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텍사스 그리고 한신 타이거스.

[강규형(명지대 교수·EBS 이사) 칼럼@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이톡뉴스)] 2023년은 세계 야구계의 언더독(underdog)들이 우승하는 해가 됐다. LG트윈스(Twins)는 방금 전 끝난 코리안 시리즈에서 29년 만의 우승을 차지했다. 명문 구단이지만 너무 오랜만에 우승했고, 현재까지 겨우 세 번 우승했다.

29년 만에 우승 트로피 들어올린 LG 트윈스. 1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KBO 한국시리즈 5차전 kt wiz와 LG 트윈스의 경기. (사진=연합뉴스)
29년 만에 우승 트로피 들어올린 LG 트윈스. 1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KBO 한국시리즈 5차전 kt wiz와 LG 트윈스의 경기. (사진=연합뉴스)

세계 최고의 리그인 메이저리그에선 텍사스 레인저스(Texas Rangers)가 창단 62년 만에 월드시리즈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동안 막대한 투자를 했으나, 성적은 안 좋았다. 특히 한국인 메이저리거인 박찬호와 추신수를 장기 대형계약을 했었지만, 결과는 안 좋았다. 그래서 한국 MLB 야구팬들이 무언가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팀인데, 올해에는 시리즈 성적 4승1패로 비교적 쉬운 첫 우승을 했다. 요번 시리즈의 백미는 다 이긴 애리조나가 텍사스 코리 시거의 동점 홈런과 아돌니스 가르시아의 끝내기 홈런으로 극적으로 역전패한 1차전이었다.

엄청난 돈으로 LA 다저스에서 영입한 코리 시거(Seager)는 공수에서 공히 돈값 이상을 하며 텍사스를 우승시킨 수훈갑이었다. 원래 초대형 장기계약을 맺게 되면 선수들이 부담을 느끼거나, 안이해져서 자기 몫을 못 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시거는 오히려 즐기는 듯이 팀을 리드했다. 천재형에 노력까지 더해진 전형적인 엘리트 선수이다. 큰 경기에 강해서, 역사상 처음으로 내셔널 리그 소속(다저스 시절)과 아메리칸 리그 소속(텍사스 레인저스)으로 월드시리즈 MVP가 된 기록을 세웠다. 형인 카일 시거도 시애틀에서 메이저리거로 뛰다가 은퇴한 엘리트 선수였다.

홈런 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시거. (사진=UPI=연합뉴스)
홈런 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시거. (사진=UPI=연합뉴스)

가르시아는 쿠바 출신으로 일본 리그에서도 퇴출됐는데,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공수의 핵심으로 자라난 선수다. 공격에서 눈부신 활약을 했고, 수비에서도 외야에서 뿌린 레이저와 같은 홈 보살로 당대 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Diamondbacks) 공격의 흐름을 끊는 등의 기여를 했다. 텍사스는 투타의 두 주전, 특히 그동안 공수에서 맹활약했던 가르시아가 시리즈 중간에 부상으로 결장하고도 쉽게 우승할 정도로 팀의 깊이(depth)가 돋보였다.

샌프란시스코의 감독 당시 월드시리즈를 세 번이나 우승시킨 브루스 보치(Bochy) 감독이 요번에도 텍사스의 첫 우승을 지휘했으니, 그는 우승 청부사라고 불러도 좋을 명장이다. 포스트 게임에서 수비 실수를 하는 팀은 대개 진다. 요번 월드 시리즈도 그 공식을 따랐다.

이제 텍사스가 첫 우승을 했으니, 아직도 우승 못 한 다섯 팀들도 앞으로 우승 한번 해보길 기대한다. (올해 유틸리티 부분 골든 글로브 상을 받은 김하성이 뛰고 있는) 샌디에이고, 탬파베이, 밀워키, 콜로라도, 시애틀이 그 팀들이다. 그동안 시카고 컵스를 따라다니던 염소의 저주도 풀리고. 보스턴 레드삭스를 울렸던 밤비노의 저주도 끝났으니, 이들도 우승을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

여담이지만, 올해 월드 시리즈 2차전에서 압도적 피칭으로 애리조나 유일 승리를 이끈 선발 투수 메릴 켈리는 한국야구 SK에서 뛰고 애리조나, 미국으로 역수출된 케이스였다. 켈리는 한국에서 완성되고 나서야 메이저리그에 데뷔하고 스타가 된 드문 경우였다. WBC에서도 미국 대표 선발을 맡았었다. 켈리의 싱커는 화면으로만 봐도 예술. 날카롭게 공이 떨어지니 헛스윙과 땅볼 유도가 잘 된다.

