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한필순의 ‘ 후세에 남기고 싶은… ’ 절규
원전기술 자립은 국가생존, 번영의 길

‘촛불혁명’이란 구호 아래 문재인 정부의 독선·독주 행보가 거의 기고만장으로 비친다. 1960년대 중국대륙을 극도의 혼란으로 몰아넣은 홍위병(紅衛兵)의 문화대혁명 광란을 연상케 한다. 세상 무서울 것 없다던 홍위병들에 의한 방화와 파괴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죽음 이후 세상을 다시 뒤집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똑똑히 알고 있는 일이다.

▲ ‘원전 제로화’ 를 선언한 문재인 정부. 사진은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 현장사진(6월 19일). <사진@청와대>
천하무적 개선장군형 독선·독주

[배병휴 회장 @이코노미톡뉴스] ‘탈원전’은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다. 그렇지만 탈원전 정책시행은 법과 제도에 의한 절차를 거쳐 가며 국가이익과 국민여론을 고루 살펴볼 것으로 믿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친환경’, ‘친노동’ 색깔의 문 정부 공약의 상당수가 이념적 좌편향 일색이라 보수 우파 정권의 정책들을 아예 청산 대상의 ‘적폐’로 규정한 탓일까.

문 대통령은 한창 공사 중인 고리 5·6호기의 공사를 일시 중단시키고 에너지 전문가를 완전히 배제한 비전문가 집단에 의한 ‘공론화위원회’에 원전의 운명을 맡기겠다고 발표했다. 이보다 앞서 석탄화력 노후 발전소의 가동을 중지시키고 국내 원전 1호인 고리 1호기의 영구 정지를 결단하고 “수명연장으로 가동 중인 월성 1호기도 중단할 수 있다”고도 선언했다.

문 대통령의 결단과 선언들이 어떤 법적 절차를 거친 것이 아니라 속전속결식 촛불혁명 완수를 다짐하는 ‘업무지시형’으로 발표됐다.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에 좌파적 이념이 가미된 듯 “신규 원전 계획 몽땅 백지화”, “수명 종료된 원전의 수명 연장은 더 이상 없다”고도 강력히 밝혔다.
비단 원전 분야뿐만 아니라 최저임금 시급(時給) 1만원을 향한 고속인상작업, 부자증세(富者增稅)작업 등을 보면 문 대통령의 거침없는 행보는 거의 천하무적(天下無敵) 개선장군 위용 그대로이다.
행여 좌파이념 편향 촛불혁명 위세가 이대로 진행된다면 자유민주 대한민국의 운명이 어찌 되겠느냐는 우려마저 생긴다.

문 대통령은 탄핵으로 보수정권을 무너뜨려 5년 단임 ‘촛불권력’으로 집권했는데도 마치 보수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 장기집권을 약속 받은 듯 안하무인(眼下無人)격이니 우리네 나이 든 세대는 기가 질리는 형편인 것이다. 아마 문 대통령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믿고 기댈 언덕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도 만약 문 정권에 대한 국민 지지율이 뚝 떨어져 차기정권 재창출에 실패할 경우 지금껏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업무지시형 공약이행 작전들이 새로운 ‘촛불적폐’로 지목되어 청산의 대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부울경시민행동 회원들이 신고리 5.6호기 원자력발전소 건설 중단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부울경시민행동>
원자력연구의 열정, 집념, 분노까지

고리 5·6호기 건설이 중단된 채 원자력 전문가들은 할 말이 없다. 청와대와 정부는 물론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도 전문가들의 의견을 묻지 않으니 자발적으로 나서서 의견을 개진할 기회가 없다. 그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 대법관을 지낸 진보성향의 김지형(59) 위원장과 젊은 학자들로 구성된 9인 위원회의 공론결과를 지켜봐야 할 입장이니 참으로 딱한 처지다.

