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오디오 플레이어들

삼성전자 'YP-U2'. (사진=필자 제공)
삼성전자 'YP-U2'. (사진=필자 제공)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가끔 MP3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다. 제품은 삼성의 YP-U2인데 얼추 17년 정도 사용했다. 결혼 전해인지, 그 해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처남이 생일 선물로 사줬다. 이어폰은 작년에 딸이 사줬다. 녹색 이어캡이 포인트인 MARLEY의 Smile Jamaica다. 이 칼럼을 삼성이 좋아할지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정직하게 말하건대 내 MP3 플레이어는 단 한 번도 고장 난 적이 없다. USB 충전식이라 최근 배터리 시간이 좀 짧아진 거 빼놓고는 전혀 불만이 없다. 그러니까 계속 이걸 사용하겠다는 말이다.

사실 내가 가진 음악 듣는 기계 중에서 MP3 플레이어는 어린 축에 속한다. 워크맨이 두 개 있다. 하나는 Sony walkman wm-fx 303으로 1995년에 최초 생산된 모델이다. 스포츠 모델인 Sony walkman wm-fs 397도 아직 갖고 있다. 노란색의 얇은 플라스틱 띠로 된 헤드폰이 인상적인 제품인데 이 헤드폰이 망가진 후 다시 사려고 열심히 찾아다녔었다. 7, 8년 전 후쿠오카의 한 뒷골목 전파사에서 우연히 이 헤드폰을 본 후 다른 오프라인 매장에선 본 적이 없다. 대학원 시절 심층 인터뷰 강의 실습에 쓰라고 어머니가 사주신 마이크로 카세트테이프 전용 녹음기인 Panasonic RN-305도 아직 갖고 있다.

새 것이 대세인 시대


매년 신형 스마트 폰이 쏟아지고 여름이면 신형 에어컨과 냉장고 광고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요즘엔 자기 취향대로 외관과 기능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가전제품 광고도 한창이다. 스마트 폰과 컴퓨터와 통하고 말을 걸면 대꾸도 하는 가전제품이 일상인 시대, 소위 사물 인터넷 시대에 모든 가전제품은 사용자와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난 지금 나와 말할 수 있는 물건보다, 과거의 나에 대해 말해주는 물건을 더 소중히 여기는 편이다. 예전엔 이렇게 나처럼 물건을 애지중지 하는 사람이 흔했다. 물건을 메신저 삼아 대를 이어 이야기를 전달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만년필을 물려받았다는 친구도 있었고 시계나 책상을 물려받는 친구도 종종 있었다. 재봉틀이 필수 혼수품이던 시절 얘기다. 옷을 고쳐 입고 기워 입고 줄여서 물려 입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 얘기다.

요즘도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것이 미덕일까? 그런 시대는 지난 거 같다. 재봉틀 얘기까지 나온 김에 세계 환경오염산업 순위에서 2위와 3위를 오르내리는 패션 산업의 생산물인 옷을 두고 생각해보자. 패스트푸드만큼 그 유행의 순환이 빠르다고 해서 패스트 패션이라 이름 붙은 수많은 SPA 브랜드들이 백화점에 입점해 있고 홈쇼핑 채널에선 계절마다 새 옷을 팔고 새 유행을 소개한다. 유행 따라 새 옷을 사는 건 미덕인 시대이지 옷을 오래 입는 것이 미덕인 시대는 분명 아니다.

(사진=필제 제공)
(사진=필제 제공)

 

옷을 오래 입는 일에 담긴 의미


사실 옷을 오래 입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사이즈를 유지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살이 찌지도 빠지지도 않아야 하고, 신체의 변화가 크게 생길만한 병에도 걸리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까 옷 하나를 오래 입는 사람은 신체 건강하고 그 신체를 관리하고 보호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인식은 옷을 오래 입는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는 더 큰 의미로 이어진다. 내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해서 한 벌의 옷을 오래 입는 것이, 결국 지구의 환경을 보호하고 자원을 아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소위 말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이다.

