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성공하는 마케팅에 관한 책도 방법도 이론도 많다. 필자도 학창 시절부터 해서 현재까지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다양한 마케팅 성공 사례를 접했다. 그러나 요즘에 드는 생각은 평소에 그 물건이나 서비스에 전혀 관심이 없고 쓸 일도 쓸 줄도 모르는 사람이 그 물건과 서비스를 구매하고 싶다면 그건 정말 성공한 마케팅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더 나아가 그 상품이 속한 범주를 좋아하고 심지어 그 상품을 좋아하기까지 하지만 그 상품 때문이 아니라 그 상품에 딸려오는 뭔가 때문에 그 상품을 더 많이 더 자주 산다면 그 마케팅은 성공한 마케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최근에 한 이런 경험 중에서 오감과 관련지어 몇 가지를 얘기해 보려 한다.

디 올 뉴 그랜저. (사진=HYUNDAI MOTOR COMPANY.)
디 올 뉴 그랜저. (사진=HYUNDAI MOTOR COMPANY.)

감상하고 싶은 자동차


필자는 운전을 할 줄 모른다. 당연히 자동차를 사 본적도 없다. 그러나 종종 “야, 이 차는 정말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두 번 있다. 첫 번째 경험은 대학 때였다. 기숙사가 학교 정문과 붙어 있었는데, 저녁을 먹기 위해 그 정문을 막 나서자 연한 초록색, 소위 옥색의 세단이 서 있었다. 나중에 알아본 바로는 재규어의 X 시리즈 중 하나였다.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많은 수입 승용차를 봤지만 이 순간만큼 아름답다는 느낌을 준 자동차는 없었다. 두 번째 경험은 최근이다. 딸을 학교에 데리러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집 앞의 번화한 유엔 교차로에 카 캐리어 트럭이 신호를 받고 서 있었다. 그 차에 실린 승용차는 최신형 그랜저였다. 과거 각 그랜저의 영광을 재현했다는 기사를 보고 그것이 어떤 형태로 구현됐는지 궁금했었다. 그러던 차에 그 실물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 며칠 뒤 부산시립박물관 주차장에 이 자동차가 서 있었다. 느긋한 마음으로 오랜 시간, 예술작품을 보듯이 감상했다. 화려하진 않았다. 심플하고 우아한 직선이 거기 있었다. 뱅 앤 오룹슨의 오디오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이 들었다. 아무런 장식도 되어있지 않은 캐나다 산 단풍나무로 만들어진 일렉트릭 베이스를 보는 느낌,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에 나온 날렵한 요트를 보는 느낌도 들었다. 곡선과 대각선이 공존하는 앞과 뒤, 볼록함과 오목함이 혼재하는 복잡한 측면이 당연시 되는 요즘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무심함이 느껴졌다. 오만함이 느껴졌다. 고전미도 있었다. “요란스럽고 길게 말하지 않을 테니 알아서 내 매력을 찾아봐라.”하는 메시지가 건네졌다.

자동차 성능에 문외한인 사람이라 디자인이 주는 쾌감을 더 각별히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사람 입장에서 보면 국산 자동차와 수입 자동차의 디자인의 격차는 사실상 없어졌다. 디자인만 보고는 국산차와 외제차를 구분할 수 없다. 아니, 솔직히 몇몇 해외 브랜드 자동차는 매너리즘에 빠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기 복제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현대의 아이오닉 5처럼 위대한 자동차의 전통미를 오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잘 팔리던 과거의 영광을 못 잊어 그것을 그대로 복제하는 느낌이다.

자동차는 움직이는 순간의 쾌감만큼 멈춰 있거나 주차되어 있는 동안 전해지는 쾌감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움직이는 순간의 쾌감이 오롯이 운전자의 것이라면 멈춰 있거나 주차되어 있는 동안의 쾌감은 운전자와 그 밖에서 보는 이, 그러니까 우연히 그 자리, 그 순간에 그 자동차를 보는 모든 이의 것이다. 그 우연한 목격자들은 잠재적 소비자이거나 나처럼 자동차를 살 생각이 없지만 그 미적 쾌감에 감탄해 마지않는 순수한 감상자다. 전자는 그 미적 쾌감이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후자인 나 같은 사람일 경우엔 그런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행자 신호를 기다릴 때 내 앞에 선 아름다운 자동차를 보고 있으면 순수하게 갖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그건 필요를 넘어선 욕망이다. 하나의 상품 디자인이 그 상품의 필요가 없는 사람에서조차 구매의 욕망을 자극한다면 그 디자인이 얼마나 아름답고 그 효과가 얼마나 강렬하다는 것인가.

