창백한 얼굴빛이 섬뜩했다.
이때 홍위병 지도자들이 고함쳤다. “죽은 것이 불쌍한 것 아냐, 혁명가는 적에게 동정심을 느껴서는 안돼”라고 호통 쳤다.

두 번째 무대는 베이징 시장 펑전(彭眞)부부 차례다. 시장은 붉은 페인트가 뿌려진 서양 양복차림, 부인은 붉은 드레스에 뾰족구두 차림에 속내의가 드러나 보였다. 홍위병들이 부인의 머리칼을 절반가량 밀어내고 무대를 한 바퀴 돌게 만들었다. 홍위병들이 배꼽을 쥐고 깔깔대더니 오늘 목숨만은 살려준다고 했다.

세 번째 무대는 육군 부사령관 헤이 장군으로 그는 무대 위로 끌려나왔지만 꼿꼿한 자세다. 홍위병이 뺨을 때리고 붉은 훈장을 떼 내고 속옷만 입혀 마구 매질했다. 입에서 피를 토하고 얼굴색이 자줏빛으로 변했다. 그의 목에 밧줄을 걸고 개처럼 끌어 시내를 한 바퀴 돌자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뒤이어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광기 수준의 찬양놀음이 ‘자본가의 집 수색작전’으로 번졌다.

콧수염 소년이 제1 조장으로 대문이 큰 집에 들어서자 40대 중반 신사가 미소를 지으며 환영인사를 했다. 이에 콧수염이 뺨을 때리며 ‘사악한 부르조아 놈’이라 욕하고 2시간가량 집안을 수색했다. 금괴, 달러, 금반지, 다이아반지, 저금통장, 쌀통 속의 권총, 피아노 등이 쏟아져 트럭으로 싣고 갔다. 주인 양반도 본부로 끌려갔다.
그는 베이징대학병원 외과의사로 미국서 위대한 지도자에게 충성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그의 부친이 상하이에 섬유공장 2개를 경영하다 사망 후 유산을 많이 물려 준 것이다. 수색조장 콧수염이 수술용 칼로 그의 배를 가르고 간장과 고춧가루를 쏟아 붓자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 이때 홍위병들이 신들린 것처럼 킬킬 웃어댔다.

‘자랑스런 마오쩌둥 아이’서 ‘반동의 자식’

홍위병 조직들 간에 충돌이 일어나고 반동분자를 때려죽이는 사태가 빈발했다. 션판의 이모부도 맞아 죽고 이모는 강제노동소에 수용됐다. 어느 날 ‘마오쩌둥의 강철병사’가 이모부를 보호해 줬다는 죄목으로 션판의 아버지를 잡아갔다. 어머니도 수용소로 끌려갔다.

션판이 ‘자랑스런 마오쩌둥의 아이’에서 ‘반동의 자식’이 되고 말았다. 두 달쯤 지나 부친이 ‘보완교육이 필요한 동지’로 귀가했다. 션판도 다시 완장을 차고 투쟁본부로 나가 홍위병으로 복귀했다.
1967년 여름 위대한 지도자가 홍위병 조직을 하나로 규합토록 지시했다. “중국은 거대 병영이 되고 모두는 붉은 병사가 돼야 한다”는 명이었다. 이에 따라 홍위병 조직들이 손을 잡고 폭죽을 울렸다.

7월부터는 위대한 지도자가 직접 천안문 집회에 참석, 홍위병을 사열한다고 발표됐다. 이에 전국의 홍위병들이 베이징으로 몰려와 순식간에 천막촌으로 뒤덮혔다. 매일처럼 지도자 얼굴을 기다리며 밤낮없이 집회와 수업으로 보냈다.
이 무렵 션판은 모택동의 ‘루산을 오르며’를 찬양하는 글을 게시판에 올리면서 큰 실수를 저질렀다. 끝 부문에 마오쩌둥 주석 ‘만세’(萬歲)를 무세(無歲)로 잘못 썼으니 곧 반동죄다.

요리사 출신의 134부대 중대장이 이를 연대에 보고했다. 연대장 아들과 션판은 만리장성 투쟁조 멤버로 친구사이다. 션판의 모친이 연대장을 찾아가 싹싹 빌고 장문의 자아비판 글을 써서 집회장에서 낭독하고 사본은 천막 측에 게시했다.
다음날 인민일보 사설이 위대한 지도자가 천안문에 나타났었다고 보도했다. 120만명이 모인 집회가 끝나면서 ‘마오쩌둥 만세’를 부르짖고 ‘동방은 붉은색’ 노래와 춤이 천안문 광장을 뒤흔든 것이다.

▲ 문화혁명이 한창이던 1967년 겨울, 톈안먼 광장 앞에 선 션판의가족. 왼쪽 첫번째 소년이 션판이다.

‘홍위병 길들이기’로 하방, 혁명농민

1968년 1월, 모택동의 ‘홍위병 길들이기’가 개시됐다. “모든 홍위병은 평생 혁명적인 농민 틈에 섞여 살며 노동을 통해 붉은 군대 기상을 배우라”고 지시했다. 그의 말 한마디는 곧 ‘위대한 신의 말씀’이다. 수백만 명이 지방으로 하방(下放)되기 시작할 때 션판이 제 1진으로 포함됐다.
대륙 내에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꼽히는 샨베이(陜西)로 배정됐다. 베이징에서 시안(西安)까지는 기차 편, 다시 버스로 비포장 도로 500km를 달리고 마차 편으로 걸어서 융협공사에 도착, ‘혁명농민’이 됐다. 주거 공간은 ‘동굴집’이었다.

