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형(명지대 교수) 칼럼@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이톡뉴스)] 세계인의 축구 페스티벌인 월드컵이 11월 20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됐고, 혈투 끝에 승부차기를 통해 아르헨티나가 36년만의 우승을 차지했다. 축구선수로서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월드컵 우승만 없었던 메시 경력의 완성을 가져온 경기였다. 경기 자체도 명승부였다. 솔직히 수준 높은 경기는 아니었지만, 매우 재밌는 “극장경기”였다. 명작은 아니지만 아주 즐거운 오락영화를 본 느낌이었다.

리오넬 메시. (사진=EPA=연합뉴스)
리오넬 메시. (사진=EPA=연합뉴스)

프랑스는 후반 25분이 될 때까지 유효슈팅은 커녕 슈팅 한번 없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이전 경기부터 우려됐던 악습인 불필요한 페널티박스 안에서의 반칙으로 한 점을 주고 나서는 일방적으로 밀리던 경기였다. 아르헨티나의 거친 플레이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러나 후반 중반부터 불붙은 프랑스의 저력이 살아나고, 특히 새로운 축구황제 킬리안 음바페의 해트트릭으로 경기는 잔인한 승부차기로 갔다. 4년 후 음바페는 절정의 기량을 발휘할 듯 싶다. 음바페는 마치 젊은 시절 펠레를 연상케 할 정도의 놀라운 실력을 보였다. 외모도 펠레와 조금 비슷하다. 그는 카메룬 출신 부친과 알제리 출신 모친 사이에서 프랑스에서 태어났는데, 장차 메시를 이은 축구황제가 될 재목이다.

되돌아보면 아르헨티나 우승의 최대 장애는 8강전에서 만난 네덜란드와의 혈투였다. 거친 경기 끝에 승부차기로 가까스로 4강에 진출했었다. 네덜란드는 실력에 비해 월드컵 기록이 따라주지 못하는 불운의 팀이다. 우승없이 준우승만 세 번이었다.

난타전 끝에 “극장 경기”를 펼친 아르헨티나와 프랑스, 두 팀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득점왕은 음바페가 됐지만 메시는 축구 역사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프랑스는 60년 만의 월드컵 2연패라는 대기록을 이룰 기회를 놓쳤다. 요번 월드컵은 VAR로 오심을 최소화한 월드컵으로 기록될 듯하다. 그동안 많은 규칙 개정으로 축구는 점점 더 좋은 방향으로 진화해 나갔다. 앞으로도 많은 룰 개정을 통해 더 많은 개선이 이뤄져서, 더 재미있고 더 골이 많이 나오는 스포츠로 계속 발전해야 한다.

카타르 월드컵은 전체적으로 보아 경기내용 면에서는 성공적이라고 평가받을 것이다. 내용도 좋았고, 재미도 있는 월드컵이었다. 한국은 목표인 16강을 기적적으로 이뤘기에 큰 아쉬움이 없다. 축구 변방지역에 속한 모로코(최종 4위)와 일본의 선전도 특기할 만하다. 우승팀 아르헨티나를 이긴 사우디아라비아도 자부심을 느낄만하다. 손흥민의 토트넘 동료인 브라질 히샬리송의 바이시클 킥은 특히 명장면이었다.

6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974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전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경기가 끝난 뒤 손흥민이 팬들에게 인사하며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6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974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전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경기가 끝난 뒤 손흥민이 팬들에게 인사하며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요번 월드컵 특징 중 하나는 각 팀의 골키퍼들이 아주 잘 했다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최고의 골키퍼 활약으로 기록될 월드컵이다. 골키퍼는 필드플레이어와 다르게 나이 들어서도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포지션이긴 하지만, 카타르 월드컵에선 골키퍼들이 거의 다 전설의 레프 야신이나 고든 뱅크스로 빙의된듯했다. 한국의 김승규 골키퍼도 여러 번 슈퍼세이브로 더 큰 실점 위기를 넘겼다.

최고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과거에는 “야신 상”이라고 불렀던) “골든글로브”를 누가 받을지 가늠이 힘들 정도였다, 결국은 결승에서 맹활약한 아르헨티나의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에게 돌아갔지만 다른 골키퍼에게 갔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다. 즐겁고 영원히 기억될 월드컵이었다. 특히 승부차기에선 골키퍼 능력이 매우 중요한데 아르헨과 크로아티아, 모로코 골키퍼가 승부차기에서 제일 뛰어난 듯했다. 만약 내가 골든글로브 상을 뽑았다면 크로아티아의 리바코비치나 모로코의 야신 부누를 선정했을 듯하다. 아르헨티나 우승 프리미엄으로 마르티네스에게 그 상이 간 듯하다.

카타르 월드컵은 역사상 첫 중동지역에서의 월드컵이자, 첫 사막 지역에서의 그리고 첫 겨울 월드컵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모든 경기가 도하 한 군데에서 열리고, 기후 사정 등 때문에 역사상 가장 개최비용이 많이 든 월드컵이다.

