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이야기

중국 하얼빈 시베리안 호랑이 공원에 있는 꿩을 잡아 먹고있는 아무르 호랑이(Amur the Tiger). (사진=연합뉴스)
중국 하얼빈 시베리안 호랑이 공원에 있는 꿩을 잡아 먹고있는 아무르 호랑이(Amur the Tiger). (사진=연합뉴스)

[강규형(명지대 교수, 전 애견연맹 자문위원) 칼럼@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이톡뉴스)] 호랑이. 이 고양이과 초대형 맹수는 한국인과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아무르 표범에서 얘기했듯이 세상에 한국호랑이라는 종은 없다. 한국을 제외한 세상의 어떤 호랑이 전문 서적에서도 한국호랑이라는 종은 없다. 러시아의 시베리아나 중국의 만주에서 아무르 호랑이를 데려와 한국호랑이라고 둔갑시키는 촌스러운 짓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이제는 다른 지역에서 시베리아 호랑이를 데려다가 ‘백두산 호랑이’로 둔갑시키는 낯 뜨거운 ‘국뽕’짓조차 서슴없이 하고 있다. 한국 전역에 엄청 많이 살던 호랑이는 아무르(시베리아) 호랑이가 한반도로 서식지를 넓힌 것뿐이다.

한반도는 호랑이의 영토였다. 거기 사는 사람들은 호랑이의 사료로 사육되는 대상이라는 비유가 있을 정도였다. 하도 호랑이한테 잡혀 먹히는 사람들이 많아 전염병과 함께 제일 두려운 대상이었다. 호환(虎患)마마. 10명 중 3명이 호랑이에게 죽었다는 무시무시한 통계를 제시하는 연구도 있다(조유민, ‘모멸의 조선사’ (글항아리)). 하여튼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그리고 가축들이 호랑이 밥이 됐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호랑이는 한번 사람 맛을 보면 다른 어려운 사냥감 대신 손쉬운 사람을 선호하게 된다. 맛도 더 좋았을 듯하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이렇게 기록했다. “조선은 정말 호랑이가 많은 나라이다. … 조선에서는 1년의 반은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 문상 다니고, 반은 호랑이 사냥을 다닌다는 중국속담이 있을 정도다.”

일제시대 때 함경도에 러시아 내전을 피해 일단의 백계 러시아인들이 정착했다. 함흥과 청진이 주 활동지였는데 주로 귀족들이었다. 이들은 사냥의 달인들로서 고성능 장총으로 주민들을 위해 호랑이를 잡아줘 신적 존재로 대우를 받았다. 제일 유명한 가문은 사냥 역사에 기록되는 얀코프스키(Yankovsky, 정식 표기법에 따르면 Iankovskii) 가문이다. 시베리아에서는 바이코프라는 전설적 호랑이 사냥꾼이 존재했다.

얀코프스키가 한반도에서 표범 사냥한 사진.(1936년). (사진출처=공식 얀코프스키 홈페이지)
얀코프스키가 한반도에서 표범 사냥한 사진.(1936년). (사진출처=공식 얀코프스키 홈페이지)

 

이 폴란드계 러시아 귀족 가문은 청진을 주 무대로 세계적인 리조트를 세우고 호랑이와 표범 잡이를 했다. 특히 함경도 주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한 식인 호랑이 일가를 다 사살해서 주민들을 안심시켰다. 그 와중에 아버지 얀코프스키는 호랑이 가족의 리더인 엄마 호랑이에게 거의 죽을 뻔한 부상을 입고 가까스로 살아났다.

이들이 세운 리조트들에는 전 세계에서 부자들이 휴양을 위해 왔는데 역시 한국과 불가분의 관계인 브린너(브린네르) 집안도 그랬다. 블라디보스토크 태생인 청년 율 브리너도 그 리조트를 찾은 게스트 중 하나였다. 나중에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의 대스타가 된 그 대머리 배우 율 브리너. 블라디보스토크에는 그의 생가가 있고 뮤지컬 ‘왕과 나’의 몽쿠트 왕으로 분장한 그의 동상이 생가 앞에 세워져 있다.

얀코프스키 일가는 대부분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에게 잡혀 시베리아 유형소로 끌려가든가 죽임을 당했다. 두어 명 정도가 탈출에 성공해 그 자손들이 현재는 호주에 살고 있다. 책이나 영화의 주제로도 좋을 만큼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아무르 호랑이는 일반적으로 얘기해서 호랑이 중 체구가 가장 크다. 엄청난 크기와 파워로 자기 지역에서는 먹이사슬의 최상위를 점유했다. 삼림이 황폐화하면서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밀렵으로 한반도의 호랑이는 남한에서는 멸종으로 판단되지만 아직도 남아 있다는 주장도 있다.

북한에서는 극소수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르 호랑이들에게는 국경이 없으므로 러시아와 만주지역의 호랑이들이 한반도 북부로 왔다 갔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한에서는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잡힌 호랑이들을 마지막으로 사람의 눈에서 사라졌다.

표범은 북한은 물론 남에서도 아직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한다. 남한에서도 발자국과 배설물이 발견되고 있다. 맹수가 노루, 고라니 등을 사냥해 먹은 증거들이 있고 발자국이 있는데 호랑이라고 하기에는 작고 표범의 발자국 크기 정도다. 살쾡이 발자국보다는 훨씬 크다.

