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진의 대표작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저마다, 어떤 배우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내 경우엔 강수연 배우를 생각하면 언제나 <지독한 사랑> 속의 단정한 단발머리와 당차고 선명한 표정이 먼저 생각난다. 오늘 얘기할 영화는 한혜진 배우의 대표작이라고 생각하는 영화다. ‘아, 한혜진이 정말 연기를 잘하는 배우구나.’ 절감했던 영화이자 황정민이 주연인 줄 알고 봤지만 한혜진이 주연임을, 영화 끝날 때쯤 깨닫게 되는 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는 사람이 살면서 어떤 힘으로 살아가는지, 그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힘은 무엇인지 절절히 깨닫게 해주는 영화다.

'남자가 사랑할 때(Man In Love, 2014)' 스틸컷.
'남자가 사랑할 때(Man In Love, 2014)' 스틸컷.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다. 사채 수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마흔이 넘은 건달과 혼자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며 성실하게 살아온 은행원의 사랑 이야기다. 이 사랑 이야기는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다. 건달이 똘마니 몇을 대동하고 사채를 수금하러 아버지가 누워 있는 병원까지 가서 만나게 된 은행원에게 한눈에 반하면서 사랑이,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후, 돈을 갚는 대신 한 시간씩, 몇 십 번의 데이트를 하기로 한 이상한 계약서를 쓴 후, 두 사람은 서먹서먹한 데이트 비슷한 만남들을 이어가면서 서로를 알아간다. 이후 여자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자의 사랑을 받아준 후 함께 새 삶을 살아가기로 한다. 이 이후의 이야기까지 하면 길어지니 이쯤 하자. 이야기의 끝은, 남자가 병으로 생을 마감하고 여자 혼자 남아 삶을 이어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왜 하필 나였는지


이 영화를 다시 생각하면서 젊은 시절, 연애할 때마다 상대방에게 물었던 질문들이 새삼 생각났다. “왜 날 사랑한 거야?”, “내가 어디가 그렇게 좋아? 나 같은 놈이 뭐가 좋아서 만나는 거야.”와 같은, 이런 질문을 만나는 사람마다 했었다. 왜 나인지, 왜 나여야만 했는지 불가사의했고 스스로도 납득이 안 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이런 질문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사랑이 끝난 후에도 마찬가지다. 한 번이라도 연애를 했다면, 좋은 추억을 갖고 헤어졌다면,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사람이 참 좋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우린 자기 자신을 멋있고 예쁘고 능력 있고 성격 좋으며 심지어 섹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그런 사람이라 여기고 그런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사는 것이 한때 나를 선택해서, 나를 사랑했던 그 좋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랑은 극적이다. 왜 하필 나인지 상대가 답할 수 없기 때문에 드라마틱하다. 내 사랑은 아주 평범했다고 말하는 당신은 겸손한 사람이 아니라 아주 교만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그 사랑도 누군가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나 같은 사람 따위를 왜 사랑했는지 생각하며 자신을 폄하하는 것 또한 그 사랑과 사랑을 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당신은 당신만의 색이 있다


하루키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주인공은 자신이 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린 다 색을 갖고 있다. 색이 없는 사람은 없다. 혹자는 "난 개성이 없어.", "난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누군가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다면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당신이 누군가와 사랑을 했다면 그 이후엔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그 누군가는 당신의 찬란한 색에 반하여 당신에게 모든 걸 주고 싶어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사랑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난, 뭐, 무색무취하지." 하는 말을 입에 올린다면, 그건 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소설 속 주인공, 쓰쿠루의 착각, 혹은 오만은 이 지점에 있다.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사랑했던 친구들과 가족과 연인이 있었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확신이 없다는 것은 그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은 누군가에게,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택된 사람이다. 그 사실을, 그 자명한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남자가 사랑할 때(Man In Love, 2014)' 스틸컷.
'남자가 사랑할 때(Man In Love, 2014)' 스틸컷.

 

절실한 당신


나나 당신이나 누군가에게 절실한 존재다. 그러니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 자리에서 사랑의 기쁨이 만끽해라. 두려워할 필요도, 의심할 필요도 없다. 영화 속 남자 주인공처럼,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도망갈 필요도 없다. 살아 있는 동안,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의 의미를 지탱해 주는 의미이자 존재다. 내가 뭔가 하지 않아도 그저 민들레로 있어도 날 절실히 원하는 이에게 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주체와 존재는 그렇게 타자의 절실함으로 지탱된다. 타자가 내어준 의미의 어깨에 기대어 이 의미가 사라진 것 같은 세상을 살아간다. 얼마 전 별세한 코맥 맥카시의 소설 <더 로드>의 주인공 부자가 종말 이후의 지구에서의 삶을 서로에게 의지하며 헤쳐 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그 관계를 때론 사랑이라, 때론 우정이라, 때론 무엇이라 부른다. 당신이 느끼는 대로 부르는 그 감정으로 그 타자가 내어준 의미의 어깨와 그 어깨에 기댄 당신과의 관계에 이름을 붙인다. 그 관계로 인해 타자가 어깨에 입은 의미는 갑옷과 같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갑옷은 어깨의 주인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깨에 기대어 삶을 헤쳐 나가는 이를 보호한다. 정작 당신의 의미를 깊게 새긴 갑옷을 어깨에 두툼하게 만들어 씌운 이는 당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막기 위해, 당신이 그 어깨에 쉬는 동안 커다란 방패를 치켜든다. 영화 <영웅>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막기 위해 쉴 새 없이 칼을 휘둘렀던 이연걸처럼 그 화살을 피하지 않고 막아낸다.

우리는 민들레다. 아니 우리 인생 자체가 그런 존재다. 나와 내 인생은 작고 무의미하지만 동시에 크고 의미심장하다. 절대적이지 않고 주관적이며 상대적이다. 세상의 많은 아빠들이 딸이 처음 만들어준 모조 플라스틱 보석으로 만든 팔찌를 소중하게 차고 다니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하나의 존재는 내게 있어 가늠할 수 없는 무게를 갖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지탱하는 존재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작고 의미 없고 평범한 존재다. 살면서도 뉴스가 될 리 없고 죽어서도 뉴스가 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민들레 같은 존재다. 흔해빠진 꽃이지만 민들레의 약효가 필요한 사람에겐 절실한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폄하하는 실수를 하지 마라. 자존감 같은 것 때문에 그러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잊지 말고, 그 귀한 마음을 잊지 말고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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