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엔 라이벌 있어 ‘싸우면서 큰다’

1973년 시보레 1700 자동차 모델 신문광고. (사진갈무리=매일경제신문 일간지)
1973년 시보레 1700 자동차 모델 신문광고. (사진갈무리=매일경제신문 일간지)

[배병휴 회장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e톡뉴스)] 5개년 경제개발 계획시대의 신산업으로 각광받은 전자산업도 ‘박통산업’으로 불리었다. 라디오, TV에서부터 반도체산업까지 유난히도 박통이 관심을 보여 가는 곳마다 “대통령께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신…”이라는 말로 전자산업의 육성 계기가 설명되었다.

전자산업 현장에 박통이 수시로 나타나 앞으로의 발전방향에 관해 문의하는 장면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때 금성사(현 LG전자)와 삼성전자가 숙명적인 라이벌로 만나 한국전자산업을 급속 성장시키면서 글로벌 스타가 될 수 있었다.

양사는 흑백TV와 냉장고에서 시작하여 반도체와 컴퓨터까지 한치도 양보 없이 경쟁함으로써 ‘맞수’로 비쳤다. 그러다가 1984년 후발 삼성이 선발 금성을 앞지르기 시작했으니 이변처럼 느껴졌다.

금성사 총매출 1조 3천억 원, 순이익 106억 원, 삼성전자 총매출 1조 3500억 원, 순이익 251억 원으로 실적경쟁이 역전됐다. 금성은 창업 26년, 삼성은 창업 16년 만이었다. 금성의 구인회 창업회장과 삼성의 이병철 회장은 동향 출신이자 사돈간이었지만 사업전선에서는 피나는 적대관계였다. 죽기 살기식 투쟁에는 윤리와 도덕보다 이겨야 하고 살아남는 것이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1967-05-24, 코로나자동차 5000대 생산 및 크라운 제1호 발주 기념. (사진=국가기록원)
1967-05-24, 코로나자동차 5000대 생산 및 크라운 제1호 발주 기념. (사진=국가기록원)

이 무렵 승부세계의 규율을 위해 공정거래법이 엄중하게 작동하여 과당경쟁에 따른 형벌을 매기고 신문에 사과광고도 잦았다. 대기업 사업전선에는 라이벌이 있어 싸우면서 성장한다는 논리가 성립됐다.

TV, 냉장고 시장의 금성, 삼성과 유사한 라이벌전으로 현대차 포니와 스텔라, 대우차 맵시와 로얄살롱이 팽팽했다. 대우가 먼저 포니의 안전도 문제를 제기했다가 스텔라 측의 맞고소로 양측이 모두 벌칙을 받았다. 

삼익악기가 국제품질 최고상 수상을 광고했다가 영창악기로부터 맞고소를 당했지만 결과는 양편이 다 망신이었다. 삼익악기 최고상이나 영창악기의 국제기술대상 광고도 모두 참가상을 과장광고로 속였던 것이다.

식품, 화장품, 주류 시장도 라이벌간 고발과 승자 없는 양패가 이어졌다. 시장경쟁이 격화되면서 오기와 감정 대결이 극심했기 때문이다. 라면 선구자 삼양식품이 ‘왕서방’라면을 개발했다가 고려망국 성씨인 개성왕씨 문중의 고발로 ‘중화우동면’으로 개칭한 것은 일종의 화제였다. 이때 삼양은 7억 원 상당의 ‘왕서방라면’ 판촉물을 준비했다가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이야기다.

신문 스크랩. (사진=이톡뉴스DB)
신문 스크랩. (사진=이톡뉴스DB)

재벌그룹 패망… 비싼 교훈


급속으로 축성된 재벌그룹이 급속으로 망할 수 있다. 바둑에서 말하는 대마불사(大馬不死)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통할 수 없다.

왕자표 고무신으로 일어선 국제그룹이 1985년 2월 21일자로 분해 해체됐다. 1973년 부산에서 상경하여 종합무역상사 활동을 위해 10여개 계열사를 급속, 인수함으로써 재계서열 6~7위까지 올라섰다가 폭삭 망한 꼴이다. 관치(官治)경제 요소가 많아 정권의 비위를 거슬러 망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적극적인 요인은 못된다. 그룹 종업원 3만여 명의 이름으로 주거래 은행에 호소문을 보내기도 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

모기업인 국제상사는 한일합섬, 연합철강은 동국제강, 조광무역은 대우그룹 계열 서우산업으로 팔려갔다.

1976-05-22에 촬영된 신진자동차 공장 전경. (사진=국가기록원)
1976-05-22에 촬영된 신진자동차 공장 전경. (사진=국가기록원)

신진자동차 왕국의 김창원 회장이 망한지 10년이 지나 익명의 진정서로 구속됐으니 무슨 사연일까. 해외 유흥비 등으로 외화 41만 4천 달러를 도피시켰다는 내용이니 중형 혐의다. 고발자가 바로 김 회장의 셋째아들임이 곧 밝혀졌다.

당시 김 회장은 신진자동차그룹이 망한지 10년째이지만 코리아스파이서와 자동차학원만은 소유하고 있었다. 이 무렵 코리아스파이서는 임시 주총을 통해 셋째아들 김준식 사장을 해임하고 이낙선 전 상공부 장관을 새 사장으로 선임했지만 노조의 반발 등으로 취임하지 못했다. 이 와중에 김 회장이 아들의 진정서로 구속되자 아들을 각종 비행과 업무방해 혐의로 맞고소하여 부자가 함께 구속되고 말았다.

이에 언론이 ‘버릇없는 아들’과 ‘철없는 아버지’ 간의 폐륜사건을 대서특필하자 옥중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편지를 띄웠다. “너는 나의 귀여운 자식이다. 아비가 잘못 했으면 네가 용서해라. 네가 잘못 있으면 이 아비가 용서하마. 조상께서 보시고 계신다. 무엇보다 천륜을 지키자”는 요지였다.

곧이어 서울구치소 변호인 접견실에서 부자간 화해모습이 연출되어 “아버지 제가 잘못 했습니다”라고 사죄했다. 언론이 다시 이를 대서특필했음은 물론이다. (배병휴의 저서 '생존경제, 반칙경제'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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