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혁명의 후유증
신체에 새겨진 이력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건강과 체중감량만을 위한 다이어트는 끝난 것 같다. 남들에게 몸매를 보여주고 싶은 목적으로 식이조절을 하고 운동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 광고엔 바디프로필 스튜디오 광고들이 제법 자주 눈에 띈다.

SNS에도 자신의 멋진 바디 프로필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런 사진은 대체로 직업적인 이유로 찍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트레이너나 전문 모델, 연예인들이 대표적이었으나 요즘엔 일반인이 이 시장의 주 고객이다. 일반인들의 도전이 늘어난 탓인지 바디프로필 촬영에 도전한 것을 후회한다는 사연도, 그 후유증에 대한 뉴스도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운동이 직업이 아닌 사람이, 남에게 얼굴과 몸을 보여주는 것이 직업이 아닌 사람이 갑자기 운동을 해서 바디프로필 사진을 찍고 나면 왜 후회와 후유증을 남기는 걸까? 실패한 혁명에 빗대어 생각해보려 한다.

부산 해운대구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해운대구 보디빌딩협회장배 Ms&Mr 선발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2018년).  (사진=연합뉴스)
부산 해운대구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해운대구 보디빌딩협회장배 Ms&Mr 선발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2018년). (사진=연합뉴스)

 

실패한 혁명의 후유증


한순간의 사진을 위해 안 하던 운동을 격하고 오래 한다. 평소 먹던 것도 멀리하고, 먹지 않던 건 억지로 먹는다. 이 과정은 다이어트가 아니라 조각에 가깝다. 렌즈가 보기에 좋은 피사체로가 되기 위한 조각이다. 살인적인 운동과 그보다 더 끔찍한 식이 조절을 통해 완성된 몸으로 사진을 찍고 나면, 대부분의 일반인은 그 반동으로 극심한 요요 현상에 시달린다. 이 요요현상은 실패한 혁명의 후유증과 닮았다. 혁명보다 무서운 건 반혁명이고, 성공하지 못한 혁명 뒤에 찾아오는 보복은 혁명의 불길보다 잔혹하고, 정치와 사회의 보수화는 혁명 이전보다 견고해지기 때문이다. 찰나의 불꽃놀이 같았던 보디 프로필 사진을 위해 혁명의 급류를 감수했던 신체는 그 물결이 쓸고 나간 뒤에 보상을 요구한다. 몸이 견디는 동안 욕망을 참았던 위장은 탐욕스러워진다. 탄수화물과 단맛과 매운맛과 짠맛으로 달래도 달래어지지 않는다. 무한정 넣어준다. 한도는 없다. 그래도 보상은 완료되지 않고 위로는 지연된다. 그 결과, 신체는 바디프로필 사진 이전의 상태보다 더 망가진다. 급격히 줄었던 사이즈는 그전보다 더 늘어난다.

SNS를 통한 자랑은 대중의 환호를 부른다. 이 영광의 순간은 마치 시골 소읍에서 관군과 벌인 한 번의 전투에서 승리한 혁명군이 잠시 점유한 하잘 것 없는 읍사무소나 작은 시골 파출소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을 때 느끼는 승리의 희열과 같다. 그러나 이어지는 전투에서 승리가 반복되지 않고, 결국엔 혁명이 실패하면, 그래서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정치 체계를 이식받아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사회처럼 새로운 몸으로 “나”라는 신체를 정복하여 다스리며 사는 것이 좌절되면, 저 빛나던 사진은 역사의 구석으로 밀려난다. 바디프로필 사진과 그것을 SNS에 올리는 것은 그렇게 실패한 혁명만큼 허무한 일이다.

