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국제 경제 뉴스에선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은행이 흔들리고 다른 나라에선 금리를 분기별로 올린다. 게다가 국내 물가는 언제나 그랬듯 오를 줄만 알았지 내릴 줄은 모르니 좀처럼 국민의 지갑이 열리지 않는 모양이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내수 활성화를 위해 고심하고 있다.

국내 여행 활성화를 도모하고 전통 시장 이용을 유도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일부 언론에선 젊은이들이 너무 돈을 헤프게 쓴다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한다. 언론만 그런 것이 아니라 SNS를 타고 드나들면서 떠도는 말들의 꼬리를 따라가 보면 젊은이들의 돈 씀씀이에 대한 걱정과 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카푸어에 대한 조롱은 이미 흔해졌고 월급을 아껴 명품 가방과 시계를 사기 위해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으로 끼니를 때운다는 냉소도 자주 볼 수 있다.

요즘은 주로 오마카세 유행에 조롱과 냉소가 쏟아지고 있다. 오마카세라는 말의 고향인 일본 언론도 이 냉소의 물결에 동참했다. 일본 주간지 『슈칸신쵸(週刊新潮)』의 인터넷 판인 『데일리신초』는 3월 12일, “일본의 ‘오마카세’가 한국에서 유행”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한국의 ‘오마카세’ 열풍은 ‘사치의 상징’이라며 한국의 소비문화에 대해 비판한 것이다. 특히 한국 젊은이들은 첫 데이트나 생일, 크리스마스 등 기념일에 인기 있는 오마카세 레스토랑을 찾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었다고 전했다. 또, 연인과 함께 SNS에 사진과 영상을 올려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는 등 오마카세 레스토랑이 SNS 자랑 용도로 활용된다고 주장했다.

데일리신초 3월 12일자 기사에 실린 이미지. (사진=데일리신초)
데일리신초 3월 12일자 기사에 실린 이미지. (사진=데일리신초)

 

'오마카세'의 가치와 본질


오마카세(お任まかせ)는 '맡긴다.'라는 뜻의 일본어로 메뉴의 종류 및 그 요리 방식을 요리사에게 모두 맡기는 형식의 음식을 말한다. 오마카세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기 전에 그 본질에 대해 먼저 정리해 보자. 이를 위해 <고독한 미식가 시즌7>의 연말 특집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주인공 이노가시라는 세토우치 지역으로 출장을 간다. 그 지역에서도, 언제나 그랬듯, 배가 고파져서 식당을 찾다가 생선 요리 전문 식당으로 들어간다. 일본 식당에서 흔히 보는 ㄷ자 형태의 카운터 테이블 앞에 좌판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 가게마냥 어패류가 잔뜩 놓여있다. 그 다양한 구색에 놀란 것도 잠시, 일단 배가 고프니 앉았는데 메뉴판을 안 준다. 어디에도 메뉴는 걸려 있지 않다. 이노가시라의 당황한 모습을 본 주인장이 한마디 한다. “여기서 먹고 싶은 걸 고르시면 그걸 드시고 싶은 방법으로 요리를 해줍니다.”, 이 말은 들은 뒤에도 주인공의 선택은 쉽지 않다. 주인장은 생선 몇 개와 그에 맞는 조리법을 권한다. 이노가시라는 기꺼이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난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그럼 가격은 도대체 얼마라는 거야? 이거 부르는 게 값 아냐?”하는 의문을 품었다. 이 의문에서 오마카세의 다른 본질 하나가 튀어 나온다. 가격의 문제다. 엄밀히 말하면 앞서 말한 이 드라마 속 오마카세엔 정찰가가 없다. 정찰가가 없다는 불확실성, 어떤 식재료가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 게다가 요리사가 어떤 방식으로 요리를 할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 손님은 이 다양한 불확실성, 특히 비용의 불확실성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어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들어오는 사람, 즉 이 불확실성조차 오마카세의 구성 요소 중 하나임을 알고 감수하는 사람이다.

