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전문앱 '배달의민족' 서울도시철도 전동차 내 광고판. (사진=이톡뉴스)
배달전문앱 '배달의민족' 서울도시철도 전동차 내 광고판. (사진=이톡뉴스)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직업이 직업인지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광고들을 유심히 본다. 요즘엔 취업 관련 광고가 유독 눈에 띈다. 00 양성과정, 0000 기초반, 00 자격증 과정, 000으로 취업에 도전하세요, 와 같은 문구를 앞세운 광고들이다. 그런데 몇 개월 만에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만들어주겠다는 광고도 있다. 몇 개월 만에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던가?

전문가의 의미


사전은 전문가를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설명한다. 영어로는 expert, specialist, professional와 같은 단어들이 있다. 영어의 세 단어는 약간 뉘앙스가 다르다. 반대말을 보면 그 차이가 도드라진다. 각각 inexpert, generalist, amateur다. Expert는 기량의 숙련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어떤 한 직종이나 기술에 숙련된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 반대말인 Inexpert는 당연히 미숙하거나 기량이 미달인 사람이다.

Specialist는 특정 범주의 기술에 특화된 사람, 특정 범주의 기능과 재주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독보적이어서 그 범주에 속한 다른 이들 모두 그 특별함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의사의 경우, Specialist는 세부 전공으로 좁혀 들어가면 갈수록 그 가치가 도드라진다.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들 중에서 유별나게 특정 부분의 수술을 잘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Specialist인 것이다. 반면 의사여도 어느 한 분야에 특출 난 재주가 없는 의사, 어느 부서에 갖다 놔도 일을 잘하지만 어느 직무에 특화됐다고 말하기 곤란한 사람은 Generalist다. 운전면허를 따서 승용차를 모는 사람들이 Generalist라면, 택시 운전사, 버스 기사, 화물차 기사, 특수 차량 기사, 더 나아가 F1 드라이버는 Specialist다. 운전의 예에서 눈치챘겠지만 Specialist는 그 재능이 경쟁 상대와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특출 나면 날수록, 그런 사람들만이 그런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야일수록 그 존재가 희소하다. 결국 이 희소성으로 인해 Specialist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지만 Generalist는 누구라도, 언제라도 대체될 수 있다.

Professional의 반대말은 Amateur다. 사전에선 취미로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것이 생업이 아니면, 그러니까 그걸로 돈을 벌지 않으면, 설령 그 사람이 아무리 그 “취미로 하는 사람들” 중에서 독보적인 재주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그는 Amateur다. 세 단어의 의미를 종합하면 전문가가 어떤 사람인지 그림이 나온다. 전문가는 한 분야나 특정 기술에 숙련된 기능을 갖고 있는 사람이며, 갈고닦은 재주의 수준이 남달라 대체될 수 없거나 대체되기 힘든 특별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맞는 적절한 보상을 받는 사람이다. 이 설명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면 시간, 숙련, 성과와 대가라는 단어가 관통하고 있다. 특히 숙련과 차별화의 맥락에서 보면 타고난 능력과 함께 시간이라는 단어를 무시할 수 없다. 대학에서 관련 전공을 했거나 관련 기술을 익힐 수 있는 학원을 다녔다고 해서 전문가로 부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칼리그라피=이톡뉴스 디자인팀)
(칼리그라피=이톡뉴스 디자인팀)

자신을 입증할 수 있는 존재


대학에 들어갔을 때 광고 관련 자격증이 없어서 불안하다는 말이 동기들 사이에서 나왔었다. 카피라이터 자격증, AE 자격증, 감독 자격증 같은 거 말이다. 내가 알기로는 옥외 광고나 시각 디자인 쪽엔 관련 자격증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앞서 말한 이런 직종의 자격증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자격증이 없는 사람은 돈을 받을만한 사람인지 독보적인 재주로 입증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빚어낸 경험과 통찰이 만들어내는, 그 세월과 경험이 없이는 만들어낼 수 없는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 사람, 그러니까 업계에서 앞서 말한 것들을, 자기 자신을 입증할 수 있고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우린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다. 그 재주의 입증은 돈을 지불할 만한 사람임을 증명한다. 돈을 지불한 만한 사람임을 입증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재주가 그 돈의 값어치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그건 일종의 믿음이다. 그 사람에 대한, 그 재주에 대한, 결국은 그 전문가에 대한 믿음이다.

앞서 말했듯이 지하철역에도, 지하철에도, 아니 곳곳에서 전문가를 만들어준다는 광고를 본다. 몇 개월만 학원을 다니면 비전공자를 IT 전문가로 만들어준다고 한다. 3, 4개월만 교육을 받으면 영상 디자인, 시각 디자인을 총괄하는 콘텐츠 편집 디자인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기만이다. 사기다. 교육을 받는 사람도, 업계도 피해를 주는 광고다. 처남 같은 최상급 프로그래머에게 물어보면 코딩 배우고 막 업계에 들어온 애들은 그저 단순 노동만 시킨다고 한다. 촬영은 안 하고 편집만 주로 하는 후배들의 사연을 건너 들으니 몇몇 촬영 본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고 한다. 병원 홍보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의사의 인터뷰를 정면에서 찍었는데 어두워서 의사의 얼굴이 보이질 않는다. 초점도 안 맞는다. 이렇게 찍어 놓고 촬영했다고 돈을 달라고 한다.

전문가를 향한 여정


운전면허를 땄다고 해서 바로 택시나 버스를 몰 수 없다. 당연히 F1 머신 근처에도 갈 수 없다. 꿈을 꾸면 되지만, 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 속에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원하는 단계로 툭툭 넘어가면 좋겠지만 또 그렇지도 않다. 어디 인생이 내 맘대로 되던가. 4칙 연산에선 발굴의 실력을 보이던 초등학생이 분수나 소수 앞에서 좌절하는 것처럼 전문가로 향하는 여정에도 그런 장벽들을 만나곤 한다. 그래도 별 수 없다. 진짜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스페셜리스트, 프로페셔널이 되고 싶다면 학교와 학원 밖의 시간을, 아무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을지도 모르는 그 막막한 시간을 견뎌야 한다.

만족이 없는 직업이다. 이만하면 됐다는 말을 하기가 어렵다. 물론 종종 “뭐, 이쯤 했으면 됐어요.”하고 말한 적이 있지만 언제나 돌아서면 미련이 남았다. 완벽을 추구하지만 그 완벽에 다다를 수 없어 다음번엔 그 완벽에 좀 더 다가가길 희망하며 오늘도 카피와 영상 앞에서 괴로워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의 직업 세계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전문가라 하더라도 진정한 전문가라면 오늘의 결과에 백 퍼센트 만족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 업의 시간이 길어지고 그 시간 속에서 그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과 내공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자신에 대해 엄격해질 것이다. 잘한 것은 잘한 것 대로 담담히 인정하겠지만 실수도 보일 것이다. 어쩌면 실수가 더 크게, 잘 보일 것이다. 그 잘 보이는 실수, 오늘의 그 실수를 내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성찰하고 수정할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라는 존재는 어쩌면 스스로 자신을 수정하여 그 깊이가 더 해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완벽을 향한 여정에 있음을 알기에 겸손하게 살아가는 존재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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