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채를 안 먹는 이유

영화
영화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The Bucket List, 2007)" 스틸컷.

[최영훈 칼럼@이코노미톡뉴스] 7월말은 바빴다. 이 시국에도 여름휴가는 8월 첫 주에 몰렸기에 중요한 일은 그전에 합의를 보거나 결론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쁜 한주를 보낸 금요일 저녁, 감독과 함께 저녁을 먹고 길모퉁이의 한산한 호프집에서 2차를 했다. 주문을 하고 잠시 기다리니 서비스 안주가 나왔다. 황도 조각 몇 개가 담긴 소박한 화채였다. 마지막으로 화채를 먹은 건 십 몇 년 전이다.

2004년부터 십 여 년 간 부산과 대전의 대학을 오가며 강의를 했었다. 그 세월 속에 기억에 남은 제자가 어디 한 둘 이겠냐만, 그 중 정엽이는 깊은 패임을 남겼다. 정엽이는 어느 해 가을학기에 휴학을 끝내고 내 수업을 들어왔다. 학기 내내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더니 종강 무렵 강의가 끝나자 다가왔다. 술을 한잔 사달라고 했다. 부산의 그 대학교는 원칙적으로 기독교인만 입학시키고, 교칙으로 술, 담배를 금하고 있었기에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그 담백한 부탁이 맘에 들어 내가 사는 동네에서 만날 약속을 잡았다. 라멘으로 저녁을 대충 때우고 허름한 호프집을 갔다. 먹고 싶은 안주를 시키라고 했더니 녀석이 과일 화채를 시켰다. 그게 제자하고 단 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신 술이었다. 정엽이는 다음해, 뇌종양이 재발 되서 먼저 갔다. 그 뒤로 화채는 물론이고 황도도 안 먹는다.

호사스러운 '버킷리스트'


시한부 선고를 받은 두 노인이 있다. 카터는 평생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며 가장의 역할을 해온 엔지니어다. 카터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입원한 병상에서, 학창 시절의 철학 교수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보고 싶은 것을 적은 버킷 리스트를 만들라고 했던 일을 떠올린다. 그 병원의 사장인 에드워는 맨 손으로 대기업을 이뤄낸 사업가다. 그 또한 시한부 선고를 받고 같은 병실에 입원했다. 상반 된 두 사람은 티격태격 하다 친해졌고, 그러던 어느 날, 에드워드는 우연히 카터가 버린 버킷리스트를 보게 된다. 에드워드는 버킷리스트를 실천하기엔 아직 늦지 않았다고 카터를 설득하고, 카터는 아내에게 이해를 구한 뒤 버킷리스트 여행을 떠난다. 카터의 버킷 리스트는 장엄한 경치 보기, 남을 도와주기, 눈물 나게 웃기, 셸비 머스탱으로 카레이싱하기 등이다. 에드워드는 여기에 스카이다이빙, 미녀와의 키스, 문신 새기기 등을 추가 했다. 더불어 중국 여행과 만리장성에서 오토바이로 질주하기, 홍콩, 로마 여행과 타지마할, 이집트 피라미드 보기, 세렝게티에서의 사자 사냥 등도 추가 시켰다.

영화 속 버킷리스트는 엄청난 이벤트의 목록이자, 미뤄뒀던 욕망의 쇼 윈도우다. 그 목록은 우리로 하여금 버킷리스트는 호사의 목록이자 마지막 잔치의 기획서여야만 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이유로 영화 속 버킷리스트를 닮은, 나만의 화려한 버킷리스트를 적은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꼭 한번 보고 싶은 풍경을 검색해 적고, 평생 한번 할까 말까한 경험을 하겠다고 다짐하며 꾹꾹 눌러 써가며, 깊은 밤 홀로 컴퓨터 앞에서 그 목록을 만들었을 것이다. 먼 미래를 수놓을 찬란한 불꽃놀이 같은 목록을.

영화
영화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The Bucket List, 2007)" 스틸컷.

절실한 존재


난 누군가의 버킷리스트였다. 돌이켜보니 그렇다. 나와 만날 때, 정엽이는 이미 뇌종양이 재발 된 상태였다. 그 저녁, 한쪽 다리가 살짝 불편해 보여 이유를 물었더니 별일 아닌 것처럼 얘기했었다. 그날 술은 내가 다 마셨다. 애초에 정엽이는 술을 못 마셨다. 대신 화채를 먹으며 쉼 없이 질문하고 답을 들었다. 그 시간이 정엽이의 마지막 강의였다.

