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진 고독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모임 인원 제한과 영업시간 제한이 풀리면서 ‘이제 모임도 회식도 북적대며 할 수 있고, 친구들도 원 없이 만날 수 있겠구나.’, ‘간만에 막차 시간 넘겨가며 술 마실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들이 있는 모양이다. 필자는 무리로 어울릴 일이 별로 없고 그걸 즐기는 사람도 아니어서 코로나 시국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독한 사람들은 많이 봤다. 페이스북엔 격리 중인 사람들의 고독한 일상이 넘쳐났고, 뉴스에도 고독한 이야기들이 매일 이어졌다. 대면 수업을 강행하는 캠퍼스엔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면 혼자 처지지 않을까 두려워 병을 숨기는 학생이 있었다. 풀고 조이기를 반복하는 영업시간 제한 속에서 매출이 바닥인 와중에 자가 격리 기간 동안 가게 문을 닫기까지 하면 입게 될 손해를 감당할 수 없어서, 사방이 막힌 주방에 숨어 묵묵히 홀로 음식을 만드는 오너 셰프의 사연도 있었다. 대신해 줄 수도, 가늠 되지도 않는 고독이었다.

앞선 칼럼의 소재였던 영화와 소설<나는 전설이다.>의 공통 된 테마는 고독이었다. 텅 빈 도시에서 혼자 살아남은 주인공의 고독을 표현하기 위해 세 작품 모두 많은 공을 들였다. 특히 소설에서는 그 고독을 해소하기 위해 술에 취해 이성을 잃어가는 주인공의 모습과 떠돌이 개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아주 상세히 묘사했다. 고독은 그렇게 이성을 잃을 만큼 취해야 겨우 잊히는 것이고, 떠도는 개라도 붙잡아 키우고 싶을 만큼 다른 존재를 향한 깊은 갈망을 품게 하는 것임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SBS '신발 벗고 돌싱포맨' 방송 화면 갈무리.
SBS '신발 벗고 돌싱포맨' 방송 화면 갈무리.

 

미화 된 고독


미디어는 이런 고독조차 미화(美化)한다. 고독이 품고 있는 고통과 갈망은 모른 척 하며 혼자의 삶을 긍정한다. TV에 나오는 1인 가구는 다들 잘 산다. 혼술, 혼밥에 혼자 영화도 보고 공연도 보러 다닌다. 혼자 여행도 다니고 운동도 한다. 혼자인 다른 이와 만나 여럿이서 밥 먹고 여행도 다닌다. <밥블레스유>에서는 이영자와 쉰이 넘어서도 여전히 싱글인 여자 연예인들이 맛있는 걸 먹으러 어울려 다니며 우정을 나눴다. <미운 우리 새끼>나 <돌싱포맨>에는 내 또래의 미혼, 이혼남들이 철없이 어울려 잘 논다. 1인 가구의 증가는 우울증과 고독사, 경제적 고통 등 깊은 그늘이 존재하는 사회적 현상인데 미디어는 이렇게 혼자 살기의 밝은 면만 연신 보여준다. 1인분의 삶은 언제든지 2인분, 3인분의 삶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는 삶이라고 말한다. 결국 이런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저리 살 수만 있다면 혼자 늙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런 생각 속에 어느 덧 우리의 고독은 잠시 망각된다. 망각은 진통제다. 환각이라는 후유증이 있는 독한, 그러나 단맛 나는 진통제다. 랜선 이모, 랜선 맘, 랜선 집사 따위의 말장난은 이 진통제의 별칭이다. 이 진통제는 고독을 치유할 수 없다. 그러니 더 강한 진통제를 찾을 수밖에 없다. 결국 일본처럼 외로움의 비즈니스가 성장할 수밖에 없다.

고독 비즈니스의 성장


일본에선 고독의 고통을 덜어주는 서비스 시장이 꾸준히 성장했다. 어떤 형태로든 사람을 대여해 주는 서비스도 많고 성을 상품화 한 서비스도 많다. 소프랜드, 패션 헬스, 핑크살롱, 코스튬 플레이를 하는 이미지클럽, 콜걸, 텔레쿠라(전화방 서비스) 등등 우리의 상식과 상상을 뛰어넘는다. 사람을 임대해주는 서비스로는 친구 대행업이 대표적이다. 몇 년 전부터 이 업계의 수요가 다양해져서 같이 밥 먹을 사람, 산책해줄 사람, 심지어 같이 쇼핑 해줄 사람도 빌려준다. 요금도 비싸서 몇 년 전 기사를 보니 한 시간에 5천엔, 우리 돈으로 오만 원이 훌쩍 넘는다.

