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유형의 에이스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구기 종목의 에이스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특출 나고 독보적인 재능으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며 팀의 성적을 이끄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의 장명부나 MBC 청룡의 백인천, 시카고 불스 시절의 마이클 조던, LA레이커스의 르브론 제임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스테판 커리 같은 사람이다. 이런 유형의 에이스는 팀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어서 한 명의 에이스 투수가 나올 때마다 승리를 한다면 최소 이십 승 정도는 보장 될 수 있다.

농구 같은 경우엔 공간과 선수의 숫자가 적고 슛 감각 같은 것이 타고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한 두 명의 에이스가 점수의 절반 이상을 넣으면서 팀 성적을 이끌고 갈 수도 있다. 다른 유형의 에이스는 본인도 잘 하지만 함께하는 동료도 살려서 팀 전체의 사기를 높임과 동시에 각 선수의 소위 STAT, 통계적 결과도 높여서 팀 성적뿐만 아니라 팀 전체의 몸값도 올리는 에이스다.

Nikola Jokic(오른쪽, 2017년 사진). (사진=연합뉴스)
Nikola Jokic(오른쪽, 2017년 사진). (사진=연합뉴스)

 

필자는 최근 후자의 유형에게 가까운 에이스를 보는 재미에 빠져 있다. 바로 NBA 덴버 너겟츠의 니콜라 요키치 선수다. 덴버는 이번 시즌 우승했다. 1967년 창단 이후, 1976년 NBA에 명함을 내민 이후 처음 우승했다. 모든 팀 스포츠가 그렇지만 양 팀의 선수 숫자는 동일하다. 축구나 핸드볼의 경우, 경기 도중 퇴장으로 그 균형이 깨지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론 그렇다.

이렇게 양 팀의 선수 숫자가 동일했을 때, 차이를 만드는 건, 에이스의 창의력이다. 덴버의 니콜라 요키치가 그런 에이스다. 이 사람의 별명은 조커, 20세기 후반까지 국경선도 없었던 세르비아 출신이다. 일단 덩치만 보면 90년대 정통 센터인 패트릭 위잉이 생각난다. 그러나 그의 패스 센스와 농구 지능은 매직존슨과 제이슨 윌리엄스, 래리 버드를 떠올리게 한다. 이 선수가 더 대단한 건 자신도 플레이오프 내내 트리플 더블(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각 열 개 이상)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동시에 팀 주전 모두가 이 선수와의 시너지로 인해 결승 시리즈 내내 돌아가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는 것이다.

물론 가장 주목을 받은 건 투 톱을 이뤘던 가드 자말 머레이와 장신 슈터 마이클 포터 주니어다. 요키치의 절묘한 조율과 패스로 인해 덩크만 잘하는 선수로 인식 됐던 애런 고든이 다양한 재능을 뽐냈고, 준수한 슈터였지만 화려하진 않았던 칼드웰 포프도 미국 스포츠 뉴스를 장식했다. 심지어 신인 급의 크리스챤 브라운과 브루스 브라운도 깜짝 활약을 하며 미디어를 달궜고, 은퇴를 코앞에 두고 있는 왕년의 괴물 센터 디 안드레 조던도 자기 몫을 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이번 덴버 너겟츠의 우승을 보면서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느꼈다. 비교적 스몰 마켓인 덴버이기에 대형 스타를 스카우트 할 여력은 없었을 것이다. 우승 경험도 없고 역사도 짧은 팀에게 스타 선수가 올 리도 없었을 테고 말이다. 그러나 이 팀은 그 해(2014년) 드래프트 전체 41위로 뽑은 이 세르비아 출신 센터를 중심으로 알차게 팀을 빌드 업 했고, 이 선수를 뽑은 지 대략 십여 년 만에 우승의 결실을 맺었다.

이 우승이 더 의미가 있는 건 이 팀의 구성이 요즘의 NBA 추세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NBA의 스타급 선수들은 우승을 위해 우승에 근접한 팀으로 이적하면서 다른 팀의 에이스나 슈퍼스타를 데려와 달라는 조건을 걸곤 했다. 케빈 듀란트도 멤버가 좋은 피닉스 선스로 가서 우승을 노렸고, 카이리 어빙도 달라스 매버릭스로 가서 우승을 꿈꿨다. 르브론 제임스도 앤써니 데이비스와 LA 레이커스에서 만나 우승에 도전했지만 서부 지구 결승에서 만난 덴버에 힘 한번 못 써보고 4 : 0 완패를 당했다.

이렇게 슈퍼스타 라인업, 소위 레알 마드리드가 한때 주창했던 갈락티코 형태의 팀 구성을 통해 단박에 우승에 도전하려는 야망을 갖고 있는 팀은 어디에나 있다. 또 그런 유명한 선수를 데려와 자국 리그의 수준을 단번에 올려 세계적인 리그로 만들려는 나라도 있다. 1970년대 펠레를 데려갔던 미국의 프로축구 리그도 그랬고, 인도와 중국의 프로축구 리그가 그랬으며,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축구 리그도 그런 전략을 펴고 있다.