학생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엄청난 용기다. 한 학기 본 강사에게 술자리를 청하는 것이, 그것도 술이 금기시 되는 학교를 다니고, 독실한 신앙을 가진 청년이 그런 시도를 하는데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그때는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다. 더불어 난, 그 겨울의 호프집이 둘만을 위한 마지막 강의실이 될 줄도 몰랐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봄이 오면, 동백꽃과 개나리가 교차하는 영도의 조용한 강의실에서 다시 마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질문과 답이 오갔는지 기억이 안 난다. 정엽이에겐 좋은 추억이 됐을까? 요양원에서 보낸 봄날에, 그날의 문답식 강의와 화채가 생각나곤 했을까?

단 한 번도, 누군가의 버킷리스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버킷리스트는 워렌 버핏과의 점심처럼, 타이거 우즈와의 골프 라운딩처럼 평생 한번 만날까 말까 한 사람을 만나거나, 있을까 말까한 경험을 하는 거라 생각했다. 어느 누가 생의 마지막 챕터에 나와 같이 평범한 이를 주인공으로 부르겠는가? 모두들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의 버킷리스트가 될 순 없어도 단 한명의 버킷리스트는 될 수 있다. 죽음을 앞둔 이의 그것이 아니어도 좋다. 입대를 앞둔 청춘에겐 애인과 먹는 마지막 한 끼는 소중할 것이다. 유학이나 이민을 떠나는 친구가 고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하루를 보내고 싶은 사람으로 당신을 선택할지 모른다. 그렇다. 당신도, 나도 누군가에겐 절실한 존재다.

'인연'도, '삶'도 당연하지 않다


페이스북 덕에 옛 제자들의 소식을 접하게 됐다. 한동안 페이스북을 관리 안하는 녀석들은 대체로 좋든 나쁘든 엄청난 일을 겪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 중 한 녀석이 2년 만에 새 글을 올렸다. 대전에서 인연을 맺은 인석이라는 놈인데 문식이, 준회와 어울려 다녔다. 셋 다 꾸밀 줄 모르고, 성격은 둥글어서 졸업할 때까지 연애나 해보겠나, 졸업하고 취업이나 하겠나 싶었지만 다들 어떻게든 연애도 하고 일도 하면서 그럭저럭 살아내고 있다는 소식을 건너 듣곤 했다. 그 중 인석이는 지역에서 제법 잘 나가는 광고대행사에서 과장을 맡고 있다고 했다. 그 바닥에서 나름 인정받는 인재가 됐구나 싶어 뿌듯했었다. 그 녀석이 2년 만에 올린 새 글을 보니 항암 치료를 하지 않으면 두 달 정도라는, 치료가 효과가 있어서 겨울에 눈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바람을 담담히 써 놨다.

오는데 순서 있어도 가는데 순서는 없다지만 미리 갈 날을 짐작하며 사는 건 괴로울 것이다. 그걸 지켜보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테고. 몇 치 건너인 내 맘엔 별일 없을 줄 알았건만 심난함이 가라앉질 않는다. 맘 편히 먹으라는 말, 잘 먹고, 관리 잘하라는 말 같은, 하나마나 한 말 외에는 해줄 말이 생각나지 않아 아무런 댓글도 쓰지 않았다. 먼저 간 제자는 한명으로 족하다. 그 한명만으로도 추억엔 이미 깊은 골이 생겼으니.

영화 속, 두 노인이 이집트 피라미드를 보면서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후세계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집트인들은 저승에 가서 신의 두 가지 질문에 어떤 답을 하는가에 따라 사후에 갈 곳이 정해진다고 한다. 카터가 에드워드에게 그 중 첫 번째 질문, "인생의 행복을 찾았는가?"를 던진다. 행복을 찾았다고 답한다. 카터는 신의 두 번째 질문, "자신의 삶이 다른 이를 기쁘게 했는가”를 이어 던진다. 침묵이 흐른다. 얼마 전 제자이자 후배 하나가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더위와 코로나19를 핑계로 만남을 미뤘다. 나와의 만남이 누군가의 기쁨이라면 만나야 한다. 다음에 보자는 장담은 죽음을 남 일처럼 여기던, 혈기왕성하던 철없을 때나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아직 철이 안 든 모양이다.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만나자 하면 만나야한다. 나도, 당신도 누군가의 버킷리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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