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그때

전경련 초대회장 이병철 삼성그릅 창업회장과 5대를 중임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사진=각社, 편집=이톡뉴스)
전경련 초대회장 이병철 삼성그릅 창업회장과 5대를 중임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사진=각社, 편집=이톡뉴스)

[배병휴 회장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이톡뉴스) 1983년.

올해 일흔셋 이병철 회장은 무역, 전자, 금융, 유통 등 21개사 삼성그룹의 성주(城主). 예순여덟 정주영 회장은 조선, 자동차 등 중공업 계열 22개사의 성주로 두 분은 돈 세계의 양대 재상이자 장원급제 급 벼슬가에 비유될 수 있다. 

현대그룹 지난해 매출은 6조 3천억 원, 종업원 수는 13만 명. 삼성그룹은 매출 5조 3천억 원에 종업원 수 10만 3천 명으로 거의 백중세다. 양 회장의 개인종합소득은 정 회장이 연간 16억 6천만 원 벌어 9억 3천만 원 납세한 순위 5위, 이 회장은 4억 8천만 원 벌어 2억 3천만 원 납세한 순위 15위, 이 해의 개인종합소득 제1위는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으로 26억 3천만 원에 달했다.

대체로 이 회장과 정 회장의 돈과 명예의 높이와 양을 비교하면 거의 막상막하로 팽팽한 맞수이자 좋은 라이벌이라 할 수 있다. 재계 감투로 보면 이 회장은 전경련 초대회장을 지낸 전직 제왕,정 회장은 1976년 제13대 전경련 회장을 맡은 이래 4번 연임한 현직 제왕 사이다. 이 회장은 5·16 후 박정희 집권 하에 전경련 회장 1년 후 정치권과는 ‘불가근, 불가원’ 원칙으로 대외 감투를 금기로 여겼다. 단지 경주이씨 종친회장에다 자신의 취향이 듬뿍 실린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장직만을 맡고 있다.

반면에 정 회장은 현대건설 회장으로 전천후 토목인 역할을 다하면서도 대한체육회장 등 정·재계가 추대한 명예 감투 30여 개를 주렁주렁 달고 거의 24시간 꺼지지 않는 엔진처럼 활동한다. 정 회장은 새벽 출근, 야밤 귀가하는 바쁜 일정 중에 온갖 초청행사도 고루 참석하며 경제 기자들과 자주 만났다. 이에 비해 이 회장은 도무지 접촉할 기회가 없어 얼굴 익힌 기자가 몇 명일까 궁금하다. 

정 회장은 입담 좋고 인심 좋은 이웃 아저씨쯤으로 비유된다. 사원들과 씨름도 하고 대중가요도 열창한다. 매년 한 차례씩 강릉 경포대나 울산 해변 사원 수련대회에 참석하여 신입사원들과 씨름해서 이기는 기록도 세웠다. 어느 해 여름 울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종로 계동사옥을 출발하며 운전기사에게 “요즘 인기 유행가가 뭐냐”고 물으니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이에 정 회장이 “그거 틀어봐…”하여 울산 현장까지 갈 때 무려 600여회나 따라 불러 그날 저녁 해변에서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라고 부르자 신사동 그 사람을 능숙하게 불러 인기 폭발했다는 소식을 60이 넘은 정 회장 기사로부터 들었다.

정 회장의 이 같은 면모가 억센 일꾼 상이라면 이 회장은 가냘픈 선비 상으로 회사경영 관련 직접 서류에 결재도 하지 않는 무관(無冠)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것으로 비교된다. 그렇지만 시간관리, 업무결과 확인 등은 너무나 철저하고 꼼꼼하여 한 점 빈틈이 없다는 평이다.

이 회장은 1976년 9월 위암 수술 후 건강관리에 전념하면서 서예 취미, 특기를 살려 삼성경영 관련, ‘인재 제일’ ‘영빈관’ 등 명필급 작품을 많이 남겼다. 골프는 건강관리 차원에서 즐겼지만 꼭 마음에 맞는 파트너를 초청한 형식이었다.
주로 김용완 전경련 명예회장, 김봉재 중소기업중앙회장, 전방 김용주 회장 등 수요회 멤버들과 어울렸다. 또 신현확 전 총리, 민복기 전 대법원장 등을 초청하고 와세다대 선후배 사이인 박태준 포철 창업회장도 자주 만났다. (회고록 '배병휴 경제기자 일생'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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