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재벌 성(城), 재벌 병

1987년 2월 13일, 전경련 회장 이취임식에서 정주영 전 회장과 구자경(좌) 신임회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1987년 2월 13일, 전경련 회장 이취임식에서 정주영 전 회장과 구자경(좌) 신임회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배병휴 회장 @이코노미톡뉴스] 1970년대 고도 성장기에 땅 투기 부자가 많이 탄생했다. 그러나 나라에서 권장한 정통성 있는 부자는 수출에서 나와야만 했다. 삼성, 현대, 대우 등의 종합무역상사가 ‘애국형’ 사업 모델로 추앙됐다. 이에 이병철, 정주영 회장 외에 대우 김우중 사장이 창업 세대의 우상이었다.

율산그룹 신선호, 제세그룹 이창우, 명성그룹 김철호 등의 신화 창조와 조기 붕괴 때문에 ‘모래성’이라는 지탄도 따랐다.

재벌 창업주는 제왕(帝王)처럼 추앙되어 접근이 쉽지 않기에 비서실과 종합기획실이 취재대상이었다.

현대그룹 매출액이 7.2조 원으로 국내 톱이던 1982년, 정주영 회장의 광화문 현대빌딩 사무실은 거의 무상출입할 수 있는 특례였다. 사전 연락 없이 방문하면 비서실 아가씨가 “누구 찾으세요”라고 묻는다. 직원 셋 가운데 비서실장이라야 새파란 이병규 차장(현 문화일보 사장)이다. 정주영 회장은 점퍼차림으로 청운동 자택에서 걸어서, 뛰면서 출근한다.

집무실까지 따라 들어가 봤지만 평범한 책상 하나, 소파 한 개에 벽에는 큼직한 세계지도가 걸려 있을 뿐이다. 정 회장의 성품과 행동양식을 그대로 말해 준 것으로 기억한다.

회장실이나 비서실 이야기는 삼성이 화제이다. 이병철 회장, 이건희 부회장 시절 비서실은 100여명의 ‘인재제1’ 군단이었다. 공채 출신의 소병해(41) 실장은 제일제당 경리, 비서실 감사팀장 출신으로 사장급, 그 아래 임원급 4명, 부장급 11명. 홍보는 언론계 출신의 이희준 전무가 맡았다.

럭키금성그룹 구자경 회장실은 김소영(40) 실장 아래 여직원 달랑 1명, 고대 법대 출신으로 금성통신을 거쳐 회장 비서실장(부장)으로 발령 나자 주위에서 ‘물먹었다’고 위로하더라는 것이 럭금그룹의 ‘기업문화’ 단면을 말해준다.

반면에 럭금그룹 기조실은 실장 이헌조(51) 사장 아래 부사장 변규칠(48), 전무 정장호(42) 등 막강한 조직이다. 이헌조 실장은 ㈜럭키 때부터 구자경 회장 수문장 역할을 맡아 그룹경영 관련 발언권이 강하다는 소문이다.

1975년 6월 5일,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와 최종현 선경그룹회장이 접견실에서 담화중인 모습. (사진=국가기록원)
1975년 6월 5일,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와 최종현 선경그룹회장이 접견실에서 담화중인 모습. (사진=국가기록원)

홍보팀은 창업주 제왕 호위무사


수출스타 김우중 회장은 연중 해외출장길이 바빠 ‘비서실 경영’ 모델로 꼽힌다. 실장 박근효(49) 부사장은 박충훈 상공부 장관 비서관으로 시작하여 경제기획원 장관, 무역협회 회장, 국무총리까지 줄곧 비서관으로 중임한 중량감으로 김 회장의 해외출장 기간에도 ‘경영공백’이 없었다.

비서실 외 기조실은 서울공대 출신 홍성부 사장 아래 재무담당 이헌재(39) 상무 체제로 너무나 막강한 구조를 이뤘다. 서울법대를 나온 이상무는 진의종 전 국무총리 맏사위로서 재무부를 거쳐 대우로 영입됐다. 나중 DJ정부 때 기재부 장관으로 대우그룹 등 재계 구조조정을 지휘했다.

선경그룹 최종현 회장 비서실은 고대 상대 출신 정원교(39) 부장이 실장을 맡고 있지만 업무는 거의 단순 의전용, 코오롱 이동찬 회장 비서실장 서승원(40) 부장도 서울상대 출신으로 비슷한 비서역을 맡고 있다. 한국화약 김승연 회장 비서실은 언론인 출신 김영범(42) 부장, 이경재(37) 차장이 역할 분담하고, 쌍용그룹 김석원 회장 비서실은 ‘돌쇠’ 별명의 김태문(47) 실장이 맡고 있다. 김석원 회장은 동생 김석준 사장과 함께 해병대 사병으로 군 복무했다. 비서실장 김태문 실장은 고대를 나와 해병대 소령으로 전역했다. 대농 박용학 회장 비서실장은 언론인 출신 박정웅(42)으로 박영일 부회장과 서울고 동기사이다.

두산그룹은 박두병 회장이 별세한 후 전문경영인 정수창 회장 체제 7년 만에 장남 박용곤 회장이 경영을 맡고 동생 박용성 부사장이 기조실장으로 보좌했다. 동아건설그룹은 장남 최원석 회장 아래 동생 최원영(29)이 비서실장을 맡고 창업주 최준문 회장은 ‘총회장’으로 예우하고 있다.

재벌그룹 홍보실 요원은 제왕격인 오너의 호위무사역을 전담하게 된다. 다만 그룹별 기업문화와 오너의 개성에 따라 호위역의 강도는 크게 차이가 난다.

현대그룹 홍보 백기범(42) 이사는 조선일보 문화부 출신, 차장 이영일은 합동통신 출신. 삼성그룹 홍보 이희준 이사는 연대, TBC 부장 출신, 삼성전자 홍보 손석주(43) 이사는 중앙일보 공채 1기 출신, 삼성물산 정준 홍보부장은 조선일보 경제부 출신, 대우그룹 홍보 김욱한(42) 이사는 동아일보 경제부 출신.

선경그룹 홍보 최시호(45) 이사는 신아일보, 조선일보 편집부 출신, 쌍용그룹 조홍래(44) 부장은 동양통신 외신부 출신, 롯데그룹 정학재 홍보이사는 경향신문, 진로 최학래(40) 홍보이사는 고대 법대, 동아일보 출신, 고려합섬 임연택(43) 홍보부장은 고대 정경대, KBS 출신. (회고록 '배병휴 경제기자 일생'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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