신체에 새겨진 이력


명사 Profile은 “옆얼굴”, “옆모습”이라는 뜻과 함께 “개요”라는 뜻도 있다. 동사로 쓰일 때는 “개요를 알려준다.”, “개요를 작성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재미있는 건 명사 프로파일의 유래다. 원래는 인물의 윤곽을 대략적으로 그린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동전에 위대한 업적을 세운 왕의 옆얼굴을 새겨 넣으면서 “옆얼굴”이란 뜻으로 굳어졌다는 설이 있다. 다른 하나의 설은,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였던 안티고노스가 자신의 초상화를 그릴 때 항상 옆모습을 그리게 한 것이 최초라는 설인데, 안티고노스가 눈이 사시였기 때문에 그것을 감추기 위해 옆얼굴을 그리게 했다고 한다. 어느 쪽이 진짜 기원이든, 결론적으론 두 개의 기원 모두, 사람의 과거와 관련되어 있다. 과거의 업적을 드러내기 위해서든,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해서든 말이다. 이런 맥락은 범죄 분석에서 프로파일이라는 단어의 쓰임새와 일맥상통한다. 범죄 분석에서의 프로파일이 현재 벌어진 사건의 흔적과 증거, 사건들의 유형을 모아 범죄자의 내면에 형성된 성격과 심리 지층의 파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사건과 그 흔적 속에 한 인간의 현재와 그 현재를 만든 과거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신체 또한 마찬가지다. 현재의 신체는 살아온 대로 형성된 것이다. 직업병도, 근골격계 질환도 결국엔 생계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 몸에 새겨진 일종의 프로필이다. 신체는 주체의 삶을 세상에 현현(顯現)한다. 결국, 신체 프로필은 유니폼과 같다. 말투이자 사투리, 버릇이며 태도와 닮았다. 이런 이유로, 바디 프로필에 적합한 몸을 만드는 것은 찰나를 위한 역사의 조작과 닮았다. 그것은 삶으로 형성된 자신의 신체에 가하는 인위적 조작이다. 그것은 자기 삶의 부정이자 신체의 부정이다. 자기 배반이자 과거의 자기를 축출하려는 쿠데타다. 결국 자기부정의 후유증은 현재의 나에서 미래의 나로까지 이어진다. 항구적 혁명으로 이어가지 못하면 바디 프로필은, 결국 나를 망치는 범죄가 된다. 에리히 프롬이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말했듯이, 성공한 혁명가는 정치인이 되지만 실패한 혁명가는 범죄자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력을 기억하는 신체


신체는 주체의 여정과 동행한다. 오늘의 신체엔 주체의 역사가 담겨 있다. 신체는 주체의 역사를 외부로 드러내며 양자의 고유성을 동시에 획득한다. 주체는 신체를 통해, 신체는 주체를 통해 스스로를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래서,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기 위해 급격하게 몸에 가하는 인위적 충격은 자기부정이다. 자기 자신을, 살아온 삶을, 더 나아가 자신의 신체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의 애정을 부정하는 것이다. 마르면 마른 대로, 뚱뚱하면 뚱뚱한 대로 당신은 당신이다. 그것이 당신의 신체에 새겨진 이력이다. 세상의 모든 회사가 당신이 낸 이력서에 만족하여 당신을 채용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듯이 신체에 새겨진 이력 또한 당신과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 긍정되면 된다. 사람이든, 일이든, 직장이든 매칭만 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 또한 당신이 원하는 이력이 드러난 신체를 선택하고, 당신의 신체를 통해 드러난 당신의 이력을 선택하는 한 사람을 만나면 된다. 연예인, VJ, 치어리더, 레이싱 모델, 에로 배우, 포르노 배우, 누드모델이 아니라면 지금의 신체를 갖고 그냥 살면 된다. 모두에게 전시되는 삶, 그래서 그 전시를 통해 자본을 획득하는 삶,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한 사람에게만 그 이력이 통하면 된다. 당신의 이력에 딱 맞는 누군가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니까.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사진=위키피디아, 저작=퍼블릭 도메인)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사진=위키피디아, 저작=퍼블릭 도메인)

 

세월은 신체에 깃든다. 마음가짐도, 삶에 대한 태도도, 나에 대한 자의식도,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문제의식도 함께 깃든다. 프로필은 그렇게 무거운 단어다. 그것이 사진이든, 이력서든 매한가지다. 그 단어가 “바디”에 쓰인다고 그 무게가 가벼워지진 않는다. 사진은 찰나를 담는다. 그 포착된 찰나를 통해 우린 타자의 인생과 삶을 엿볼 수 있다. 진정한 사진, 좋은 사진은 찰나를 통해 과거와 오늘, 미래, 더 나아가 영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바디 프로필 사진에도 찰나가 담긴다. 그러나 그 찰나엔 과거도 미래도, 당연히 영원도 없다. 그 찰나는 파편적이다. 파편인 찰나는 프로필이 될 수 없다. 아무런 연대기도 없는 찰나, 그 찰나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 선다. 신체는 삶을 밀고 나가는 무기다. 그리고 나라는 실존을 세상에 드러내고, 위치 지을 수 있는 유일하고 고유한 부피다. 그 부피로 우린 세상에 존재한다. 그래서 신체는 내 것이지만 시선의 것이기도 하다. 시선 앞의 신체와 그 부피는 객관적일 수 없다. 우리 모두의 오감과 이성에는, 칸트의 표현을 빌리면, 선험적인 요소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객관적인 기준을 찾을 필요도, 설령 있다고 해도 스스로를 맞출 필요도 없다. 인생도, 바디도 마찬가지다. 고유한 자신을 세상에 보여줄 소중한 신체를 스스로 배반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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