월드시리즈 진출을 기뻐하는 애리조나 선수들. (사진=연합뉴스)
월드시리즈 진출을 기뻐하는 애리조나 선수들.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가장 극적인 언더독의 승리는 일본 시리즈에서의 한신 타이거스 (阪神 Tigers)의 우승이었다. 나에게 한신 타이거스는 언제나 underdog의 이미지였다. 나는 성격상 언더독을 응원하는 반골 기질이 강하다. 예를 들어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 전성기에도 꼭 유타 재즈 같은 언더독을 선호했다. 압도적 강팀이 이기는 건 재미가 없다. 해서 한신은 늘 안스럽고 응원하는 존재였다. 간사이 지역의 대표 팀이라는 것은 또 다른 언더독의 특성이었다.

한신은 늘 인기 구단이자 명문 구단이었다. 그러나 한신의 라이벌이자 공적(公敵 ?)인 간토 지역의 요미우리 자이언츠(교진 巨人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에 비해 그동안 너무나 초라한 성적을 냈었다. 노무라나 호시노 같은 명장들이 감독을 맡을 경우, 잠깐 반짝할 때도 있었고, JFK (제프 윌리엄스 ㅡ 후지카와 규지 ㅡ 구보타)라 불리던 철벽 불펜진이 명성을 떨치던 시기도 있었다. 경기가 앞선 상태에서 이들이 7. 8 . 9회를 연달아 맡으면 대개 승리한다는 공식도 있었다. 오승환 선수도 불펜으로 활약햇던 시절도 있었으나, 일본 시리즈 우승은 1985년 단 한 번뿐이었다!

홈런 친 노이지를 환영하는 한신 선수단과 한신 팬들. (사진=연합뉴스)
홈런 친 노이지를 환영하는 한신 선수단과 한신 팬들. (사진=연합뉴스)

남들은 비교적 쉽게 하는 우승이 왜 일본의 두 번 째 프로야구팀이자 인기 구단인 한신에게는 이리도 힘들었던가? 한신은 리그 우승은 간간히 했고, 한신이 잘하는 해는 일본 경제 호황이 늘 겹치는 좋은 징크스가 있었다. 인기 팀이지만 성적은 기대에 못 미치는 점에서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와 비교되기도 했다.

한신 타이거스는 시리즈 6차전에서 작년 우승팀 오릭스에 패해서 3승-3패가 됐었다. 현재 일본 리그 최고의 투수인 오릭스의 야마모토 요시노부에게 완투패를 당했다. 요시노부는 일본에서의 굿바이 게임에서 완투승을 거두고 이제 메이저리그로 진출한다. 메이저리그에선 적어도 다나카 마사히로 정도의 투수가 될 듯하다. 6차전에서의 한신의 완패는 진짜 저주를 받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과거 지긋지긋한 밤비노 저주에 빠졌던 보스턴 레드삭스가 연상됐다.

한신 타이거스가 5일 38년 만에 일본시리즈를 제패하자 우승을 기뻐하는 한신 팬이 도톤보리강에 뛰어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신 타이거스가 5일 38년 만에 일본시리즈를 제패하자 우승을 기뻐하는 한신 팬이 도톤보리강에 뛰어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마지막 결정전에서 한신은 7-1 승리를 거두고 38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쟁취했다.

사이드암(sidearm) 선발인 아오야기가 5회까지 잘 막아냈고, 용병(傭兵)인 쉘던 노이지(Neuse)가 4회 선제 3점 홈런 등 투타에서 맹활약하면서 승리를 이끌었다. 이제 징크스대로 일본 경제의 호황은 따라올 것인가? 한신의 대스타였던 철인(鐵人) 가네모토 토모아키 金本 知憲 가 아주 기뻐할 듯하다. 1330게임 전 이닝(Full inning) 출전이라는 대기록이자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한국계 선수이고 일본 야구 역대 최고의 철인으로 칭송되는 선수였지만, 시리즈 우승 경험이 없었다. 요번 한신의 우승을 이끈 노장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은 1985년도에는 한신의 선수로서, 올해는 감독으로서, 한신의 역대 두 번밖에 없는 우승을 이끈 전설이 됐다. 호랑이 무늬를 상징하는 한신의 줄무늬 유니폼이 오랜만에 빛나는 시즌이었다.

올해는 한ㅡ미ㅡ일 전부 프로야구의 언더독이 우승하는 재미있는 시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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