이렇듯 물건을 오래 쓰고 고쳐 쓰는 의미는 사적인 영역을 넘어 공동체의 환경과 지구 자원의 맥락으로 확장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자동차 십 년 타기도 그렇고, 최근 이슈가 된 소비자의 수리권 논의에도 이런 가능성의 편린이 담겨 있다. 결국 이 가능성에 대해 숙고하다보면 물건을 오래 쓴다는 것이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나 향수어린 사물에 대한 애착이나 집착에 국한 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한정 된 자원을 품고 있는 지구에서 다음 세대가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지구의 자원을 아끼고 환경을 보호하는 일상 속 실천 중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쓰레기를 줍거나 바다와 숲의 생태계를 보호하는 환경 운동에 동참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옷만 오래 입어줘도, 제품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가전제품을 사용하고 자동차를 오래 타주기만 해도, 의도했든 안 했든 환경 운동에 협조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세상의 변덕스런 유행에 개의치 않고 마이 웨이로 사는 사람과 자원의 소중함을 설파하는 환경 운동가는, 뜻 밖에도 한 배를 탄 동지 일 수 있다는 말이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노력


다시 말하건대 하나의 물건을 오래 쓰는 건 이제 개인의 절약 문제를 넘어섰다. 레트로니 뉴트로니하는 트렌드에 취해 노스탤지어를 품고 있는 사물을 향한 집착과 애정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국가적 의미에선 자원의 낭비를 막는 것이고, 전 지구적이고 환경적 의미에선 당연히 제한 된 지구의 자원을 보호하고 아끼는 실천이다. 이와 같은 실천의 맥락에서 1회용 컵 대신 공유 컵의 사용을 권장하는 지자체와 관련 단체의 캠페인에 눈길이 가게 된다. 공유 컵은 쉽게 말해 다회용 컵을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다. 공유 컵은 독일의 대표적인 친환경 도시 프라이부르크에는 이미 2016년에 도입된 정책인데 운영 방법은 간단하다. 음료를 테이크아웃 할 때 공유 컵인 ‘프라이부르크컵’에 담아가고, 컵에 대한 보증금 1유로를 낸다. 커피가 1.5유로라면 컵 보증금 1유로를 더해 2.5유로를 지불하는 것이다. 도시를 걷다가 그 커피를 다 마셨으면 이 컵 사용에 동참한 가까운 다른 카페에 반납하고 그 카페에서 보증금 1유로를 돌려받으면 된다. 이후 그 카페는 컵을 세척한 후, 공유 컵을 원하는 다른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유 컵이 지역 내에서 순환하는 동안 일회용 컵 소비는 줄게 된다. 현재 울산의 UBC방송에선 이 시스템을 실험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송 중이다. 세 번째 시즌을 맞은 <필환경시대의 지구수다>라는 프로그램인데 시즌마다 다양한 환경 이슈를 지역 사회에서 실천하고 있다. 이번 시즌에 선택한 이슈가 다회용 순화시스템이고 그 소재가 바로 이 다회용 컵이다.

겁 없이 솔직히 말하면 환경운동에 동참한다는 명분에 취해 여기저기서 에코백을 받아 수십 장씩 저장해 놓거나, 예쁜 텀블러만 보면 이성을 잃고 사들여 잔뜩 쌓아 놓는 사람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차라리 좋은 가죽으로 만든 가방을 수십 년 쓰거나 첫사랑한테 선물 받은 머그컵을 몇 년 동안 애지중지하며 사용하는 것이 자연과 환경을 보호하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단 내 수중에 들어 온 제품은 옷이든 가전제품이든 가방이든 최소 십년 이상 내 품을 떠나지 못한다. 그 기능이 일정 기간 지나면 소진되도록 만든 제품이나 금방 신제품이 나오는 스마트 폰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제품은 솔직히 언제 샀는지도 모른다. 특히 스마트 폰은 나름의 ‘다회용 순환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아내가 쓰던 스마트 폰을 내가 쓰기도 했고, 최근엔 딸이 쓰고 있다. 지금 사용하는 스마트 폰은 처남이 쓰던 삼성의 노트9을 물려받은 것이다. 처남이 권하며 말하길, 자형이 이제 나이도 드셨고 일도 많아지시는데, 기억력은 떨어지셔서 메모할 일은 점점 많아지시니 A9(딸이 입학할 때 어쩔 수 없이 스마트 폰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서 부득이하게 골랐던)은 치우시고 노트9을 쓰셔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 말은 또 잘 들어서 IT전문가가 말하니 그러가 보다 하고 바꿨다. 메모할 때마다 ‘슥슥삭삭’ 나는 소리가 주는 쾌감이 제법 커서 아주 만족하고 있다. 이 칼럼을 삼성이 좋아할지 싫어할지, 더 자신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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