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1999년9월]

서울 공화국 빛과 그림자

6조원 빚더미, 시 금고는 바닥

서울시가 빚더미를 등에 지고 신음하고 있다. 갈수록 재정이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것이다.

선진 도시에 비해서 각 부분의 경쟁력이 낮은 편이다. 특별시의 명암을 조명해 봤다.

글 / 李斗石 편집위원(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선진 도시보다 삶의 질 낮아

서울은 만원이다. 사람도 돈도 서울에 몰려 있다. 전국 인구의 4분의 1인 1천만명을 웃도는 팔도강산 사람들이 서울에 살고 있고 금융기관 예금의 70%가 서울에 모여 있다.

사람과 돈만 몰려 있는 것이 아니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길목에서 도시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 사회기반 시설도 서울에 집중적으로 구축되고 있다. 지하철, 내부 고속도로 등 교통시설, 상수도, 하수 및 쓰레기 처리시설 뿐만 아니라 병원, 학교, 공공도서관, 사회복지시설 등 경제·사회·문화 분야의 인프라가 서울에 치중돼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출세의 지름길로 통하는 이른바 ‘명문대학’은 모두 서울 장안에 몰려 있으며 양질의 의료,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의사와 변호사의 절반 이상이 서울에 모여 있고 서비스업의 60% 이상이 서울에 집중돼 있다.

정보 장악이 곧 권력으로 통하는 첨단 정보화시대에 대중 매체의 총아인 신문, 방송의 서울 점유율은 무려 90%에 이른다. 그래서 ‘서울 공화국(共和國)’으로 불릴 정도로 그 외모는 화려하다.

그러나 서울은 외모가 번드르르한 만큼 살기 좋은 선망의 도시가 아니다. 자동차 홍수와 생활하수로 빚어진 매연과 폐수가 시민의 삶을 괴롭히며 세금 부담은 무겁고 고질적인 교통난과 잇따르는 강력 사건이 시민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서울은 그 외모가 번드르르 한 만큼 삶의 조건이 알찬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빛이 밝은 만큼 그림자도 긴 법이다.

서울 시민의 삶의 질 수준이 다른 주요 지방 도시에 비해 눈에 띄게 나은 것도 없으며 특히 선진국의 주요 도시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 서울시가 조사한 도시비교 통계에 따르면 서울 인구는 1천38만9천명(97년 기준)으로 남한 면적의 0.6%에 불과한 좁은 땅에 서울에 전체 인구의 22%가 몰려 살고 있다.

평방 Km당 인구밀도는 1만7천1백57명으로 선진국 수도인 일본 도쿄(5천3백88명)나 미국 뉴욕(8천8백99명)보다 월등히 높다. 의사 1명당 인구수는 5백7명으로 파리 1백10명, 뉴욕 2백22명, 도쿄 2백75명, 타이베이 3백6명에 비해 지나치게 많아 의료서비스의 양과 질이 열악하다.

전화가입자 수도 서울이 1백명당 50.9명인 반면 도쿄 66.4명, 파리 85.1명, 베를린 61명으로 아직 선진 도시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가장 관심이 높은 교육의 질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초등학교 학급당 학생수는 37.3명으로 뉴욕 14.7명, 파리 19.7명, 베를린 23.3명, 도쿄 30.2명보다 많다.

이밖에 한해 범죄 발생 건수가 34만9천1백18건으로 도쿄 23만2천1백3건, 뉴욕 26만3천7백19건, 모스크바 9만9백건보다 많은 것으로 집계돼 민생치안 수준도 뒤떨어지고 있다.

세금 많고 도시 기반시설 취약

‘서울 공화국’의 살림 규모는 그 덩치만큼 크다. 지방자치시대, 민선 2기에 접어든 서울시의 올해(99년도) 예산은 9조원에 육박하는 총 8조8천7백15억원으로 정부 예산(총 1백44조9천8백52억원)의 6.1% 규모. 이 가운데 주로 시민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하는 일반회계 예산 규모는 5조5천9백2억원(시세수입은 4조3천3백3원)이다.

