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날들

빼빼로 받아든 참전용사. (사진=연합뉴스=부산 남구 제공)
빼빼로 받아든 참전용사. (사진=연합뉴스=부산 남구 제공)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요즘 초등학교 국어 교육은 읽기와 쓰기는 물론이고 말하기도 가르치는 모양이다. 특정 이슈를 놓고 편을 나눠 토론을 시키는 모양이던데, 딸한테 들어보니 그 임하는 자세가 사뭇 진지하다. 11월의 주제는 빼빼로 데이 찬반 논쟁이었다. 딸은 찬성 쪽에 있었다. 반대쪽은 대체로 경제적 이유와 부산의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기리는 날인 <턴 투워드 부산> 기념일과 겹친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토론에서 펼친 자기주장을 정리하여 글을 써야 하는 딸이 아빠 생각은 어떠냐고 넌지시 힌트를 구했다. 딸에게 줄 힌트를 생각하며 날에 대해 생각 했다.

일 년 열두 달 365일, 허투루 넘길 날이 없다. 우선 나라에서 정한 법정기념일이 쉰 세 날이다. 1월을 제외하곤 매달 있다. 여기에 기타 법령에 따른 기념일도 어림잡아 일흔 개가 넘는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별로 정한 기념일이 있고 각종 이익 단체나 직능 단체, 협회 등에서 정한 기념일이 있다. 조상 대대로 지켜온, 자연의 섭리를 따라 정해진 24절기까지 포함하면 일 년 365일, 그야말로 거르고 넘어갈 날이 없는 셈이다. 이뿐인가, 학창시절엔 개교기념일이, 취업을 하면 창립 기념일도 있다.

특별한 사람, 특별한 날들


나이를 먹을수록 맺은 인연은 많아지고, 인연의 수만큼 챙겨야 할 날도 많아진다. 이 중 하루하루를 헤아리며 날이 갈수록 그 의미를 키워가는 대표적인 사람을 꼽으라면 연인과 아기 엄마일 것이다. 연인들은 사랑의 날을 헤아리며 깊어가는 사랑을 확인하고, 아기를 낳은 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를 보며 하루의 무게와 의미를 달리 알아간다. 요즘엔 백일 사진은 물론이고, 50일, 200일, 300일 사진도 찍으니 그 감회가 더 새롭지 않을까? 물론 이런 헤아림도 돌이 지나면 그칠 것이다. 오래 된 연인들 또한 날짜 세기가 유치해지는 순간이 올지 모른다. 그러나 그 날을 헤아리지 않는다고 해서 연인과 자식의 의미가 가벼워지진 않는다.

오래된 연인이 더 이상 사랑의 날들을 헤아리지 않는 건, 사랑한 날의 헤아림을 사랑할 날에 대한 믿음의 토대로 삼을 필요 없을 만큼 그 사랑이 견고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흐르는 시간과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견고히 지켜온 사랑과 그 사랑을 함께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앞으로도 묵묵히 사랑의 날들이 켜켜이 쌓아질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엄마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가 걷고 뛴다고, 어린이집에 가고 학교에 들어간다고 내 자식의 하루가 돌전의 날들보다 하찮지는 않다. 앞선 칼럼에서 썼듯이 학교를 간 아이가 무사히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저녁 식탁을 사이에 두고 남자 짝꿍의 흉을 보는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렇게 맞이한 밤에 곤히 잘 자고, 다시 맞은 아침에 무탈하게 일어나 자식을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부모라면 알 것이다.

잊고 싶은 날들, 묻고 싶은 과거


물론 의미 있는 날이라고 해서 다 기쁘게 챙기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는 5월의 어느 날이 생일인데, 그 날이 생일인줄 알고 선물을 드리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하셨다. 나중에서야 그날이 생일이 아닌 걸 알았다. 그래서 생일이 정확히 언제냐고 물었더니 역시 얼버무리셨다. 요즘엔 며느리도 계속 묻는데 여전히 어물쩍 넘어가신다. 제대로 다니지도 못했다고 본인이 나온 대학도 얼버무리시는 양반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도 넘어갔다. 그렇게 최근까지도 어머니의 얼버무림을 이해하지 못하다 쉰이 넘어서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언제부턴가 내 맘처럼 살아오지 못한 세월 끝에 맞이한 생일이 반갑지가 않았다. 내 맘처럼 살지 못한 날들은 잊고 싶고 묻고 싶었다. 어머니 마음도 그러셨던 거 아닐까?

