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다양성, '정치의 다양성'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7월 말에서 8월 첫 주 사이, 대략 4, 5일에 걸쳐 울산광역시 시의회 소속 스물두 명의 시의원과 인터뷰를 했다. 시의원 당 길게는 50분, 짧으면 35분 정도 소요 됐다. 대부분의 내용은 8대 의정활동 1년을 회고하고, 이 기간 발의한 조례 중 하나를 소개하는 것이었기에 주요 멘트는 사전에 준비되어 있었다.

필자가 깊은 인상을 받은 건 이런 공식적인 내용의 촬영 후 필자가 직접 준비한 돌발질의 응답 시간에 시의원들의 발언 내용이었다. 그 깊은 인상을 바탕으로 정치에 대한 사소한 생각 몇 가지를 써 보려 한다.

2023 울산공업축제 공업탑 출정식 모습(6월 1일).(사진=울산광역시의회 홈페이지)
2023 울산공업축제 공업탑 출정식 모습(6월 1일).(사진=울산광역시의회 홈페이지)

 

'생활 정치'가 출발하는 곳


우선, 상투적으로 소위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그 말의 참뜻을 체감했다. 이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시의원들의 프로필도 보고 보도 자료도 찾아 봤다. 연령은 1950년대 중반에서 1980년생까지 있었다. 내가 프로필에서 유심히 본 건 이들의 정치적 성장 과정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분들 대부분이 울산이 고향이거나, 최소한 울산에서 인생 대부분을 보낸 분들이다. 초중고는 물론이고 대학도 울산 및 인근 지역의 학교를 나왔으며 직장은 말할 것도 없다. 이후, 지역의 봉사 단체나 직능 단체, 협의체 등에서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 했다. 그 후 구의원을 거쳐 시의원으로 나아갔다.

지역에서 차곡차곡 능력과 인지도를 쌓은 후 지역 정치에 진출했기 때문에 지역 사회에선 낯설지가 않다. 대부분의 시의원들은 내 아들이랑 같이 학교를 다녔거나, 내 아들 친구 아빠이거나, 내 친구 남편, 옆 동에 사는 누군가이다. 울산 뿐 아니라 지역 정치인이 성장하는 과정은 대체로 비슷할 것이다.

이러한 성장 배경이 일종의 정치 참여의 동기로 작용한다. 모든 시의원들의 정치 참여의 도화선 중 하나가 바로 지역에 대한 애착이다. 최소한 난 그렇게 느꼈다. 자기 지역구에서 낳고 자란 사람, 자기 지역의 기업에서 생계를 이어간 사람으로서 자기 지역의 오늘과 내일을 고민하고, 지역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고 좀 더 나은 지역으로 만들고 싶어 정치에 뛰어들었다. 이 지점에서 난 생활 정치의 참뜻이랄까, 이데올로기의 색깔이 없는 정치, 구체성 있고 실천이 있는 정치의 의미를 포착했다.

예전에도 이런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었다.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지역의 단체장이나 광역 및 기초 의원은 지역에 뿌리는 두고 있는 사람을 선호했었다. 예를 들어 내가 사는 지역인 부산 남구의 경우, 구청장인 오현택씨는 여당 소속 정치인이다. 난 그의 프로필을 보고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는 아니지만 이 사람이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역의 오래 된 초등학교인 용호초등학교를 시작으로 경성대학교에서 학부를, 부경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녔다. 게다가 구의원 두 번, 시의원 두 번을 했다. 이 정도로 지역 사람이고, 이정도로 지역 정치 경험이 있다면 솔직히 어떤 당에서 나와도 지역을 위해 일 할 만 한 사람, 아니 일을 잘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으로써의 정치


두 번째 든 생각은, 막스 베버의 책 제목을 빌려 와 말하면, 직업으로써의 정치는 생각보다 고된 일임을 느꼈다. 물론 연봉을 받는다. 작년 기준으로, 울산시의원의 연봉은 5천8백이다. 뭐, 많다하면 많은 건데 이들의 업무량과 감내하는 것들을 감안하면 결코 많은 돈은 아니다. 인터뷰 기간 시의원들에게 몇 가지 공통 질문을 했다. "후배가 정치를 하겠다고 오면 격려하겠나, 말리겠나?"하는 질문을 했고, "의정활동 1년엔 몇 점을 주고, 가장으로썬 몇 점을 주겠나?"하는 질문도 했다. 전자의 질문에서 격려하겠다고 말한 시의원은, 내 기억이 맞는다면 딱 한 명이었다. 나머지 시의원들은 다들 말리겠다고 했다.