아무르 호랑이를 원 없이 보려면 하얼빈(하르빈)에 있는 호랑이 보호소에 가보시라. 평생 볼 호랑이 숫자의 몇십 배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일반 닭을 풀지 말고 꼭 산닭을 풀어달라고 하시라. 일반 닭은 너무 빨리 호랑이가 잡는데 산닭은 그리 녹녹하게 잡히지 않는다.

호랑이는 의외로 아종이 많다. 호랑이는 종류가 꽤 많고 멸종된 종도 많다. 카스피 호랑이라고 카스피해 지역에 사는, 지금은 멸종된 호랑이를 들어본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많고 보편적인 호랑이는 인도 등에 서식하는 화려한 무늬를 가지고 있는 벵골(벵갈)호랑이(Bengal Tiger, 인도 호랑이)이다. 벵골호랑이는 더운 지역에 살고 무늬가 화려하고 몸도 크다. 가장 큰 개체는 시베리아 호랑이만큼 크다고 기록돼 있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추운 지역이라 색이 어둡고 화려하지 않다.

백호와 황호.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백호 사파리'에서 백호와 황호인 벵갈호랑이가 영역 다툼을 벌이고 있다(2009년). (사진=연합뉴스)
백호와 황호.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백호 사파리'에서 백호와 황호인 벵갈호랑이가 영역 다툼을 벌이고 있다(2009년). (사진=연합뉴스)

호랑이 중에는 몸의 바탕색이 하얀 백호(白虎)도 있다. 벵골호랑이 중 1951년 인도의 야생에서 잡힌 흰 호랑이가 있었다. 이름을 모한(Mohan)으로 지은 이 백호가 세계 거의 모든 백호의 조상이 됐다. 모한 이전에도 백호는 발견됐지만, 모한은 생포돼서 오늘날 거의 모든 백호의 조상이 됐다.

백호는 야생에서 살기 부적절한 모색을 가지고 있지만, 그 신비함 때문에 수요가 많고, 그 수요를 맞추기 위해 근친교배가 많이 일어나 유전적 문제가 생겨나기도 한다. 체구는 백호가 일반 호랑이보다 더 크다.

그런데 벵갈호랑이에서만 나온다고 생각한 백호가 아무르 호랑이에서도 나온 희귀한 케이스가 보고됐다. 바로 1999년 서울대공원에서였다. 야생에서는 발견된 사례가 없다. 시베리아 호랑이에서 백호가 나올 확률은 20만분의 1이라 한다. 한국 전설의 백호는 상상의 동물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아무르 호랑이에서 백호가 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호랑이의 서식지는 표범보다는 좁지만 사자보다는 훨씬 넓다. 사자는 아프리카 이외에는 인도 등에 소수가 존재한다. 인도사자는 몸도 작고 갈기도 숱이 적다. 참고로 사자와 호랑이 표범은 유전적으로 생각보다 가까워 서로의 사이에서 하이브리드가 드물게 태어난다.

예를 들어 호랑이와 사자 사이에서는 라이거나 타이곤이 태어나는데, 이들은 그 대에 끝나고 다음 세대로 번식이 안 된다. 이중 라이거(숫컷 사자와 암컷 호랑이 사이에서 생기는 하이브리드 종)는 일반 호랑이나 사자보다 크다. 반면 타이곤(숫컷 호랑이와 암컷 사자 사이에서 나오는 종)은 몸집이 작다. 말과 당나귀 사이에서 태어나는 노새와 버새와 비슷한 경우다.

호랑이는 중동부터 극동까지 넓게 서식한다. 일본에는 호랑이와 표범이 없다. 홋카이도에는 있을법한데도 전혀 없다. 그래서 호랑이를 “도라(虎)”라고 부르는 일본인들은 “도라”에 대한 공포와 경외감을 같이 갖고 있었다. “도라 도라 도라(Tora Tora Tora)”는 진주만 습격 시 성공을 알리는 일본군의 암호였다. 동명의 영화도 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카 동물원에 있는 수마트라 호랑이. (사진=연합뉴스)
인도네시아 자카르카 동물원에 있는 수마트라 호랑이. (사진=연합뉴스)

호랑이는 인도지역에 제일 많지만 러시아, 중국과 인도차이나도 주요 서식지다. 인도차이나 쪽에 여러 호랑이의 아종들이 분포하는데 대개는 소형 호랑이들이다. 요즘 들어 주목을 받는 호랑이는 수마트라 호랑이이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 서식하는 소형 호랑이이고 짙은 모색을 가지고 있어 아름답다. 멸종 위기종이고 상대적으로 친근해 보이는 점이 인기의 포인트인 것 같다. 수컷의 몸길이가 대략 215∼255cm, 몸무게 75kg∼140kg이니 꽤 작은 편이다.

일본 우에노 동물원, 요코하마 동물원 등이 보유하고 있고, 이 호랑이를 보유한 동물원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경향을 보인다. 년 전에 호주의 캔버라 동물원을 방문했을 때도 수마트라 호랑이가 있었다. 물론 작고 아름답다고 사람을 안 잡아먹는 것은 아니다.

수마트라 호랑이보다 더 작은 2미터 이내인 미니 사이즈인 발리호랑이는 멸종된 것으로 추정된다. 섬에서 나름대로 작게 진화된 종들인데 역시 섬이라 번성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듯하다. 반면 벵골호랑이나 아무르 호랑이는 서식지가 파괴되면 옮겨갈 곳들이 많아 아직도 개체 수가 그런대로 유지되는 듯하다.

* 이 칼럼은 '미래한국 Weekly'의 11월 2일자와 11월 28일자 글을 본인이 수정증보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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