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휴 회장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e톡뉴스)] 5.16 정부의 독려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선두에 나선 기업인들은 한국경제개발 유공 창업 1세대들로 추앙된다. 그들은 나라를 잃은 망국세월을 체험한 서러움을 안고 있었기에 나라가 경제개발 전선으로 내몬 채찍질에 고분고분했다.
우국충정이 바탕이었기에 ‘산업보국’이란 심정으로 애국전사(愛國戰士)의 자부심을 간직하고 있었다고 본다.
출신 성분으로 짚어보면 전통 양반가문에서 토지재산을 바탕으로 가문과 혈통보존을 위해 기업을 창업한 경우가 있고 가난한 집안에서 장남이 가장(家長)역할을 맡고자 억센 기업인으로 나온 경우도 적지 않았다. 어떤 경우이건 창업 1세대에게는 선각자, 개척자, 전투사와 같은 호칭예우가 따를 수 있다.
가령 인촌(仁村)가의 경성방직은 경제독립운동이었고, 유일한 박사의 유한양행은 식민지 백성의 건강론, 경주 최부자 최준은 낮엔 친일, 밤엔 극일의 독립투사형으로 평가된다. 반면에 삼성 이병철 창업자의 정미업은 가문보존형, 화신산업 박흥식 사장은 분명 친일파이지만 종로 상권을 지배한 일인 상인들을 이겨낸 조선 상인의 얼굴이었다.
망국시절 이 땅의 산업과 기업을 일본이 지배했기에 8.15 후 적산(敵産)기업 인수로 창업한 사례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박두병의 OB맥주, 김종희의 한국화약, 최종건의 선경직물, 김용주의 전방, 정재호의 조방 등이 일인 기업의 종업원 근무 등 연고를 고리로 인수, 재창업 성공 사례다.
또 다른 창업이력으로는 북의 김일성 공산당을 피해 38선 넘어와 절치부심으로 기업을 일으킨 경우다.
대한전선그룹을 일으킨 명상인 설경동은 평북 철산 사람으로 강인하고 근면하여 1974년 별세하기까지 손댄 사업마다 번창했다. 그는 함경도 부령군청 말직으로 시작하여 일인 운송업자와 동업으로 돈을 벌어 경기도 여주, 이천 땅에 투자한 사업적 안목을 펼쳐 6.25 후 방직업, 전선사업 등으로 재벌 그룹을 축성했다.
황해도 봉산 사람 최성모 씨도 백절불굴의 월남 상인으로 정미업, 운수업, 양조업을 거쳐 황해도 제1의 미곡상이 됐다가 8.15 월남 후 6.25를 거친 후 제분업, 보험업으로 여의도 63빌딩을 남겼다.
일제의 수탈을 실력으로 이겨낸 개성상인 출신으로는 이정림, 이회림 씨 등을 꼽는다. 영남지역 재맥으로는 경남 진양군의 구인회(LG), 의령군의 이병철(삼성), 함안군의 조홍제(효성), 이밖에 현대 정주영과 대우 김우중은 박정희 경제시대 ‘특례스타’로 꼽는다. (배병휴의 저서 '생존경제, 반칙경제'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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