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아닌 어른, 김장하 선생을 기록하다 (2022.12.29/뉴스데스크/MBC경남). (사진갈무리=유튜브 엠뉴 | MBC경남 NEWS)
'꼰대'가 아닌 어른, 김장하 선생을 기록하다 (2022.12.29/뉴스데스크/MBC경남). (사진갈무리=유튜브 엠뉴 | MBC경남 NEWS)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아빠, 좋은 남편도 되고 싶다. 요즘엔 좋은 어른도 되고 싶다. 여전히 “되고 싶다.”는 것은 아직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직 되지 못했다는 것은 저 되고자 함이 쉽게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면 누군가 그 이상형이 이러하다고 수학 공식처럼 명확하게 말해준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그러한 형상(形象)을 본 적이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닮고 싶었던 '어른'


저 바람 중, 오늘은 좋은 어른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학교를 다닐 때, 또는 여러 책을 읽거나 강연이나 강의에서 학자나 작가, 교수의 모습을 보고 “나도 저런 학자가 되고 싶다.”거나 “나도 저렇게 나이가 들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십 년도 더 전에는 정운영 선생님처럼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학자로서의 선생님도 좋아했고 칼럼니스트의 선생님, 방송인으로의 선생님 모습도 좋아했다. 나는 아직도 정운영 선생님의 유고집이라 할 수 있는 두 권의 책,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와 <자본주의 경제 산책>을 갖고 있다.

김훈 선생님처럼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지금도 김훈 선생님의 소설과 에세이집을 합해 열 권 넘게 갖고 있다. 사람이 글을 닮는지, 글이 사람을 닮는지는 몰라도, 어찌됐든 나도 김훈 선생님처럼 글만 보고도 그 사람의 깊이와 품격이 가늠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강사 시절이었던가? 어느 교수인지 강사가 새어 가는 내 머리를 보고 무심히 “그렇게 새다가는 송호근 교수님처럼 되겠어.”하는 말을 들은 후, 선생님의 모습과 그분의 책을 찾아 본 뒤엔, 나도 나이가 들수록 지성이 더 깊고 맑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염색을 하지 않아도 흰 머리칼 그 자체로 멋있는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런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할 엄두가 안 나는 어른도 있다. 닮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어른이 있다. 아니 애시 당초 저런 어른은 될 수 없으니 포기할 정도의 어른이 있다. 오늘 소개할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김장하 선생님이 그런 분이다.

'어른' 김장하


김장하 선생님은 1944년생이다. 은퇴는 불과 작년 5월에 하셨다. 1963년, 사천에 한약방을 여셨고, 그 뒤 진주로 옮겨 50년을 더 운영하신 남성 한약방의 문을 닫은 날이 선생님의 은퇴 일이다. 그 긴 세월동안 돈을 벌어 고등학교를 세워 키우셨고, 후에는 나라에 헌납하셨다. 지역의 학생들에겐 장학금을 주셨으며 지역의 크고 작은 의미 있는 일에도 돈을 아끼지 않으셨다. 건물에 세 들어 있는 자전거포의 임대료는 30년간 한 번도 올리지 않으셨고, 그동안 정작 본인은 차도 없으셨으며 수십 년 간 같은 소파에 같은 방석, 같은 찻잔을 쓰셨다. 두 사이즈는 커 보이는 양복 상의는 안감이 해져서 입을 때 셔츠 소매 끝의 단추가 종종 걸리곤 한다.

이 어른의 책을 쓴 김주완 기자는 7년을 취재했다. 본인은 그 사이 정년을 3년 앞두고 은퇴를 했다. 자유로운 백수가 된 그에게 지역 방송사에서 연락이 왔다. 함께 이 어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자고 제안을 했다. 마침 자신이 꼰대인지 좋은 어른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기자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떤 어른이 좋은 어른인지, 그거 하난 확실히 안다. 이 참에 그 어른, 좋은 어른을 세상에 소개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김장하 선생님인데 정작 주인공의 출연 분량이 많지 않다. 취재 기자나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이 꽤 괜찮은 공간에서 완벽한 세팅 하에 인터뷰를 한 거에 비해 선생님의 인터뷰는 한약방이나 등산로와 같은 일상적 공간에서 이뤄졌다. 애초에 다큐멘터리 제작도, 책의 집필도 허락한 적이 없으셨다. 그러니 그저 뵐 수 있는 자리에 가서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댈 수밖에. 게다가 질문의 답이라는 것이 자기 자랑일 수밖에 없으니 어르신은 대부분 입을 굳게 다물 수밖에 없었다.