역대로 중동은 월드컵 성적이 안 좋았던 지역이었는데, 우려대로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국이 개막전에서 지는 진기록을 낳았다. 카타르는 그리 강팀이 아닌 에콰도르를 상대로 무기력한 경기 끝에 2-0으로 지는 수모를 겪었다. 대개 홈어드벤티지 덕분에 개최국은 지지 않는다는 무려 92년 동안 이어진 전통이 깨졌다. 역대 개최국들은 첫 경기에서 통산 16승 6무를 기록했었다. 한국도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 개막전에서 폴란드를 2-0으로 제압했었다.

대한민국은 10회 연속 월드컵 진출이라는 칭찬받을 만한 기록을 남겼다. 한국팀은 프리미어리그 등 세계 유수의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았고, 국내파 선수들도 적절히 조화를 이뤘다. 이탈리아 세리에 A의 나폴리에서 맹활약하는 대형 수비수 김민재도 가세했다. 주축인 손흥민 선수가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의 리그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 컨디션이 나빴고, 김민재, 황희찬 등도 부상으로 최상의 폼이 아니었던 게 아쉽다.

조 편성 운은 최악은 아니지만 꽤 나빴다. 한국팀이 대대로 약했던 북유럽 팀들이 같은 조에 없는 것은 다행이지만, 우루과이·포르투갈·가나가 전부 강팀이었다. 더구나 한국팀 감독인 파울루 벤투는 포르투갈의 국가대표 출신으로 고국의 대표팀과 싸워야 하는 부담도 있었 것이다.

월드컵에서 세계 축구팬들이 주목하는 것은 승패만큼이나 각 팀이 얼마나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느냐이다. 예선 탈락하더라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 팀은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성적이 좋았어도 경기내용이 부실한 경우나 매너가 없는 팀에게는 오히려 질책이 따랐다. 한국팀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승패를 떠나 아름다운 축구를 하기에는 전반적으로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도 보여줬다. 공 점유율은 높은 편인데도 과감한 공격 대신 고질적인 공 돌리기가 자주 보였다. 애국심을 제외하고 제삼자적 입장에서 보기엔 매끈하기보다는 답답한 경기 스타일의 축구를 했다. 각 방송의 해설도 지나치게 균형감을 잃은 면이 많았다. 그러나 한국축구팬들은 이전보다는 성숙한 자세로 29일간의 월드컵을 즐기는 마음을 가졌다.

한국은 강호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얻어냈다. 우루과이는 카바니 같은 베테랑과 발베르데(레알 마드리드) 같은 신예 스타들이 잘 조화된 팀이다. 그러나 한국전에선 몸이 무거워 보였고 무기력했다. 골대를 두 번 맞추는 불운이 있었지만, 강호의 존재감이 없었다. 과거에 한국 팀을 농락할 정도였던 슈퍼스타였던 노장 수아레스는 거의 존재감이 없다가 교체됐다.반면 한국팀은 강력한 압박수비를 보여줬지만, 유효슈팅이 아예 없는 지루한 경기력을 보였다. 상대편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위협적 움직임도 거의 없었다. 골대가 살려준 경기였다.

이번 월드컵에선 과거 축구의 재미를 망쳤던 페널티 박스 안에서 수비수의 교묘한 반칙이 매의 눈을 가진 비디오판독에 걸리게 되면서 예전보다 페널티킥이 많이 나왔다. 예전에는 심판의 눈을 피해 당기기, 밀기, 심지어는 가격하기 등의 온갖 반칙이 관행적으로 용인되는 분위기였다. 이런 악습이 앞으로 사라지게 될 것 같다. 과거 위험한 백태클에 대한 벌칙이 강화되면서 백태클이 많이 없어진 정도의 효과가 나타날 듯하다.

가나와 3차전 후반 막판에 페널티지역 안에서 넘어지는 우루과이 카바니(21번). (사진=로이터=연합뉴스)
가나와 3차전 후반 막판에 페널티지역 안에서 넘어지는 우루과이 카바니(21번).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반면 요번에 처음 도입된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기술은 몇 가지 개선이 요구된다. 오프사이드 트랩이 난무하는 경기는 지루할 수밖에 없다. 반자동 판독으로 많은 득점 들이 취소됐는데, 그중에는 팔 하나가 살짝 더 나온 것까지 판별해서 득점이 취소된 경우도 있다. 육상 달리기에서처럼 몸통을 기준으로 하는 방식 등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지나치게 많은 오프사이드와 트랩 전술, 득점이 없는 축구 경기는 재미를 급감시킨다.

또한 일본과 사우디가 독일과 아르헨티나를 역전승으로 이기는 이변이 화제를 모았다. 일본은 득점을 한 두 선수 포함 독일 분데스리가 소속이 무려 8명이 있어서 독일에 익숙한 상태였다.