공론화위원회가 법적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건설 중인 원전의 운명을 좌우할 권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은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을 모두가 따라야 한다”고 했지만 결코 법적 효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평생 원자력기술자립을 위해 헌신했던 고 한필순(韓弼淳) 원자력공학박사의 우국충정이 간절하게 생각난다. 고인은 평남 강서 태생으로 공산당의 학정에 못 살겠다고 남하하여 공군사관학교를 나와 복무하다가 원자력공학박사가 되어 한국원자력연구소장 등을 역임한 후 임종시까지 원전기술자립을 위해 헌신했다.

▲ 한국원자력연구소 명예고문 고 한필순박사

고인은 지난 2014년 8월부터 월간 경제풍월에 ‘후세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하다가 2015년 1월 25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별세하고 말았다. 생전의 한 박사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죽을 각오로…’ 후세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을 쓰고 있노라고 강조했다. 실제 글 속에는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우국의 열정과 집념, 분노, 사명감이 넘쳐났다. 한마디로 고인은 ‘우국지사형’ 원자력 연구가이자 원전정책 전문가로 종신했다.

고인은 원자력기술자립 관련 한·미간의 이해충돌, 국내 정책당국과의 논쟁, 관계전문가들 내부의 이해논쟁까지 가감 없이 기술하겠다는 취지로 ‘피를 토하는 심정’, ‘죽을 각오’ 등을 말한 것이다. 고인은 급서하기 하루 전인 1월 24일 토요일 하오 4시경, 경제풍월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새삼 “연내에 탈고하여 출판기념회를 대대적으로 갖고 싶다”고 했다. 이는 처음 ‘후세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집필하면서 경제풍월과 약속하고 다짐했던 일이었다. 그런데도 특별한 별도의 계기도 없이 출판기념회 소망을 말하고 바로 다음날 부음을 듣게 됐으니 참으로 비통한 일이다.

▲ 고 한필순 박사의 경제풍월 기고 지면
‘죽을 각오’ ‘피를 토하는 심정’

고인은 원자력기술자립과 원전건설은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국책 프로젝트로 인식했다. 고인은 박정희 대통령이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창설한 것이 바로 주한미군 철수론에 대비한 자주국방 의지의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고인은 ADD 창설요원으로 선발되어 용산 미 8군기지에 파견되어 주한미군 철수를 지연시키는 작업의 일환으로 ‘워 게임’(War game) 작업에 참여했었다고 밝혔다.
그 뒤 한 박사는 한국원자력연구소(KAERI) 부소장, 한국핵연료 사장, 원자력연구소장 등을 거치면서 원전의 기술자립을 이룩하는 큰 족적을 남길 수 있었다.

고인은 공직 은퇴 후에도 원자력연구소의 ‘명예 고문’으로 출근하며 일본과 중국정부가 국력증강 차원에서 원전기술자립에 국력을 집중한 배경을 후진들에게 강조하기도 했다.
한 박사는 필생의 과업으로 중수로, 경수로 핵연료를 국산화 하고 열출력 30MW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HANARO) 개발의 주역을 맡기도 했다. 한 박사는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 시절 KEDO(한반도 에너지기구)가 한국형 경수로를 북한에 제공하려는 프로그램 토의에 참가하여 나라의 명운을 걸고 완강히 반대했으니 바로 ‘죽을 고비’를 각오하고,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한 박사 원고에 따르면 일본은 우리나라 원자력연구소와는 비교가 안 되는 600만평 규모의 원자력 연구개발 단지를 조성하여 미국과 겨루는 원자력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원전국력을 강조한 나카소네 히로이키 전 수상이 이를 주도했다. 나카소네는 1945년 8월 6일, 일본제국 해군 중위 시절 함상에서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버섯구름을 지켜보며 “원자력기술을 갖지 못해 결국 나라가 패망하는 구나”라고 한탄했다.
그 뒤 정치에 입문하여 수상이 되어 초대형 국가 프로젝트로 원자력기술자립을 선도했다는 사실이다.

