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24일, 서울 한국은행 앞 분수광장에서 열린 '서울 365 - 패션, 역사를 걷다' 패션쇼에서 모델들이 1930년대 모던보이와 신여성 복장부터 1970~1980년대 복고풍 복장까지 대한민국 패션의 변천사를 선보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017년 5월 24일, 서울 한국은행 앞 분수광장에서 열린 '서울 365 - 패션, 역사를 걷다' 패션쇼에서 모델들이 1930년대 모던보이와 신여성 복장부터 1970~1980년대 복고풍 복장까지 대한민국 패션의 변천사를 선보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배병휴 회장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이톡뉴스)] 1980년대부터 자유화 물결이 밀려왔다. 수출이 100억 불을 넘어 섰기에 수입규제 장벽을 헐어야 한다는 논리가 득세했다. 오랫동안 금기시되어온 신기한 수입 물품이 넘쳐났다. 

1982년 통계로 애완용 개 수입 43만 불을 비롯하여 정력제로 소문난 코브라뱀 20만 불, 외산 치약 26만 불, 각종 플라스틱 그릇류 125만 불, 각종 조명기구 364만 불, 음향기기 6천만 불 등이 깜짝 놀랄만한 기록으로 보도됐다. 이 무렵 구라파 출장이나 여행길에 스위스 롤렉스시계 가게를 찾는 한국인이 많아 연간 300만 불을 기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롤렉스 가게에는 한국인 직원을 고용하고 유리창에 ‘한국인 환영’이라는 한국어 안내 표시로 호객했다. 당시 취재기록에 따르면 값비싼 롤렉스는 한국, 일본, 대만 등 동양 3국이 최대의 고객으로 대접받았다. 

5·16 정부의 강력한 밀수단속과 국산애용주의에 따라 거의 대다수 생필품과 기호품들이 국산화되고 품질과 성능도 개선됐지만 외제선호 사상은 뿌리가 깊었다. 이 때문에 외제는 국산보다 최소 2배, 최고 4배까지 비싸게 팔렸다. 외제는 관세와 부가세 등이 원가의 100%에 달한다고 하지만 국산품보다 2~4배나 비싼 것은 터무니없는 장삿속이었다. 

상인들에 따르면 화장품이나 장식용품, 의류 등은 싼값이면 싸구려로 인식되기 때문에 되도록 비싸게 매겨 고급품으로 판매한다고 실토했다. 
때마침 바덴바덴 IOC 총회에서 사라만치 위원장이 88서울올림픽 유치를 선언한 직후라 사방으로 외제 통로가 열렸다. 서울 지하철 공사가 서둘러지고 판자촌이 철거되고 영어가 공급되고 외래 상표가 넘쳐났다. 백화점과 각 패션사들이 경쟁했다.

1987년 10월 26일, 우리나라를 방문중인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이 서울힐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세계패션 흐름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987년 10월 26일, 우리나라를 방문중인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이 서울힐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세계패션 흐름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입센로랑, 피에르가르뎅, 지방시, 죠다쉬, 피노키오 등등 수없이 많은 이색 상표가 직수입되고 국산품에 부착되기도 했다. 외래형 상표가 아니면 행세하기가 쉽지 않아 원산지를 숨기는 ‘무국적’ 상품도 쏟아졌다. 

전자업계가 만든 국산 오디오 제품이 ‘에로이카’, ‘아반테’, ‘스트라우스’, ‘소노라마’, ‘다이나믹스’ 등으로 선전됐다. 비디오 제품도 ‘하이테크’, ‘이코노’, ‘로얄’, ‘내쇼날’, ‘매직스트라이프’ 등으로 경쟁했다. 
이 무렵 국산 자동차도 승차감 좋은 수준까지 발전했지만 상표는 ‘그라나다’, ‘코티나’, ‘시보레’, ‘크라운’, ‘피아트’ 등 외래용어 일색이었다. 온갖 가구와 주방기구 등 전 산업에 걸쳐 외래상표화 추세였다. 

국산 외제, 외제 국산의 압권은 ‘국산 양주’로 베리나인, 블랙스톤 등이 이때 나왔다. 또 소주도 쥬니퍼, 로진스키 등으로 개명됐다. 신사화의 경우 피갈, 다이바, 버팔로, 에스콰이어, 비제노바 등 무국적 국산화로 둔갑했다.(회고록 '배병휴 경제기자 일생'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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