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 재벌경영의 유죄부문 어쩌나

(1998.8.28) 민주노총과 산하 민주금융연맹 소속 조합원들이 여의도 금감위 앞에서 금감위의 5개 퇴출은행 노동자에 대한 일방적인 해고통보에 항의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998.8.28) 민주노총과 산하 민주금융연맹 소속 조합원들이 여의도 금감위 앞에서 금감위의 5개 퇴출은행 노동자에 대한 일방적인 해고통보에 항의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배병휴 회장 @이코노미톡뉴스] (1990년대) 재벌가의 심기가 불편한 계절이다. 정부와 언론이 못살게 군다고 생각한다. 경제개혁을 강조하면서 “재벌만 유죄냐”라고 항변하고 싶은 것이다. 재벌경영은 땅문제와 금융조달 관련 비난을 많이 받았다. 그들은 “기업 경영하자면 부동산과 은행돈이 첫째 조건인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면 경영을 어찌하라는 말이냐”는 항변이 나올 수밖에 없다.

비업무용 부동산 처분과 비주력 업종에 대한 금융 제한에 대한 불만을 말한다. 이는 기업활동에 불편을 주겠지만 제도적으로 잘못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규제가 너무 심하다고 지적할 수는 있지만 재벌이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는 것이 죄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재벌경영의 윤리 수준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요구이다. 오늘의 유명 재벌경영이 수출 전선이나 중화학공업 건설과정에 험난한 고비를 겪고 피나는 과정을 겪었다. 그러나 개발과정의 노고가 아무리 심하다 해도 사회적 불신을 받게 되면 유죄일 수밖에 없다. 국민과 국가가 싫다고 거부하면 기업이 승복하는 것이 도리다. 기업이 국민과 사회를 떠나 존재할 수 있느냐고 반문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돈 많이 번 기업인들에게 금욕생활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재벌 오너도 사생활이 있고 개인 기호와 취미가 따로 있다. 이를 국가와 사회가 막을 권리는 전혀 없는 것이다.

은행 퇴출 작업이 시작됐다는 소문이 온갖 무서운 풍문을 몰고 왔다. 관치금융 아래 은행경영의 윤리와 도덕이 빠져나가고 직업윤리가 붕괴했다는 지적이다. 경영부실 판정 자료가 공개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그토록 내부가 부실했는데도 무사할 줄 알고 태평했다는 말인가.

부실퇴출 비용으로 무려 17조 5천억 원을 물어야 할 판국에 서둘러 퇴직금 중간정산과 위로금까지 먼저 챙긴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은행퇴출에 따른 비용과 고통을 고루 분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주주의 주식은 소각되고 경영진은 문책되고 근로자도 해고 충격받고 예금주마저 원금까지 손실 각오를 해야 한다. 권리행사 한번 못한 소액주주 86만 명이 수백억 원을 그냥 날려버렸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관치 부문에 대한 인책 추궁은 남아 있다고 본다.

따지고 보면 각자 절규하고 규탄할 수 있는 처지다. 그 중에서도 일터에서 쫓겨나는 고통이 가장 심하지 않겠는가. 

(1996-01-31) 김영삼 대통령이 30대 재벌총수와 만찬중인 모습. (사진=국가기록원)
(1996-01-31) 김영삼 대통령이 30대 재벌총수와 만찬중인 모습. (사진=국가기록원)

졸부네 행태 꼴 보기 싫다는 여론


경제발전 성과를 몰래 누리는 “졸부(猝富)들 행태가 꼴 보기 싫다”는 여론이 끓고 있다. 졸부네 사모님과 고관대작들의 ‘정경부인네’들의 고소비, 과소비 행태를 지적하는 말이다. 

대체로 부도덕, 탈세 소득으로 권위와 취향을 뽐내는 이들이 우리 사회를 못살게 굴고 있는 특수계층이다. 망국병이라는 병역 비리와 입시부정도 이들 가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중에서 관측하기로는 졸부들의 ‘난잡 행태’가 제물에 생겨난 것이 결코 아니다. 권력의 부패와 나태로부터 불법, 편법이 자생하고 변칙 상속, 증여로 ‘세금 없는 돈’이 멋대로 행세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이렇게 보면 최고 권력이 엄정한 자기관리 시범을 보이면 아래 권력과 공직자 세계의 엄중기강이 확립되어 졸부들도 일제히 항복하지 않을 수 없으니 금방 세상이 달라지지 않겠는가. 졸부들의 지하경제가 엄정한 권력의 햇볕 아래에서는 꼼짝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수많은 사람들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게 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법의 보호를 받는 정상적인 기업마저 구조조정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비상상황이다. 구조조정도 시장원리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져야만 성공한다. 그러나 무책임한 차입경영, 문어발 경영에 자율적인 구조조정이 안 되기에 정부에 의한 ‘기업 살생부’가 나왔다. 정부가 기업을 죽이고 살리는 명부를 작성하는 고단위 처방을 도입한다니 너무 끔찍하지 않는가.

옛 왕조시대 ‘왕자의 난’ 때 살생부를 만들어 무차별 살육전으로 왕권을 탈취한 반란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기업 살생부가 이런 방식으로 집행될 수는 없는 법이다. 비록 부실경영의 책임은 무겁지만 부실퇴출과 책임규명 및 문책과정도 적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재벌 오너의 퇴출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실정리와 오너 지위 박탈도 관치시대 국민혈세 손실에 대한 문책 성격이기 때문이다. 국민 여론이나 반기업 정서상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살아남는다”는 망측한 논리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鄭周永(정주영) 명예회장,김정일 당총비서 만나. (1998.10.31) 북한을 방문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30
鄭周永(정주영) 명예회장,김정일 당총비서 만나. (1998.10.31) 북한을 방문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30

이처럼 엄중한 분위기 속에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식 대북사업이 큰 뉴스로 나왔다. 정 회장이 김정일 총비서를 만나 남북경협 사업에 관해 일괄보증을 받았다는 요지다. 대북사업이란 오로지 김정일의 윤허 사업이다. 말은 남북경협이나 현대그룹 신용으로 북에 대규모 공장 개발하고 석유개발사업 등 모든 사업을 현대그룹으로 단일화하기로 허락받았다는 뜻이다.

현대가 사전에 우리 정부와 협의하고 허가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정 회장의 배짱으로 사전협의 없이 김정일에게 과감하게 제안하고 허락 받았다고 발표했을 가능성이 높다. 솔직히 대북사업이란 현대그룹 전용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 지금까지의 사실 아닌가. 

배병휴의 경제풍월 정치벌 사회벌 (1999.7 좋은이웃집 발행)
배병휴의 경제풍월 정치벌 사회벌 (1999.7 좋은이웃집 발행)

다만 정 회장의 거침없는 대북사업 행보가 과속, 과욕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이 없지 않다. 북의 1인 독재체제에 우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어떤 안전보장도 없이 대규모 투자하여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 배병휴의 경제풍월 정치벌 사회벌 (1999.7 좋은이웃집 발행)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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