승리 자축 '배치기' 골 세리머니. 2022년 4월 20일(현지시간) 스페인 팜플로나의 에스타디오 엘 사다르에서 열린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33라운드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루카스 바스케스(왼쪽·30)가 후반전 추가시간 6분에 오사수나를 상대로 팀의 세 번째 골을 넣은 뒤 골을 합작한 동료 비니시우스 주니오르(21)와 배치기 세리머니를 하면서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승리 자축 '배치기' 골 세리머니. 2022년 4월 20일(현지시간) 스페인 팜플로나의 에스타디오 엘 사다르에서 열린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33라운드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루카스 바스케스(왼쪽·30)가 후반전 추가시간 6분에 오사수나를 상대로 팀의 세 번째 골을 넣은 뒤 골을 합작한 동료 비니시우스 주니오르(21)와 배치기 세리머니를 하면서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팀이든 리그든 자본과 유명 선수의 힘만으론 최고 레벨에 단박에 오를 수는 없다. 이번에 자국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 FA 컵까지 우승하며 소위 트래블을 달성한 맨체스터 시티도 이 자본과 유명 선수의 이름값만 믿고 포지션과 팀 케미스트리 고민 없이 유명 선수를 마구잡이로 사와 시행착오를 겪었었다. 이번 우승은 그 시행착오 끝에 완벽한 전술과 효율적인 전술 운영, 감독이 원하는 딱 그런 선수만 사오는 구단 운영 등이 조화를 이뤄 결실을 맺은 것이다. 물론 이것도 다 만수르 형님의 엄청난 자본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만 말이다.

진짜 에이스가 일하는 법


최근 진행한 프로젝트에선 유독 에이스를 자임하는 높은 사람들을 자주 만났다. 이들은 대체로 부하 직원에게 전권을 주는 척 하면서, 카피나 시나리오를 검토해달라는 담당 직원의 건의를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간다. 아랫사람 입장에선, 이 단계에서 검토를 해주셔야 최소한 내용적인 면에서는 수정을 줄일 수 있다고 의견을 개진하며 검토를 재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많은 부분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일이 진행된다. 그 후 어느 정도 진행 된 결과물, 심지어 다 만들어진 홍보 영상의 시사를 하고나면, 그때서야 이 윗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방향이 안 맞다, 최근 00님(가장 위에 계신 분이다. 예를 들어 시장님, 구청장님, 청장님 같은)의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등의 말을 한다. 그야말로 시나리오 단계부터 뜯어 고쳐야 될 말을 하는 것이다. 자막의 색깔이나 크기, 폰트의 디자인이 자기 맘에 안 든다고 했던 상관들이 양반으로 느껴질 정도다.

반면 부하 직원에게 맡길 땐 확실히 맡기는 사람도 있다. 결과물을 갖고 오면 “잘 봤다. 난 이런 쪽의 전문 지식은 없으니 전문가들하고 상의해서 마무리 하라.”고 말하는 부서장도 있다. 이런 부서장들의 특징은 일 잘하는 사람에겐 일정 수준 이상의 권한을 주고 일을 맡긴다는 것이다. 또 할 수만 있으면 최대한 자기 부서에 오래 데리고 있으려 한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공무원은 빠르면 1년, 길어도 2년 안에 재배치된다. 그래서 올 봄 우리와 일했던 담당 주무관이 가을엔 없을 수 있고 내년에 못 보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종종 몇 년이 지나도록 안 바뀌는 사람이 있다.

필자와 자주 마주하는 구청과 시청의 홍보실, 또는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의 홍보 담당 주무관들 중에도 그런 경우가 있다. 이렇게 안 바뀌는 사람의 특징은, 앞서 말했듯이 상사인 과장, 심지어 더 높은 국장이 그 사람의 업무 능력을 높이 사기 때문이다. 또 그 사람이 그 일을 계속하면 할수록 부서의 평판은 물론이고 자신의 평판도 유지되고 올라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일이 잘 되고 있는지 일일이 챙기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하기 때문에 높은 위치에 있는 자신은 부서의 큰 그림을 그리고 운영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상생과 윈윈의 선택인 것이다.

팀 퍼포먼스라는 말이 있다. 개인기보다 팀 단위의 능력과 운영을 말한다. 단체 스포츠에서 팀 퍼포먼스가 좋다는 것은 특출 난 선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적재적소에 알맞은 선수를 기용하고 이 선수들이 전략적으로 톱니바퀴처럼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골을 넣는 사람이 있으면 수비를 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지친 에이스가 쉴 때 그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 몇 분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선수도 필요하다. 지난 시즌 덴버 너겟츠가 그랬다. 왕년의 스타 센터였던 디 안드레 조던은 작은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가 왕년의 영광에 취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받아들였기에 니콜라 요키치가 몇 분이라도 쉴 수 있었다.

애나 어른이나, 속된 말로 “내가 낸데”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젊은 친구들은 SNS를 통해 자기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고 어른들은 어깨에 힘주고 나이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세상은 혼자서 살 수 없다. 그야말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요즘 뉴스를 보다보면 에이스가 그리워진다. 팀의 우승을 위해 팀원과 팀을 에이스로 만들어줄 진짜 에이스가 그리워진다. 슬램덩크의 채치수처럼 화려한 도미가 되기보단 가자미가 되어서 다른 팀원들을 도미로 만들어줄 진짜 에이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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