김주완 기자의 책 제목 '줬으면 그만이지' 북커버.
김주완 기자의 책 제목 '줬으면 그만이지' 북커버.

"줬으면 그만이지"


어느 누구도, 어르신이 장학금을 언제부터 몇 개의 학교, 몇 명의 학생에서 줬는지, 그 정확한 시기와 숫자를 알지 못한다. 어느 누구도, 몇 개의 단체에 언제부터 얼마를 후원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아마 본인만 아시지 않을까? 아니다. 아마 본인도 모르실 거다. 진주 사람이라면 모두가 그 이름을 아는 분이고 존경하는 어른이지만 인터뷰 기사 하나 보기가 어렵다. 구청장 후보만 되도 세상에 내놓는 그 흔한 자서전도, 회고록도 없다. 이 다큐멘터리 이전까지 이렇다 할 방송 인터뷰도 없었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사진들을 보면 선생님은 늘 끝에 앉아 계신다. 상석이나 가운데 자리를 만들어 선생님 자리로 안내 해도 끝끝내 마다하시고 갓자리나 말석에 앉으신다. 그러니 속된말로 선생님이 센터를 차지하고 있는 사진이 거의 없다. 빛나는 일을 하셨지만 그 빛의 주인공이 되는 건 마다하셨다. 자신의 인생과 자산을 연료 삼아 지역 사회의 지역의 인재를 키우셨지만 그 어떤 보답도 원하지 않으셨다. 올 1월에 나온 김장하 선생님의 취재기를 담은 김주완 기자의 책 제목 <줬으면 그만이지>는 선생님의 이런 삶의 자세를 응축한 제목이라 할 수 있다.

무주상보시와 평범한 의인


다큐멘터리에도 나오는데, 불교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는 말이 있다. 그야말로 베푼 주체도, 베푼 사실도,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이 누군지도, 베푸는 순간 잊어버리면서 남에게 베푸는 걸 말한다. 성경의 표현을 빌리면 그야말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광고와 홍보 일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아 왔다. 기부를 하고 봉사를 해도, 겨울에 불우이웃을 위해 김장을 하고 연탄 배달을 해도 사진을 찍는다. 앞서도 말했듯이 신인이든 베테랑이든 정치인이라면 본인이 썼든 대필을 했든 자서전 출판이나 출판기념회는 당연한 일이고 그 기념회에서 그 정치인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것은 정치인 본인과 함께 찍은 사람 모두에게 홍보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 사람도 많고 정치를 꿈꾸며 자기 관리하는 사람도 많은 만큼 세상도 더 좋아졌을까? 다큐멘터리 말미, 한약방 건물에 세를 내어 자전거포를 운영하는 사장은 “어르신 같은 사람이 (진주에) 댓 사람 있으면 땡이지.”하고 말한 후 엄지를 치켜 올린다. 이후 “그런데 한 사람 밖에 없으니 불행한 거지”라고 말을 잇는다. 어디서 들어 본적이 있는 표현이다. 창세기 18장,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겠다는 하나님에게 아브라함이 간청 한다. 아브라함이 묻는다. “하나님. 이 악인이 많은 동네에도 의인이 있을 텐데 함께 멸하시는 건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답한다. “그래? 그럼 네가 그 동네에서 의인 50명을 찾으면 내가 그 지역을 용서하겠다.” 이 대화는 계속 이어진다. 그러면서 멸망을 피할 수 있는 의인의 숫자는 계속 줄어든다. 45명, 40명, 35명, 30명...결국엔 열 명까지 줄어든다. 그 열 명의 의인이 없어 멸망한다.

선생님께 장학금을 받아 학교를 졸업한 학생 한명이 어느 날 선생님을 뵙고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평범하게 살아서 죄송합니다.”하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선생님께선 “무슨 소리냐.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다.”하고 말씀해주셨다고 한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평범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 기준을 가능할 수 없다. 어쩌면 세상을 어제보다 더 낫게 만들기 위해 애쓰면 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브라함이 애타게 찾던, 도시를 구원할 의인 50명이 그런 사람인지도 모른다.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롯과 같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나그네를 집에 들여 묵을 곳을 제공하고 먹을 것을 대접하는 사람, 공동체의 폭력에 맞서 소외 된 이를 보호하고 도우려 애쓰는 사람 말이다. 선생님 같은 어른이 될 수 있는 방법도, 그런 기대도 없다. 닮으려야 닮을 수 없는 어른이다. 그저 선생님이 말씀하신 평범한 사람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있다. 함께 힘을 모으면 도시를 구할지도 모르는 그런 평범한 사람.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