이곳 당비서가 션판에게 “학교서 보다 들판에서 배워야 한다”고 했다. 얼마 뒤 ‘위대한 지도자’가 마을마다 ‘맨발의 의사’ 한명씩 배치하라고 지시하자 션판이 낮에는 농민, 밤에는 의사가 됐다. 그는 약초관련 책 등을 열심히 읽어 2년간 ‘맨발의 의사’로 제법 명성을 얻었다.
하방 4년쯤 이르자 베이징에서 온 아이들이 거의 떠났다. 션판은 댐 건설 현장으로 파견되어 부상병이 속출하는 3,000여명을 상대로 의사역할을 다했다. 그도 베이징으로 열심히 편지를 띄워 마침내 1972년 2월 동풍비항(東風飛航)공창으로 옮겼다.

MIG 19 전투기의 제트 엔진을 조립하는 공장의 제8 작업장에 배치됐다. 흰색 유니폼, 흰색 신발, 흰색 크레인, 흰색 캐비닛 등 온통 흰색 청결작업장이었다. 3년간 견습으로 월 18위안(9달러 상당)을 받고 4년째는 36위안, 5년째는 42위안으로 정직원 처우를 받았다.
그러나 청결 작업환경 속에 ‘이상한 죽음’이 속출했다. 정신발작 투신자살, 권총자살, 화장실에서 목매자살, 열차에 치는 횡사에다 심장병사 등 의문의 죽음이 끊이지 않았다.

션판은 이 무렵 공산당에 입당해야 한다는 절박한 목표를 세웠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그 대신 영어공부나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시골 고교 영어선생을 만나 영어교재를 빌려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1977년 8월 15일 중추절날 비밀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모택동 사망 1주년을 앞둔 시점에 션판과 친한 영어선생이 ‘마르크스와 민주주의’라는 글 때문에 끌려가 처형된 사건이 있었다. 션판은 영문 모른 채 끌려가 어느 지하실 감옥 독방에 갇혔다가 5주 만에야 석방됐다.

▲ 미국에 와서 새로 꾸린 션판의 가족. 아내 메리와 딸 브리나와 함께.

천진 경공업대학 거쳐 미국유학

이때 인민일보 사설이 새 교육개혁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노동자, 농민, 군인 중에서만 대입생을 선발하는 제도를 폐지하고 누구나 응시할 수 있는 ‘국가대학입학시험’을 실시한다는 요지였다.
전국적으로 무려 550만명이 응시할 이 국가시험을 통해 대입생 2만 8천명을 뽑는다니 19대 1의 바늘구멍이다. 션판이 응시한 후 2주가 지났을 때 동풍비항공창 정문에 ‘행운의 11명’ 명단이 게시됐다. 최고 점수가 션판이었다.
꿈에 그리던 란저우대 외국어 학부에 입학했다. 중국 핵개발 프로그램 중심지인 이곳에 미국인으로 최초인 재클린 부부가 취업허가를 받았다. 션판이 그와 공동으로 영어 번역작업을 하고 영화구경도 다녔다.

여름방학 때 베이징 집에 갔다가 비밀경찰에게 끌려가 3일간 심문을 받았다. 재클린의 간첩활동을 도와준 것이 아니냐는 혐의였다. 1979년, 주은래 전 수상 추모행사로부터 ‘베이징의 봄’이 시작되어 2000km나 떨어진 란저우에도 자유화 물결이 일어났다.
공산당 비서가 이끄는 공식 선거위원회를 상대로 학생선거위원회가 승리하는 자유화 바람이 잠시 일어났지만 곧 학생회 활동이 불법으로 금지되고 말았다.

이듬해 션판이 차석으로 대학을 졸업, 배치위원회 심사 절차를 거쳐 천진의 경공업대학 강사로 배치됐다. 1982년 8월 션판이 대학 인사팀을 찾아가니 60km나 떨어진 탕구 화학학부 강사로 임명됐다고 통보했다. 탕구에는 수질악화로 견딜 수가 없어 6개월의 투쟁 끝에 겨우 천진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대학 봉직 1년 6개월이 지나면 해외유학을 신청할 자격이 생긴다. 이때부터 ‘여권발급 전투’, 미국 영사관 ‘비자발급 작전’ 등 숱한 고비를 거쳐 1984년 11월 보잉 747 편으로 미국유학을 떠났으니 이는 곧 ‘위대한 지도자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뜻했다.

미국에서는 1986년 네브라스카 링컨대학 석사, 1992년 마켓대학 박사, 로체스터 커뮤니티 기술대학 영어학과 교수가 됐다.
션판은 혁명가의 3대 DNA를 타고나 ‘마오쩌둥의 아이들’에서 혁명농민으로 하방되어 산촌에서 4년, 제트기 엔진 공장서 6년, 대학에서 4년, 탕구와 천진에서 2년을 거쳐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한 후 부모와 마오쩌둥을 배신하며 ‘잘못 태어난 마오쩌둥의 아이들’을 집필한 것이다. 2004.1 황소자리 출판사, 436페이지.

배병휴 [이코노미톡뉴스 회장]  econotalki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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