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만한 프로그래머가 없다"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최근, 모 대형 은행의 모바일 플랫폼 구축 작업에 프리랜서 개발자로 작업하고 있는 처남에게 프로그래머의 인력 현황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처남은 거의 경력 10년이 넘는 베테랑 프로그래머이자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유명 시중 은행의 모바일 플랫폼 구축 작업에 참여했었다.

처남은 이번 프로젝트를 하기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었다. 이후 애초 계획은 6개월 정도 쉬면서 못했던 운동도 해가며 건강을 추스를 계획이었다. 그러나 발주처인 금융사에서 하청 회사인 처남의 전 직장에 일을 주면서 처남을 콕 집어 책임자 역할을 맡기라고 했다고 한다. 부탁이 아닌 계약 조건이었던 모양이다. 전 직장의 입장에선 난감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결국 평소 연봉보다 더 많이 주고, 현장인 서울의 숙소와 식비·교통비 등을 모두 부담하는 조건으로 처남을 프리랜서로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etalk news)
(사진=etalk news)

처남 말을 들어보니 이런 “웃픈” 사태의 배경에는 그 업계만의 사정이 있었다. 일단 쓸만한 프로그래머가 흔치 않다고 한다. 요즘 언론 기사를 보면 코딩을 배우기만 하면 IT업계에서 모셔가는 것 같고, 한 경제학 교수도 공교육에서 이런 걸 안 가르쳐서 미래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개탄스러워했었다. 그러나 처남과 같은 전문가 말을 들어보면 코딩을 배웠다고 당장 쓸모 있는 프로그래머가 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실제로 게임 회사 크래프톤의 장병규 의장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었다. 2020년 10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에는 공장노동자에 가까운 에스아이(SI) 개발자는 많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꾸준히 성장하며 깊이가 축적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라는 토로의 글을 남겼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일부 프로그래머들의 경우엔 도덕적 해이가 생각보다 심해서 프로젝트의 완전무결한 완수보다 그저 계약 기간을 채우는 데 급급하다고 한다. 물론 관련 업계에서도 이들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여 인원을 뽑을 때마다 참고하는 등, 나름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이들 또한 한 프로젝트에 끼친 피해로 인해 자신의 악명이 업계에 퍼지게 되면 몇 개월 잠수하거나 지방의 프로젝트에 몇 개월 참여한 뒤, 잠잠해지면 다시 업계에 등장하는 식으로 대처한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대기업 프로젝트를 수주한 기업에서는 업계에서 평판이 좋고 실력이 검증된 십 년 차 이상의 최고 등급 베테랑 개발자에게 일을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우리 업계도 비슷해서 처남의 이야기가 남 얘기 같지 않았다.

정진(精進)의 시간이 가진 무게


앞선 칼럼에서 말했듯이 멀리 가기 위해선 기초반에서 기본기를 닦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뒤엔 아주 먼 길과 긴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코딩처럼 기초를 터득하는 것과 그 기술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고, 독보적이고 탁월한 베테랑이 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얼마 전 방송에서 축구 선수 황희찬이 보여줬듯이 세계 최고 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도 트레이너를 고용하여 따로 개별 훈련한다. 부상 없이 오래 선수 생활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더 탁월한 선수가 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우리의 인생과 생업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울버햄프턴 황희찬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울버햄프턴 황희찬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세상에 거저 되는 것이 없듯이 어느 위치, 어느 경지에 오른 사람에겐 그 나름의 애써온 세월이 있다. 다만 우리가 오늘의 베테랑이 다다른 경지와 오른 위치만 볼 수 있기에, 그 인고(忍苦)의 시간을 헤아리지 못할 뿐이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주어진 업(業)을 더 잘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더 나아가 살아남기 위해선 자신을 더 먼 미래를 향해 내몰 수밖에 없다. 이 미래를 향한 쉼 없는 도전을 표현하는 말인 정진(精進)은 불교 용어로, 근(勤)이라고도 한다. 한자 근(勤)은 근면(勤勉)이라는 단어에도 쓰이는데, 불교 사전을 보면 근(勤)하기 위해선 용한(勇悍)이 필요한데 겉으론 날래고 사나운 마음을 말하나 속뜻엔 결단과 인내가 담겨 있다고 한다. 결국 정진이란 부지런한 수행을 말하고, 그 수행을 위해선 용감한 마음으로 결단하여 인내를 갖고 나아가는 마음이자 실천일 것이다.