여기서 더 나아간 서비스가 리얼충 서비스다. 일본에선 SNS 안에서의 관계 맺기가 아닌 현실에서도 관계를 잘 맺으며 잘 살고 있는 사람을 리얼충이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보이고 싶은 사람이 사람을 빌려 그런 상황을 만든 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릴 수 있게 돕는 서비스가 리얼충 서비스다. 예를 들어 생일 때 혼자 있기 싫은 고객이 전화를 한다. “사람들과 생일 파티를 하고 싶어요.”하고 의뢰하면 “주문”한 사람들이 온다. 같이 생일 파티도 하고 사진도 찍는다. 리얼한 삶의 일상, 완성 된 이벤트, 친밀한 한 순간을 흉내 낸다.

우리나라에도 이 같은 사람 대행업이 성행 중이고, 그 시장의 외연이 모바일 영역까지 넓어진지 오래됐다. 만남과 모임 애플리케이션들은 당당히 애플리케이션 마켓의 메뉴 하나를 차지하고 있고, 중고 거래 사이트인 당근마켓에선 같이 고기 먹을 사람도 구할 수 있다.

미디어가 혼자 살이의 멋을 보여주는 동안 이렇게 고독의 비즈니스 또한 지속적으로 성장했다는 건 역설적이게도, 모든 결핍과 아픔이 그러하듯이 고독 또한 한갓 진통제와 상품 따위로는 완전히 해결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역할 대행의 분야가 다양해지고 그 대행이 완벽하더라도 대행은 대행일 뿐이다. 리얼 액션을 표방하는 영화라도 그 액션이 리얼 일수 없는 것처럼 돈으로 산 리얼은 리얼이 아니다. “리얼”하게 연기할 뿐이다. <트루먼쇼>의 연기자들처럼.

'애도일기'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20세기 중엽의 프랑스 평론가. (사진=롤랑 바르트 공식 페이스북)
'애도일기'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20세기 중엽의 프랑스 평론가. (사진=롤랑 바르트 공식 페이스북)

 

1인분의 고독, 한 명의 사람


<애도일기>에서 바르트는 외로움에 대해 “외로움=대화를 나눌 사람이 집에 없다는 것. 몇 시쯤에 돌아오겠노라고, 또는 (전화로) 지금 집에 와 있어요, 라고 말할 사람이 더는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 뒤에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자기만의 고유한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는 없다. 이 슬픔은 절대적 내면성이 완결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현명한 사회들은 슬픔이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서 코드화 했다. 우리의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바르트의 말처럼 시장엔 개별 고독에 조응하는 상품이 없다. 그 고통을 완전히 없애주는 진통제도, 치료제도 없다. 바르트에겐 대체할 수 없는 단 한 사람,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고독이 움텄다. 바르트는 어머니의 죽음, 그 뒤에도 일상을 살아갔다.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고 파티에 초대받고 장을 보고 글을 쓰고 강연을 했다. 그러나 고독은 해결할 수 없었다. 바르트의 고독이 어머니의 불가능한 부활로만 치유 가능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오늘 겪는 이 고독 또한 바르트의 어머니 같은 단 한 사람으로 해결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이코노미톡뉴스DB)
(사진=이코노미톡뉴스DB)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감염병의 사회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지금, 이 봄이 끝나기 전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집합 금지 명령이 끝나서 여럿이 함께 모여 밤새도록 술을 마시면 이 사회의 고독이 해결될까? 고독이 만연하던 인위적인 격리의 시기가 끝나면 우리 모두의 고독도 끝날까? 쉽지 않을 것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환각을 보여주는 강력한 진통제로도, 맡은 바 역할을 완벽히 대행하는 “모르는 사람 A”의 비즈니스적인 행위로도 저 고독은 치유될 수도, 없앨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답은, 한 사람이다. 외로움과 고독을 해결하기 위해선 한 사람으로 충분하다. 어린 시절, 행여 나를 잃어버릴세라 문 밖을 나설 때마다 손을 꼭 잡아주시던 아버지의 손을, 이제는 손자손녀의 손을 잡고 한가로이 거니시는 것이 사는 낙이 된 아버지의 그 거친 손을 모른 척 슬며시 꼭 잡고 동네 한 바퀴를 걷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고독은 치유 될 것이다. 바쁘게 살다보니 잊고 있었던, 캠퍼스 벤치에 앉아 실없는 농담을 하며 흩날리는 벚꽃을 함께 맞던 그 친구와 밥 한 끼를 먹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고독은 치유될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인연을 이어준다는 앱 따위를 깔 필요도 없고, 당근마켓에서 같이 고기 먹을 사람을 구할 필요도 없다. 내 부름에 기꺼이 내게 그 얼굴을 보여줄 단 한 사람, 내 차가운 빈손을 꼭 잡아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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