영원한 가객' 故 김광석의 19주기를 맞은 2015년 1월 6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소극장에서 시민들이 김광석의 생전 사진을 보며 고인을 추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영원한 가객' 故 김광석의 19주기를 맞은 2015년 1월 6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소극장에서 시민들이 김광석의 생전 사진을 보며 고인을 추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과거는 그날들도 채워져 있다. 그날은 사건과 기억으로 얼룩져 있는 특정한 날들이다. 그날은 돌아오지 않는다. 김광석이 <그날들>에서 노래했듯이 과거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지만 앞선 칼럼에서 말했듯이 잊음에 두 번이나 일을 시켜 사랑이나 사람, 사건에 대한 기억을 없앨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잊지 않은 사람이든, 잊은 사람이든, 어떤 사람과 보낸 과거든 잊히지도, 소멸되지도 않고, 다시 돌아오지도 않는다. 돌아오지 않으니 당연히 고칠 수도 없다. 결국, 살면 살수록 더 많은 날들을 돌아갈 수 없는 이런 “그 날”들로 채워갈 수밖에 없다. 그날들의 후회와 아픔, 그 과거의 무게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아직 오직 않은 새날을 기다리며.

새날의 희망


새날은 희망과 가능성이 열려 있는 날이다. 시인과 촌장은 <새날>이라는 노래에서 이 새날에 대해 말한다. “나의 눈물이 그치고 슬픈 우리별에도 종소리 들려, 어렵던 지난날 눈물로 뿌리던 그 아름다운 열매들이 그대 뜰에 익을 때”, 그때, 도래하는 날이 새날이다. “떠나간 새가 저 햇살 넘치는 언덕으로 돌아올 어여쁜 날개 짓 그 푸른 잎사귀를 물고 나의 가난한 마음에 날아와 안길” 바라는 소망을 후광처럼 등에 지고 오는 날이 새날이다. 뜯지 않은 선물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날이 새날이다. 그렇기에 평정심을 갖고 기다릴 수 있는 희망에 찬 날이다.

물론 인생에 리셋은 없다. 새날, 새 출발은 어려울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사람이기에 새 마음, 새 다짐으로 새해를 시작한다.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되돌아온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굴러간다."고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말했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그날을 뒤로하고 내일로 나아가면서 새날의 희망을 품고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의지로만 굴러가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날들이 지났다. 그렇게 일 년이 갔고 새로운 한 해가 왔다. 2022년의 “그날”을 보내고 2023년의 “새날”이 온 것이다. “새날”도 연말이면 기억 될 “그날”이 될 것이다. 우리는 새날이 많이 남은 1월에는 그날들이 새날을 앞에 두고 품었던 모든 희망들이 이뤄져 기쁨과 성취감으로 가득 찬 그날들이 되길 바란다. 해의 말미에 지난 그날들을 돌아보면 어느 날 하나 챙겨 기억하지 않을 날이 없기를 바란다. 그런 날들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빼빼로 데이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이유를 딸이 물었다고 했다. 이리 답했다. 일 년 중 사랑하는 사람이나 소중한 친구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날이 그렇게 많던가? 그런 날은 대체로 봄에 몰려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이 늦가을과 겨울 사이의 이 날에 마음을 표현해서 성탄절을 한 달 여 앞두고 사랑이 이뤄지면 그날도, 그 해의 성탄절도 얼마나 기억에 남는 하루가 되지 않겠나. 그 성탄절이 평생 기억에 남지 않을까? 그 뒤 맞이한 새해의 날들은 사랑의 날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우정의 날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한 해가 얼마나 아름답게 기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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