용한(勇悍)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들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에선 이러한 “용한” 마음을 상실한 인간들이 신선이 된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걸 그만둔 인류는, 말이 좋아 신선이지,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지속적인 쾌락에 길들여 그 가상 세계의 삶에 만족한다. 결국 “번거로운 번식의 충동과 압력에서 해방되어 일종의 환각 상태, 가상 세계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 결과 인간은 멸종된다. 이 글을 쓰면서 이 결말을 다시 떠올리자 용한 마음을 갖고 정진하는 것을 멈춘 청년들이 떠올랐다. 일본의 사토리(달관) 세대와 대퇴사 시대의 안티워크 운동에 동참한 일부 젊은이들, 그들을 닮은 젊은 후배 몇몇도 떠올랐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 좋게 말하면 안분지족(安分知足)하며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삶, 오늘의 즐거움과 현실에 만족하는 삶을 사는 이들의 모습이 소설 속 인류와 겹쳤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감상적인 위로도 맘에 안 들지만, 힐링이나 “소확행”과 같은 단어 뒤에 숨어 인생의 여정에 놓인 고통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외면하는 것 또한 불편하다. 숲에 숨어 사는 자연인도, 속세와 상관없이 사는 종교인도 세월의 흐름 속에 육체와 정신이 쇠잔해지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더 나아가 죽음 또한 피할 수 없다.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어떤 형태로든 태어난 이상 사는 길밖에 없다. 그것이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인간이 처한 부조리일 것이다. 오늘에 만족하여 이 상태를 유지하고 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고, 더 나은 나를 향하여 정진한다고 해도 더 나은 나를 만나리란 보장도 없다. 머무름도, 나아감도 주체의 현재와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이것 또한 인간이 처한 부조리다. 이 모든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앞으로 나아갔다. 더 나은 나를 만나기 위해 애쓰며 살았다. 이러한 삶에 대한 의지가 역사를 만들고 진보를 만든 동력 중 하나일 것이다.

미래, '멸종' 아니면 '해답'


직원이 3천 명이나 되는 아내의 회사도, 계속 새로운 프로젝트가 이어지는 처남의 IT 세계도, 쉰 줄에 접어든 우리 팀이 하기엔 애매한 일은 후배에게 넘겨주고 싶지만 그런 후배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은 필자의 지역 업계도 발전과 배움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려는 청년이 없어서 애를 먹고 있다. 새로운 걸 시키면 모르겠다는 대답만 할 뿐, 배워서 해보겠다는 열의를 가진 젊은 인재 찾기가 어렵다는 말을 흔하게 듣는다.

유시민 선생은 지난 대선을 엿새 앞두고 열린 100분 토론에서 청년들에게 기성세대에게 어떻게 해야 되는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답을 구하지 말라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해, 어차피 (기성세대) 그들도 그 답을 모르고, 언제나 매 세대는 그전 세대보다 훌륭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덧붙여 청년 세대가 더 똑똑하고, 더 많이 배우고, 더 진취적이고, 더 창의성이 강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러니 자기들(청년들)끼리 답을 찾고 그 찾은 답을 갖고 부딪치고 (기성세대에게) 대들어야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2005년도, 한 대담에선 “(청년)취업은 각자가 책임질 일이고 특정 학생을 취직시키는 일은 국가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도 말했었다. 청년의 진취적 기상을 일관되게 믿어 의심치 않았던 유시민 선생의 2022년 봄에 했던 희망찬 단언이 맞길 바란다.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나을 것이다. 분명 더 나을 것이다. 김영하 작가가 그린 인류의 멸종을 피할 뿐만 아니라 더 나은 미래로 가는 해답을 찾을 것이다. 정진(精進)의 참 의미를 아는 청년이 아직 남아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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