(사진=Economytalk news)
(사진=Economytalk news)

 

사실 우리가 가는 식당 대부분엔 메뉴와 그에 따른 가격표가 있다. 이런저런 정보 탐색을 통해 각자의 경제 사정에 맞는 식당을 고를 수 있다. 물론 오마카세 식당도 나름의 가격이 있다. 그러나 가격이 서비스와 품질이 갖고 있는 가치의 화폐적 표현이라면 고객의 입장에서 후자의 가치에 대해선 무지의 상태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늘 저녁엔 어떤 조합으로 나올지 알 수 없고, 그 조합에 사용되는 식재료의 신선도나 희소성으로 인해 창출되는 가치를 판단할만한 지식이나 경험이 요리사나 오너 셰프에 의해 상대적으로 열세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시장에서 가격에 대한 판단을 할 때 정보의 불균형으로 인한 소비자의 상대적 열세는 흔한 일이지만 오마카세의 경우엔 그 현상이 더 도드라진다고 봐야 한다.

반면 한국의 오마카세는 좀 다르다. 통영과 마산 인근의 다찌집이나 부산의 푸짐한 집, 전주의 막걸리 한상처럼 술 가격만 내면 음식이 따라 나오는 구조라면 간단하다. 술값이 다른 식당보다 비싸더라도 그 가격에 주인장의 요리와 그 실력이 포함된다고 생각하면 납득이 된다. 다찌집처럼 1인당 얼마라는 가격이 정해져 있는 경우에도 납득이 된다. 주인장의 요리와 거기에 담긴 정성, 그날그날의 신선한 식재료와 그 식재료에 걸 맞는 조리법을 선택하는 주인장의 창의성은 충분히 그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말, 진정한 오마카세 식당이라면 가격은 큰 의미 없다. 가치는 주인장과 고객의 마음, 그 마음의 상호작용에 달린 것이다. 그야말로 불확실성의 극치이지만, 이 불확실성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있다. 바로 단골과 부자다. 그렇다. 오마카세 형태의 술집과 식당은 단골을 전제로 한다. 즉 가타부터 설명 없이 서로의 실력과 경제력을 가늠할 수 있는 이들끼리의 교류의 현장인 것이다. 그래서 오마카세와 프랜차이즈의 조합은 그야말로 넌센스인 것이다.

'과시'를 위한 소비


우리는 모두 내가 누구인지 말하고 싶다. 부모의 품을 벗어나 사회로 나가면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방법은 다니는 학교, 다니는 회사와 그 회사에서 주는 직함이 전부다. 운 좋게 결혼을 하면 누구의 배우자로 불리고 용감하게 애를 낳으면 누구의 부모로 불린다. 그러나 이 모든 적당한 부름, 그러니까 나를 사회에서 부를만한 명칭이 내가 없다고 느낄 때, 나는 나를 세상에 드러내 보일 수밖에 없다. 마치 목에 걸고 다니는 사원증처럼 말이다.

한국에서의 오마카세는 과시를 위한 상품이 되어 버렸다. 그 가격과 품질의 불확실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 무시할 수 있는 재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걸 사회에 과시하는 소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과시는 남에 시선을 의식하는데서 출발한다. 남에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면 자신을 꾸며 보일 이유도, 필요도 없다. 학부모 총회에 뭘 입고 가면 좋을지 고민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신이 무엇을 입든 타자라는 거울에 비춰 평가 받지 않으면 다 벗고 가는 것과, 그냥 집에 입던 옷을 입고 가는 것 큰 차이 없다.

얼마 전 딸이 그랬다. 요즘 학교에 야구 점퍼 입고 오는 애가 많다고 말이다. 그런데 자기 것이 오리지널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자기 것은 MLB 브랜드여서 오리지널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렇다. 어떤 것이 오리지널이기 위해선 아류와 모사품이 필요하다. 수영장 안에선 그 사람의 수영 솜씨에 따라 수영복의 화려함과 디자인이 결정 된다. 물론 약간의 취향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대체로 마스터반의 수영복은 타이트하고 짧고 노출이 많고 화려한 색이다. 그런데 그렇게 수영장의 리더였던 남자도 일상복으로 갈아입으면 평범해진다. 수영의 세계를 벗어나면 일상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진 알 수 없는, 비교당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는 저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이 사회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가려면, 글쎄, 결국 저 판에 있되, 그 판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야하는 걸까? 그게 쉽지 않을 것이다. 사람 늙으면 다 똑같다고 말해봐야 맘에 와 닿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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