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형(명지대 교수, 서울시립교향악단 이사장) 칼럼@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이톡뉴스)] 옥사나 리니우(리니프, Oksana Lyniv). 우크라이나 출신의 떠오르는 여성 지휘자로 본인은 ‘리니프’라는 표기를 선호한다.

우크라이나어 표기가 다 바뀌어져 혼선이 생긴 탓이다. 수도 키에프(Kiev)를 이제는 우크라이나 언어 식으로 키이우로 표기하는 게 일례이다. 앞으로 본인의 의사대로 리니프로 표기됐으면 한다.

작년 8월에 서울시립교향악단과 그녀의 연주 일정이 잡혔다가 전쟁 여파로 취소돼서 아쉬웠었다.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바그너의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을 지휘했고, 음악제 역사상 첫 여성 지휘자인 기록을 세웠다. 평가도 좋았다. 이 실황 공연은 도이치그라모폰(DG)레이블의 DVD로 발매돼 생생히 볼 수 있다. 또한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가극장인 볼로냐 오페라 하우스의 역사상 첫 여성 음악감독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9월 17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국립심포니를 지휘한 옥사나 리니우(리니프) 지휘자.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9월 17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국립심포니를 지휘한 옥사나 리니우(리니프) 지휘자.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9월 1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그녀는 국립심포니를 지휘하면서 한국 데뷔전을 치루며, 절도 있고 리드미컬한 지휘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우크라이나 인으로선 아담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재능이 홀을 가득 채웠다. 그녀가 왜 훌륭한 오페라 지휘자인지를 실황으로 알게 되는 계기였다. 마치 발레를 하는 듯이 유려하게 이끌다가, 클라이맥스에선 제대로 폭발했다.

첫곡인 오르킨의 “밤의 기도”는 우크라이나 전쟁 희생자를 기리는 곡으로 리니우가 초연했다. 성스럽고 난해하지 않은 곡이었다. 현재 벌어지는 러-우 전쟁이 빨리 평화롭게 종식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들었다.

둘째 곡 아람 하차투리안(Aram Khachaturian)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협연자는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와 시벨리우스 콩쿠르의 우승자이자 작곡가와 같은 아르메니아 사람인 세르게이 하차투리안(Sergei Khachatryan)이었다. 그에게는 마치 맞춤 양복을 입은 듯 딱 맞는 레퍼토리였다. 아람 하차투리안 특유의 민속적 향취가 짙은 이 곡이 이렇게 매력적이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호연이었다. 앵콜곡인 아르메니아 민요도 마찬가지였다. 자주 보고 싶은 연주자이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이사장과 기념사진을 찍은 옥사나 리니우(리니프)
서울시립교향악단 이사장과 기념사진을 찍은 옥사나 리니우(리니프)

 

여기서 확실히 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한국에서 세르게이의 이름을 하차투리안으로 오기한지 꽤 오래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작곡가 하차투리안과 혈연관계가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두 사람은 아르메니아 인들이지만 이름이 아예 다르다. 바이올리니스트 “하차투리안”의 이름은 앞으로 하차트리안(Khachatryan)으로 표기하고 발음해야 한다. 처음 잘못 표기된 게 굳어진 경우이다. 슈베르트의 “송어”가 수십 년간 “숭어”로 오기됐던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

2부이자 메인 레퍼토리인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은 불과 몇주 전 같은 장소에서 다른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은 곡이었다. 그날 연주도 참 좋았지만, 리니우와의 연주는 가볍게 근래 들은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실황 연주 중 단연 최고였다. 리니프의 유려한 지휘를 잘 따른 국립심포니는 자신들의 최대치를 뽑아낸 듯한 연주를 보여줬다. 연주 후 리니우에게 어렸을 적 발레를 배우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맞다고 한다. 어쩐지 지휘 동작이 발레 기본자세와 비슷하게 전개됐다.

그날 개인적인 해프닝이 있었다. 설마 국립심포니 연주가 매진이 될 거라는 예상을 못 하고 현장 구매하러 왔다가 보니 합창석까지 매진돼 있는게 아닌가. 주위 음악계 인사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1장을 얻어서 보게 됐는데, 보면서 “심봤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못 보고 갔다면 정말 아쉬웠을 연주였다.

한 마디로 국립심포니가 코리안심포니 시절까지를 통틀어서 역대 최고의 연주 중 하나를 보여준 날이었다. 리니우가 젊은 세대의 여성 지휘자 중 ‘뉴스타’이자 선두 주자 임을 재확인한 날이었다. 요즘은 좋은 연주를 듣느라 정신이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 그녀의 지휘를 더 자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작년에 불발된 연주 대신 앞으로 서울시향과의 조우가 자주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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