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만나지도 않고 내 속을 어찌 샅샅이···"

전경련 초대회장 이병철 삼성그릅 창업회장과 5대를 중임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사진=각社, 편집=이톡뉴스)
전경련 초대회장 이병철 삼성그릅 창업회장과 5대를 중임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사진=각社, 편집=이톡뉴스)

[배병휴 회장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e톡뉴스)] 1983년 재계비화가 나온 지 몇 년이 지나 필자가 국장으로 승진하여 바쁘게 뛰고 있을 때 일본에 다녀온 이병철 회장의 특별초청으로 삼성그룹 본관 빌딩 28층에서 단독 면담했다. 당시 컴퓨터로 소문난 소병해 비서실장과 언론담당 홍보 이 전무가 옆에 선 자세로 보좌했다.

먼저 이 회장께서 "도쿄서 홍진기(중앙일보 회장)한테 '재계비화' 저자한테 밥 한 끼 대접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와서 보니 여태 대접이 없었다길래 따로 불렀다"고 말했다.

이 무렵 이 회장은 매년 초엔 '도쿄 구상'을 위해 일본에 머물면서 자신과 관련한 '읽을 만한책'을 우송받아 읽었다. 읽기 벅찬 책은 비서진이 요점만 적어 올린 것을 읽고 파악했노라고 한다.

이날 이 회장은 '재계비화' 속의 '이병철과 정주영의 전면전'을 자세히 읽었다면서 "날 직접 만나지도 않고 어찌 그리 내 속을 샅샅이 살폈느냐"고 지적하면서 "뭘 도와줄 게 있느냐"고 물었다.

1962년 12월 22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이 이병철 삼성물산 사장으로부터 5.16장학금 1천만원을 기증받았다. (사진=국가기록원)
1962년 12월 22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이 이병철 삼성물산 사장으로부터 5.16장학금 1천만원을 기증받았다. (사진=국가기록원)

그래서 기업과 기업인에 관해 책을 쓰고 싶다고 했더니 일본경제신문특집과 자신이 메모한 '기업수명 30년' 자료를 주셨다. 이어 옆에 있는 소병해 실장에게 "배 기자가 연락 오면 그냥 바로 날 만나게 안내해요"라고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얼마 전 별세한 효성그룹 조홍제 회장님 빈소에 조문하시며 화해하시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고 인사했더니 뜻밖에도 "아니요. 화해 아니요"라고 거부했다. 이 회장은 "홍진기가 중앙일보 여론이라며 문상해야 한다고 권유하여 마지못해 갔는데 신문에서 화해로 보도했을 뿐"이라고 극구 해명했다.

이 회장은 구 삼성물산 시절 "동향 출신인 조홍제 회장과 동업했다가 불편하게 헤어지면서 청산 계산이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자세한 내막은 영진약품의 아무개한테 일러줄 테니 직접 취재해 보라고 했다.

또 "유명작가한테 의뢰했던 회고록이 왜 아직도 출간되지 않느냐"고 물으니 손가방을 가져와 직접 쓰고 있는 깨알 같은 기록물을 내보이며 "매일 조금씩 조금씩 직접 쓰고 있노라"고 했다. 이것이 나중에 '호암자전'으로 나왔다. 표제의 글씨도 호암(湖巖)의 친필이다.

이 회장은 어느 작가한테 1~3억 원의 집필료를 지불했다는 시중의 소문에는 응답도 없이 윗주머니에서 조그만 메모집을 꺼내 보이며 온갖 헛소문과 과장된 언론 보도에 관해 해명하기도 했다.

2시간 넘게 면담이 끝난 후 이 회장은 흰 한지로 만든 봉투 하나를 내밀어 "안 받습니다"라고 큰소리로 사양하니 "내 조그만 인정이야"라고 거듭 말씀해 받아왔다. 귀사하여 당시 나병하 사장한테 이 회장과 단독면담 전말을 보고하니 킥킥 웃으면서 "벌써 사내엔 이 회장 돈 봉투로 재벌 됐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말씀하시며 "얼마인지 모르지만 그냥 쓰라"고 했다.

당시 100만 원의 적지 않은 촌지였지만 이런저런 생각 끝에 단 한 푼도 축내지 않고 어느 기관에 기부하면서 "삼성 이 회장님 기부요"라고 말했다. (1983.11.30 동광출판사(대표 최동전)의 재계비화 및 회고록 '배병휴 경제기자 일생'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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