이 때문에 서울 시민이 부담하는 세금이 다른 도시보다 많다. 예컨대 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 등 국내 6대 도시의 1인당 지방세 부담액을 비교해 보면(97년 기준) 서울이 46만9천원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대구로 37만3천원이며 부산 36만8천원, 대전 36만3천원, 인천 35만7천원, 광주 31만1천원 순이다.

서울 시민의 이같은 세금 부담에 비해 생활 편의시설이나 도시 기반시설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예컨대 도로 포장율은 87.31%로 광주 99.6%, 인천 99.56%, 부산 97.94%, 대구 97.79%, 대전 94.32%보다 낮고, 주택 보급률도 69.57%로 6대 도시 중 가장 뒤쳐진다.

상수도와 하수도 보급률은 99.9%, 99.4%로 국내 도시나 선진국 주요 도시에 비해 손색이 없지만 사후관리 부실에 따른 누수율이 높아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외화내빈, 6조원에 이르는 빚더미

서울시 살림은 일반회계와 함께 특정사업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설치, 운영되는 특별회계로 꾸려간다. 올해 특별회계 예산 규모는 3조2천8백13억이며 이 예산으로 교통, 토지구획정리, 영세민 의료보호기금, 집단에너지, 상수도, 하수도 , 주택, 도시철도 등 8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이런 사업을 추진하는데 엄청난 빚을 져 서울시 살림이 쪼들리고 있다.

서울시 부채 총액(98년 말 현재, 산하 공사 포함)은 5조9천9백55억원이며 금년 말에는 6조4천7백67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서울시 당국은 내다보고 있다. 특히 민선 2기 시정이 출범한 후에도 서울시 부채는 1조2천5백45억원(98년 말)에서 1조7천3백6억원(99년 말 추계)으로 4천7백61억원이 늘어나게 된다는 사실은 우려할 만하다.

이처럼 빚이 늘어나게 된 원인은 지하철 건설 관련 지방채 인수자금 및 공채발행 2천30억원, 주택경기 활성화를 위한 국민주택기금 차입금 2천5백억원이며 일반회계에서도 6억원의 빚이 늘어났다.

특히 서울시 한해 예산(99년 일반회계 5조5천9백2억원)을 웃도는 부채 가운데 89.9%인 4조9천9백53억원(98년 말 기준)이 지하철 건설사업으로 진 빚이며 이를 갚기 위해 시세로 충당하는 일반회계에서 해마다 5천억원선을 지원하는 데다가 되풀이되고 있는 지하철의 악성 노사분쟁으로 경영개선을 통한 수입증대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서울시 재정위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의 삶의 질은 이처럼 외화내빈이다. 빛 좋은 개살구 격이다. 이런 서울을 선진국 주요 도시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올해 서울시 당국이 공개한 시정의 청사진은 장밋빛 일색이다.

하지만 이런 의욕적인 시정의 설계(고 건 서울시장 인터뷰 참고)가 ‘일도 많고 빚도 많은’ 수도 서울의 어려운 현실 여건 속에서 과연 제대로 실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경영마인드 도입이 성패의 열쇠

서울은 지난 개발독재 시절, 압축성장이 남긴 거대한 도시병에다 최근의 경제위기에 따른 산업위축과 대량 실업사태 등으로 합병증을 앓고 있다.

특히 시청 조직은 개발 성장시대에나 맞는 공룡과 같은 상명하복의 관청식 조직이어서 복지부동, 무사안일의 해묵은 고질병을 치유하는 것이 민선 2기 시정의 최우선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런 고질병을 치유하는 방안의 하나로 조직에 경영마인드와 경쟁원리의 새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래야 조직은 작지만 행정서비스의 품질 높은 경영혁신이 이루어 질 수 있다.

이를 위해 고 건 시장은 전문경영인 출신을 행정 제1부시장으로 발탁해 팀제를 도입하고 기구와 인원수를 대폭 축소하는 등 나름대로 성과를 올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서울시정에 경영마인드의 뿌리가 내렸다는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구조조정에 따른 일부 조직 내부의 반발과 부서 이기주의 때문이다.

하지만 ‘빚더미 서울시’를 살리는 지름길은 정책의 방향을 개발 위주에서 삶의 질 향상으로 전환하고 경영마인드로 시정을 이끌어 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