월드컵 한국의 2차전은 아쉬운 경기였다. 공격과 수비의 핵심인 손흥민과 김민재가 부상인 상태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가질 수가 없는 게 애초부터 큰 문제였다. 백업(대체) 스트라이커로서 활용도가 높은 황희찬은 부상으로 아예 출전이 불가능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울버햄튼 원더러스에서 저돌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강한 인상을 줬던 그의 부재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한국팀은 전반전부터 공격 면에서는 우루과이와의 1차전 때보다 훨씬 더 능동적으로 움직여줬다. 그러나 열심히 두드리기는 했지만 예리함과 파괴력이 없는 가운데 전반전을 또 유효슈팅 하나 남기지 못한 것은 앞으로 한국축구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1차전에서는 강력했던 수비도 오히려 두 골을 내주는 무기력함을 보였다. 가나는 효율적인 축구로 포르투갈과의 1차전 때만큼이나 강한 골 결정력을 보였다.

한국은 후반전에선 놀라운 투지를 보여주며 2-2 동점까지 가줬지만, 뒷심 부족으로 다시 리드를 내줬다. 그러나 끝까지 필사적으로 파상공세를 펴면서 계속 유효 슛을 때려준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스페인 라리가의 마요르카에서 좋은 활약을 하는 이강인의 투입 이후 공격력이 살아났다. 그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기용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대표팀이 예선 3차전에서 기적적으로 16강 막차를 탔다. 암담한 상황에서 포르투갈과의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물론 운도 많이 따랐다. 포르투갈은 16강 진출이 이미 확정돼서 1.5군을 출진시켰고, 죽을 힘을 다할 필요가 없었다. 무승부로 끝나도 조 1위 진출이 확정됐는데도, 포르투갈이 경기 종반에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치지 않는 틈을 타 한국팀은 벼락같은 역전 골을 터트렸다. 우루과이의 입장에선 비기기 작전으로 안 나간 포르투갈 팀이 야속할 것이다.

결승골의 주인인 황희찬은 부상으로 앞 경기에서 출전조차 못 하다가, 3차전 막판 부상을 무릎 쓴 최후의 카드로 투입돼 일을 냈다. 황희찬은 현재 최고의 리그인 잉글랜드 EPL에서 뛰는 경험이 있고, 평소의 터프한 경기 스타일로 정말 필요한 조커 역할을 할 수 있음에도 부상으로 나오지 못했었다. 그러나 포르투갈전에서 급박히 투입되자마자 종횡무진 뛰어다니더니 결국 진가를 보여줬다. 그를 기용하는 모험을 건 것은 신의 한수였다. 손흥민은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에서 전혀 자기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다가 마지막에 질풍같은 드리블과 기가 막힌 패스로 월드클래스임을 입증했다.

우루과이와 골득실까지 같은 상태에서 다득점으로 진출하는 것이니 악전고투하는 매 경기마다 최선을 다한 보답을 받은 것이다. 벤투 감독이 경기 지휘를 못하고, 수비의 핵인 김민재가 출전 못 한 악조건에서 이긴 것이라 더 가치가 있다.

일본은 죽음의 조에서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대단한 성과이다.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은 1994년 “도하의 비극”이라고 일본인들이 부르는 미국 월드컵 지역 최종예선에서 일본 국가대표 미드필더로 뛰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그 아픔을 딛고 “도하의 영웅”이 됐다. 두 아시아 팀의 선전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한국은 16강 전에서 “영원한 우승후보”인 강호 브라질과 대결했다. 아직 한국축구 수준이 브라질과 대적하기에는 많이 못 미쳤다. 브라질은 역시 강했다. 제주스 등 몇몇 주전 선수들이 부상으로 못 나왔지만 선수층이 매우 두텁기에 전혀 문제가 안 됐다. 2진과 1진의 차이가 크지 않은 전형적인 더블 스쿼드 팀이었다. 게다가 직전 경기에 부상으로 결장했던 슈퍼스타 네이마르가 복귀했다. 현란하고 파상적인 공세로 골문을 두들겼고, 한국 선수들이 열심히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페널티킥으로 준 두 번째 실점은 아쉬웠다. 그러나 후반전에 교체 멤버인 백승호의 호쾌한 중거리 슛으로 1점이라도 만회해서 다행이었다. 4-1의 큰 점수 차였지만 그만하면 잘했다.

일본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준우승팀 강호 크로아티아를 맞아 스코어 1-1, 대등하게 경기를 이끌었다. 전반전에 1-0으로 앞서다가 후반전에 실점해 연장전으로 갔는데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승부차기에서 상대 골키퍼 리바코비치의 신들린 선방 때문에 8강 티켓은 놓쳤지만, 무승부를 이끌어 낸 것도 대단한 일이다. 승부차기로 가는 경기는 공식적으로 무승부로 기록된다.

다른 16강전에서는 우승 후보들인 프랑스와 잉글랜드가 폴란드와 세네갈을 손쉽게 이기고 8강에서 격돌했다. 8강 최고의 빅매치였다. 두 팀이 너무 일찍 만나 하나가 8강에서 떨어져야 해서 아까울 정도였다. 프랑스는 전 대회 우승팀. 잉글랜드는 축구 종가지만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이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일 정도로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지만, 호각의 접전이었다. 잉글랜드는 4년 후가 기대된다. 잉글랜드는 손흥민의 토트넘 단짝인 주장 해리 케인과 놀라운 신인 주드 벨링엄 등이 포진해 있어서 미래가 더 기대되는 팀이다. 벌써 다음 월드컵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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