중국정부는 지난 60년간 미국과 대등한 군사력을 배양하기 위해 원자력 부문에 국가역량을 총 동원했다. 중국은 고비사막에 수억 평 규모의 원자력 연구시설을 갖추고 연구인력 40만 명을 투입함으로써 원자력 강국의 반열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정부는 이 같은 원자력 프로젝트를 위해 중국군을 무려 170만 명이나 감축하고 마스터 플랜으로 273기의 원전건설을 계획, 차근차근 추진하고 있다.
한 박사는 이 같은 원고를 보내면서 중국이 한국형 원자로의 설계기술에 군침을 흘리고 전문 요원들의 스카웃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마 지금 대전 국립현충원 지하에 잠들어 있는 한 박사가 건설 중인 고리 5·6호기 건설중지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분노할는지 짐작키 어렵지 않다고 본다.

▲ 1978년 박정희 대통령 대덕연구단지를 시찰해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있다. <사진@국가기록원>
이승만, 박정희의 원전 국가리더십

세계가 대한민국의 원자력기술자립을 높이 평가한다. 세계의 원전시장에서 미국과 일본, 프랑스 등의 기세는 거의 몰락하고 한국이 진취적인 기상으로 중국과 러시아와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럴 때 ‘촛불정권’이 갑자기 탈원전 공약을 명분으로 건설 중인 5·6호기 공사 중지를 명했으니 세계의 원전시장에도 풍파가 미치지 않겠는가.

▲ 한국에너지연구소 대덕분소 현판식에서 한필순 박사(오른쪽) (1981. 2)

프랑스와 일본 등과 경쟁 끝에 UAE 원전 4기, 186억 달러 규모를 수주한 대한민국 원전기술이 국제무대 위에서 사라지면 중국과 러시아가 독점하게 되지 않겠는가. 뿐만 아니라 한국의 원자력기술과 요원들은 어디로 가고 에너지 안보는 누가 무엇으로 지켜줄 것인가.

고 한필순 박사와 같은 우국지사형 원자력 대가가 생존해 있다면 결단코 있을 수 없는 국가적 재앙이라며 일어서지 않을까. 고인은 원자력기술자립을 위한 대한민국 국가 리더십을 무한히 존경, 신뢰한다고 몇 번씩이나 강조했었다.
가난한 신생 대한민국의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예산과 전문인력이 전무한 시절에 미국으로 원자력 장학생을 보내고 미국 이외로는 세계 최초로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 Ⅱ(TRIGA Ⅱ)를 도입했다. 이 연구용 원자로가 한국의 원자력기술자립을 유도해 냈다.

이어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경제건설과 자주국방을 병행하여 고리 1호기를 비롯한 원전건설과 기술자립화 목표를 강력 추진했다. 10.26 후 5공 전두환 대통령은 집권과정의 대미관계상 문제로 ADD를 해체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지만 집권 뒤 대덕연구센터를 방문하여 원전기술자립을 적극 지원했었다고 한 박사가 회고한바 있다.

기술자립 선구자를 추모하는 심정

고 한필순 박사는 1933년 평안남도 강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월남 후 공군사관학교를 졸업, 레이더 정비장교로 복무한 후 서울대 문리학과를 나오고 다시 미국 일리노이대 석사, 캘리포니아대학원 원자력공학박사로 일생동안 원전기술자립에 매진했다.

한 박사 사후 한국원자력연구소(KAERI)가 창립 56주년 기념식을 통해 고인의 공적을 추모하는 행사를 가졌다. 고인이 부소장과 소장을 역임한 KAERI는 연구용 원자로의 이용기술을 비롯하여 미래 원자력시스템까지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또 방사성 폐기물 처리기술, 동위원소 생산, 중성자 도핑기술 등도 수출실적을 쌓았다.

지난 2012년 국내 독자기술로 개발한 소형 스마트 원자로의 사업화 법인으로 ‘SMART POWER’를 개소하여 경제성과 안전성이 뛰어난 차세대 수출용 소형 원전으로 발전시켜 가고 있다. 또 UAE에 수출한 대형 상용원전 4기 외에 요르단과 네덜란드에 연구용 원자로 수출도 기록했다. 여러 모로 국립 대전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우국지사형 원자력기술자립의 선구자를 추모하는 심정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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