하이트진로, 테라에 최적화된 맥주 병따개 ‘스푸너’출시(2022년). (사진=HITEJINRO)
하이트진로, 테라에 최적화된 맥주 병따개 ‘스푸너’출시(2022년). (사진=HITEJINRO)

소리로 맥주를 마시는 법


최근엔 다른 맥락에서, 그러니까 다른 감각의 차원에서도 마케팅의 효과를 느낀 적이 있다. 2월 중순, 아내가 뜬금없이 병맥주 열두 병을 샀다고 했다. 무슨 소리냐 물으니 한 편의점 앱에서 이벤트를 하는데 테라의 스푸너와 함께 테라 병맥주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팔기에 샀다는 것이다. 나야 맥주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주당이니 그 구매에 가타부타 토를 안 달았지만 순전히 스푸너 때문에 열두 병의 맥주를 샀다는 아내의 항변이 어이가 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여하간, 2월 말, 근처 편의점에서 그 열두 병을 가져 왔다. 열한 병을 냉장고에 넣어놓고 한 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아내 말로는 숟가락과 같은 크기의 스푸너는 품절이어서 작은 사이즈의 스푸너를 주는 걸 구매했다는데, 그 크기를 막론하고 여하간 광고에서처럼 그 청량감 있는 소리를 선사하는지 궁금했다.

실로 오랜만에 병맥주를 따보는 순간이었다. “펑”하는 소리가 났다. 아니, 그저 “펑”이라는 의성어로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뻥과 펑 사이, 낮지도 높지도 않은 경쾌한 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광고에 나오는 그 소리였다. 소리 탓인지 맥주 맛도 좋았다. 탄산이 남다르다는 맥주의 장점을 표현하는 건 쉽지 않다. 광고 속 공유가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처럼 맥주 거품에 휘말려 하늘을 날아도 그 시원함과 쾌감은 다 전달되지 않는다. 스푸너가 선사한 소리는 그 쾌감을 완벽하게 전달한다. 미각의 청량감이 소리로 태어나 맥주를 마시기 전에 이미 귀를 즐겁게 하고 공간의 분위기를 바꾼다. 그 소리를 들은 모든 이들의 기분을 바꾸고 맥주에 대한 기대감을 상승시킨다. 이미 맥주를 마시기 전에, 맥주의 맛이 좋아졌다.

본질을 넘어선 소비의 이유


자동차의 본질은 성능과 안전이며 맥주의 맛은 병 밖이 아니라 병 안에 있다. 그러나 소비자는 제품의 본질이 아니라 사소하고 가벼운 이유로 구매를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힙합 아티스트인 카디 비(Cardi B)는 몇 년 전 제임스 코든(james corden)쇼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다섯 대의 슈퍼카를 샀다고 말했었다. 성공한 아티스트만 이렇게 제품의 본래 용도나 본질이 아닌 다른 이유로 소비를 하는 건 아니다. 요즘 아이들은 걸 열쇠가 없는 데도 키링(Key ring)을 사고,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키링의 수집을 위해 사탕을 산다. 또, 작은 스티커를 수집하기 위해 편의점에서 빵을 사고 이를 위해 편의점 순례를 하기도 한다.

앞선 칼럼에서도 말했듯이 집에 CD플레이어가 없어도 좋아하는 멤버의 사진이 나오길 기도하며 덕질하는 아이돌 팀의 음반을 산다. 심지어 내 딸을 포함해 십대 여자 아이들은 작은 손에 쏙 들어오고 바닥이나 책상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기 편하다는 이유로 갤럭시 Z플립을 선호하기도 한다. 이들 세대가 크면 클수록 심미적 쾌감과 성능에 대한 만족, 사소한 감동 및 충동에 의한 소비와 합리적 이유를 바탕으로 한 소비와의 경계는 더 모호해 질 것이다. 이 세대는 이런 이유로 물건을 사고, 저 세대는 저런 이유로 물건을 산다는 명확한 분석과 판단은 더 어려워 질 것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건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면 지갑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일 것이다.

본질이 아닌 것에 감동을 받으면 본질에 대한 만족도도 높아질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일 것이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 소비자는 소비에 대해 합리적인 이유를 댈 것이기에 마케터는 구매의 “진짜” 이유를 알아내는 것이 더 힘들어지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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