Max Weber(1918). (사진=위키백과)
Max Weber(1918). (사진=위키백과)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우선 사생활이 없다고 했다. 그들은 주말이고 휴일이고 간에 민원의 현장에 나가야 했다. 평일에는 간담회, 협의회,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 횟수가 적게는 하루에 서너 번, 많으면 열 번 가량 될 때도 있다. 아침에 나오면 밤 열두시쯤 들어가는 생활이 임기 내내 이어져 온 것이다. 게다가 이런저런 잡음을 피하기 위해선 사적인 인연을 거의 끊고 살아야 했다. 이런 이유로 집에선 점수를 잃는 것이다. 그래서 의정활동엔 C나 D 사이의 점수(6,70점)를 줬지만, 가장으로선 F는 기본이고 20점을 준 시의원도 있었다. 아내에게 구박을 받는 건 당연한 것이고, 애들한테 미안한 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후배의 정치 참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다른 질문을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람이라면 정치를 해도 된다, 하는 덕목은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대답은 한결 같았다. 사생활을 희생하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고, 봉사 정신, 겸손함, 배우려는 자세, 지역을 위해 일하겠다는 자세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 또한 "내가 사는 동네, 좀 바꿔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이 자리까지 온 것이었다.

사람의 다양성, '정치의 다양성'


사실, 솔직하게 말하면, 같은 당 소속 의원 스물한 명에 다른 당 의원이 한 명 뿐인 시의회 인터뷰라 지루할 것 같았다. 내용이 반복되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그러나 그건 그야말로 기우였다. 캐릭터가 다 달랐다. 외모, 목소리, 과거 배경, 미래 비전, 관심 이슈, 그 이슈의 해석, 지역구와 울산시가 처한 문제 인식 등등에서 완전한 차이를 보였다. 울산시의회를 음식에 비유하면 어떤 음식이 적절하겠냐는 질문에 많은 시의원들이 비빔밥을 이야기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내용을 반추하면서, 각자의 방법으로, 고유한 생각을 바탕으로 자기가 낳고 자라고 살고 사랑하는 지역을 더 가꾸고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이 공적인 방법으로, 공적인 영역에서 드러나는 것이 지역 정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같은 지역 안에서도 사는 동네가 다르고 성장 배경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니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끌어주면 의정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지역을 위한 정치, 풀뿌리 민주주의의 다양성은 정당의 다양성이 아니라 사람의 다양성에서 출발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생각 끝에 아쉬움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울산시의회의 시의원 대다수는 마흔을 넘긴 남성이다. 선거 때마다 열심히 찾는 청년은 없고 여성 의원도 세 명 뿐이다. 당연히 다문화 가정 출신이나 이민자 출신도 없다. 지난 27년 간 광역시도 단체장에 여성이 당선 된 경우는 없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여성 광역시·도지사 후보는 전체 54명 중 10명으로 여성공천비율은 18.5%로 역대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으나 당선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기초단체장 후보 568명 중 여성 후보는 33명으로 비율은 5.8%였다. 당선자는 전국 226명의 기초자치단체장 중 단 7명, 3.1%에 불과하다. 또, 광역의회 여성의원의 비율을 19.8%, 기초의회 여성의원 비율은 33.4%다. 내가 미처 자료를 못 찾아서인지, 그런 경우가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광역시도 및 기초단체장은 물론이고 광역 및 기초 단체 의원의 후보로도 다문화 시민이 나선 경우는 없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는데 정치는 좀 느리게 변하는 모양이다. 우리 사회는 다양해지고 있다. 아니 이미 다양해졌다. 정치에, 특히 지역 정치에 이 다양성, 변화의 흐름이 먼저 반영되어야 하지 않을까? 콩고 출신 연예인인 조나단과 씨름 선수 웬디가 언젠간 각각 광주와 안산에서 구의원, 시의원이 되는 날을 꿈꿔본다. 그 꿈이 현실이 되어야 우리가 어디 가서 글로벌 대한민국이라 말할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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